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방역 패러다임을 '검사·추적'에서 '스크리닝·완화'로 전환해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7월28일 17시10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메타정보

  • 0

본문

 세계 최고라는 K-방역이 위험하게 흔들리고 있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G7 정상회의에서의 어줍잖은 찬사가 오히려 독(毒)이 되어버렸다.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칭찬에 정부가 넋을 놓아버렸다. 방역 전문가를 자처하는 일부 의료인들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4차 확산의 원인과 대책을 정확하게 설명해줘야 할 전문가들이 오히려 엉뚱한 희생양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부 지자체가 시도하고 있는 ‘자가 검사키트’의 위음성 결과 때문에 코로나19 감염자들이 바이러스를 마구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방역은 제쳐두고 언론을 통해 저질 음모론이나 만들어내는 반(反)기술주의적 엉터리 전문가들의 폐해가 자가 진단키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자가 검사키트를 탓할 상황 아니다

 

  자가 진단키트로 양성자를 가려내는 ‘민감도’가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다는 주장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다. 개발업체가 식약처에 제출한 민감도는 82.5%(SD바이오센서)와 92.9%(휴마시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식약처가 두 제품에 대해서 조건부 허가를 내준 것도 그런 결과를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동일한 진단키트를 사용한다고 누구나 언제든지 똑같은 민감도를 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검사의 대상이나 방법이 달라지면 민감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대한진단검사학회가 확인한 민감도는 41.5%였고, 서울대병원의 결과는 17.5%였다. 평가 과정에서 무증상자와 경증 환자의 비중을 높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무증상자의 경우에는 민감도가 3%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국제 학술지 논문도 있다고 한다.

 

  민감도가 낮은 것으로 확인된 평가가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개발업체나 식약처의 전문성·윤리성을 의심하고, 진단키트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폄하하는 것은 능력을 갖춘 전문가의 합리적인 자세가 아니다. 식약처는 미리 공개된 평가 방법에 의한 결과를 근거로 허가를 해주는 것이 마땅하다. 검사의 대상이나 방법을 달리해서 얻은 결과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민감도가 낮게 평가된 결과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런 평가에서 활용한 검사의 대상이나 방법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민감도가 낮게 얻어진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식약처가 허가한 자가 진단키트의 사용방법을 개선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게 된다.

 

  자가 진단키트의 개발업체가 서울시장을 비롯한 정치권을 불법·부당하게 로비를 했을 것이라는 억측도 위험한 것이다. 소위 전문가를 자처하는 의료인이 직접 우리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는 추악한 음모론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안타깝고 실망스러운 것이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자가 진단키트를 유독 우리만 거부하고 있는 현실은 굳이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가 진단키트를 사용해서 음성이라고 믿은 감염자가 4차 확산을 일으켰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전문 의료인으로 그런 주장을 하려면 반드시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도 밝혀야 하고, 그런 사례가 통계적으로 얼마나 되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어설픈 추정과 추측만으로 식약처의 권위를 훼손하고, 개발업체의 전문성·윤리성에 상처를 낼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서 자가 진단키트의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지난 4월 이후 식약처로부터 조건부 사용허가를 받은 자가 진단키트는 3종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질병청·대책본부·방역 전문가들의 부정적인 발언 때문에 자가 진단키트를 선뜻 사용하는 국민이 많은 것도 아니다.

 

자가 진단키트는 ‘확진용’이 아니라 ‘스크리닝용’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진단키트의 세계적인 강국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작년 2월 4일 세계 최초로 ‘역전사(RT,逆轉寫) PCR 키트’를 개발했다. 중국에서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공개하고 2주일 만에 이룩한 놀라운 성과였다. 세계적인 BT 강국인 미국·영국·일본도 해내지 못했던 기적과도 같은 쾌거였다. 48시간 이상 걸리던 검사 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하고, 검사 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PCR 키트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섭씨 60도의 일정한 온도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종류의 중합효소와 배터리로 작동하는 휴대용 분석 장비를 이용해서 1시간 이내에 결과를 알려주는 ‘신속 PCR’도 등장했다.

  PCR 키트만 개발한 것도 아니었다. 곧 이어서 코로나19의 항원과 항체를 확인하는 ‘신속 진단키트’도 개발했다. 전문인력이나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도 간편하게 감염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자가 진단키트’로도 알려진 제품이다. 지금까지 30여 종의 제품이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RT-PCR 기술만 고집하는 방역 당국과 전문가들의 선택은 납득하기 어렵다. 신속 PCR을 사용하고 싶다는 여주시와 서울대의 요구도 거부했다. 결국 정치권이 개입한 후에야 마지못해 못 본 척하고 있는 형편이다. 자가 진단키트의 진입을 적극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것도 역시 방역 당국과 전문가들이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는 첨단 기술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일부 방역 전문가들의 모습은 부끄러운 것이다. 자칫하면 자가 키트를 거부하는 전문가들이 전문성과 윤리성을 의심받을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그런 지적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진단 키트의 민감도가 RT-PCR 보다 낮을 수도 있다. 특히 항원이나 항체를 검사하는 자가 진단키트의 경우가 그렇다. 바이러스의 수가 많지 않은 감염 초기의 민감도는 더 심하게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새로운 진단키트가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민감도가 100%가 아닌 키트는 사용할 수 없다는 억지는 황당하다.

 

  검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기술도 나름대로의 용도가 있는 법이다. 특히 검사 비용이 RT-PCR보다 비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싼 자가 진단키트는 ‘확진용’이 아니라 ‘스크리닝·완화용’(screening and mitigation)으로 사용해야 한다. 감염의 가능성이 높은 집단을 선제적으로 파악하는 수단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감염자가 확인된 후에야 허겁지겁 뒤따라가는 현재의 뒷북 방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천지에서 성과를 거두었던 ‘검사·추적’(testing and tracking)만을 고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가 진단키트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자가 진단키트를 그런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무차별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 ‘자가 진단키트’가 의외의 출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0
  • 기사입력 2021년07월28일 17시10분
  • 검색어 태그 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