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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북한경제 : 새로운 고난의 행군 시점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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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5월04일 11시57분

작성자

  • 양운철
  •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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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1-5월호-제14호](2021.5.4.)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당(黨) 주도의 고난의 행군

 

 2021년 4월 6일부터 8일까지 평양에서 제6차 노동당 세포비서 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세포’는 약 5~30명의 당원으로 구성된 최하위 당 조직이다. 당 세포비서는 당세포의 책임자이다. 당 세포비서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세포비서 대회는 김정은 집권 후 2013년 1월과 2017년 12월에 임의로 소집되었지만, 제8차 당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해 ‘5년 주기로 당 세포대회 소집’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주1) 

 

김정은은 4월 6일부터 8일까지 개최되었던 당 세포대회 폐회사에서 “수십 년 세월 모진 고난을 겪어온 인민들의 고생을 이제는 하나라도 덜어주고 최대한의 물질 문화적 복리를 안겨주기 위하여 나는 당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하여 각급 당 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하였다”라면서 인민을 위한 심부름군 당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공표했다. 

 

그리고 “당 중앙의 분석과 전략적의도는 전당의 수십만 세포들이 ㎡당 책임제의 원칙에서 자기가 맡은 혁명 진지를 굳건히 고수하고 혁명화, 공산주의화 하자는 투쟁목표를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면서 어려운 현실을 혁명정신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북한경제가 삼중고를 극복하지 못한 힘든 시점에서 북한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고난의 행군을 강조한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염려에 대해 4월 21일 자 조선신보는 “고난의 행군 정신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세력들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술어를 경제난, 생활고의 동의어로 쓰면서…. 삼중고의 맥락에서 거론하고 있는 것은…. 불손한 여론 오도술의 변종에 불과하다”라고 변론하고 있다. 

 

김정은은 제8차 당대회에서 기대되었던 과감한 경제개선 정책 대신 선대로부터 강조된 자력갱생을 강조하여 많은 실망을 준 바 있다. 이번 당세포 대회에서도 예상외로 고난의 행군을 당의 주도로 진행한다는 충격적인 선포를 하였다.

 

 1990년대 중후반의 고난의 행군이 불가피하게 주어진 상황이었다면, 2021년 고난의 행군은 김정은이 선택한 전략이다. 그러면 고난의 행군을 통해 기대하는 이익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김정은은 주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책이 실패할 때 책임을 당에 전가하고, 주민들이 생존을 위한 생산을 강요하는 억압정책을 유지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결과적으로 고난의 행군 강행으로 인해 가장 기초단위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을 착취하는 구조가 정착될 것 같은 염려가 앞선다. 실제로 북한과 같은 착취경제에서 생산자에 귀속되는 생산물이나 보상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관련하여 2021년 4월 14일 자 조선신보는 “전체 인민에게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호소한 것은 과거지사이다.…. 심부름군인 노동당이 고난의 행군을 하겠다…. 1996년 1월 1일의 공동사설은 전체 인민에게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호소했지만….‘화성포-15의 시험발사 성공으로 국가 핵 무력이 완성 후….”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는 핵 무력 완성으로 군사적 자신감이 있으므로 당이 고난의 행군을 끌고 나가겠다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활 개선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독려를 위해 먼저 당세포비서를 통해 모든 기관의 당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그 후 4월 27일부터 29일까지는 청년동맹 제10차 대회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4월 초로 기대되었던 청년동맹 대회가 예정보다 늦게 개최된 이유로는 중앙당의 청년들의 생활, 사상 태도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론된다. 

 

청년동맹 대회에서는 사상적으로 “청년들을 우리 당의 위업에 무한히 충실한 교대자로 준비시키며 청년동맹조직들을 조직성과 규율성, 단결력과 전투력이 강한 정예화된 전투대오로 강화 발전시키고”, 경제 측면에서는 “금속, 화학, 전력, 석탄공업 등 인민경제 주요 공업 부문의 청년동맹조직들에서 청년돌격대 활동, 대중적 기술 혁신 운동을 힘있게 벌여 새로운 5개년계획에 반영된 생산목표들을 점령하기 위한 돌파구를 열어 제껴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했다.주2) 

 

4월 28일 자 노동신문은 “일군들은 인민이 인정하는 진짜배기 심부름군이 되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 일군들은 자신들의 당성, 혁명성, 인민성을 실지 사업 능력과 실적으로 인민들 앞에서 평가받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헌신적 복무의 길을 꿋꿋이 걸어 나가야 한다”라고 당성과 정신력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자력갱생을 재차 강조 

 

코로나 사태와 경제제재로 생산 침체와 외화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개혁적인 경제정책의 시행보다는 ‘자립적 민족경제’의 틀 안에서 가용 가능한 내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자력갱생에 부합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제8차 당 대회를 통해 "새로운 전망계획 기간의 자력갱생은 국가적인 자력갱생, 계획적인 자력갱생, 과학적인 자력갱생으로 발전하여야 한다"라는 추진 전략을 제시하였다. 

 

2021년 2월 11일 자 조선신보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에는 경제난으로 불가피하게 각자 살기 위한 자력갱생을 추구했지만, 이후 경제 전반에 무질서를 초래하게 돼 중앙집권적 자력갱생으로 선회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개별 부문과 단위가 국가적 이익과는 상관없이 국가의 지도와 통제 밖에서 협소한 당면 이익만 추구하는 것을 근절해야 할 낡은 경영활동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생존을 위해 시장 경제적 요소를 불가피하게 수용하며 중앙의 지휘보다는 기업과 기관의 자율성을 중시했으나, 이제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지휘와 통제가 힘을 잃고 각종 부작용이 생기면서 오히려 경제난을 가져오게 되었다는 논리이다. 당의 경제 이데올로기 강화를 위해 최근 북한의 모든 당 행사에서는 자력갱생이 경제회복의 목표로 강조되고 있다(<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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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자력갱생의 틀 안에서 자급자족의 원칙을 적용하여 자원과 물자 부족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주요 상품의 국산화를 통해 국내 생산을 늘리는 정책을 선호한다. 수출되지 않은 광산물을 자국 산업에 다양하게 활용하는 정책이 대표적 사례이다. 

 

북한은 자력갱생의 노력으로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함으로써 최신기술로 장비된 강력한 국방공업과 발전된 경공업 그리고 현대적인 농업을 가지게 되었다”라고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현실은 다르다. 일례로 미국 농무부는 북한의 쌀생산량을 2020년도와 유사한 약 136만 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통계청의 국가통계포털(KOSIS)은 2020년 북한의 쌀생산량을 2019년 대비 1만5천 톤 정도 감소한 약 202만 톤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추정치가 차이가 있지만, 북한의 쌀 생산량이 기대보다 낮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현재의 국경봉쇄와 경제침체를 고려할 경우, 북한의 2021년 쌀 생산량 감소가 예상된다. 최근 북한의 방송은 식단에 감자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일반적으로 감자는 비극적인 기펜의 역설(Giffen's paradox)을 연상시킨다. 19세기 아일랜드에 대기근이 발생했을 때, 가장 저렴한 식품인 감자의 가격이 인상되자 역설적으로 수요가 증가하였다. 일부 보도처럼, 양강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감자 가격이 급등할 경우, 고난의 행군 시절처럼 기아 현상이 재연될 수도 있다.

 

비관적 견해와 달리, 북한이 강조하는 자력갱생은 기존의 ‘계획적 관리 방법’ 전략이 ‘시장적 관리 방법’하에서의 경제발전 전략’으로 변화하는데 기여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국산화를 통해 일부 품목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김정은의 경제정책이 일부 개혁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언론매체나 탈북자 증언에 따르면 자력갱생에 참여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혜택은 적으며, 다수의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노동에 대한 성과보수의 결여로 여러 협동농장이나 기업소에서 생산이 증가하지 않고 있다. 가동 중인 기업들도 중국산 설비와 자재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하더라도 중국 인민폐가 시장에서 다수 유통되었다. 현실과 자체적으로 자본과 원자재를 확보하라는 국가의 일방적 지시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시장 활성화가 경제침체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

 

코로나 사태 이전만 하더라도 북한에서 지속적인 시장화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개혁은 계속 진행되었다. 주민들의 시장화율도 계속 증가해왔다. 현실을 무시한 국가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아래로부터의(bottom-up) 개혁은 아직은 성공적이지 못하지만, 국가는 계속 억압하고 있다. 김정은의 몇 차례 경제개혁은 나름 효과를 거둔 점도 있지만, 이제는 정책이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문은 협동농장과 기업소의 국가 소유를 사적소유로 전환하는 것과 같은 진정한 개혁이다.

 

 북한 주민들의 의식이 변화되어 시장경제를 도입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지금이야말로 과감한 위로부터의(top-down) 개혁이 필요한 때이다. 북한은 몰락하는 계획경제를 회복시키는 노력보다는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해 적극적으로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고, 시장의 비중을 더욱 높이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북한의 경제 규모가 증가하고, 경제발전 10개년 계획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과의 타협 없이는 북한의 낙후된 계획경제의 기술적 전환도 불가능하다. 많은 체제전환국이 변화된 당의 주도로 정치적 제약을 극복하고 위로부터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시행하였다. 북한이 사적 소유권의 범위를 확대하고, 해외투자를 유치하고, 수출중심의 산업구조로 개편해 경제를 운용한다면 북한경제의 성장은 훨씬 수월하게 달성될 것이다. 

 

김정은은 선대와 비교해 시장에 대한 이해가 높았으며,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경제정책을 운용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북한경제는 방역 강화와 국경봉쇄로 인적, 물적 이동이 제약을 받아 침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면 돌파, 천리마 정신 등과 같은 낙후된 이데올로기나 대중 선동 구호를 내세워 경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당 주도의 고난의 행군이 강행된다면, 그 부작용은 결국 일반 주민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북한경제 개선보다는 주민들의 경제적 피해만 가중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면 북중 무역과 시장 활동이 증가로 북한경제도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국가의 간섭은 북한경제의 효율성을 더욱 감소시키게 된다. 현재 북한경제의 침체를 타개할 수 있는 북한의 정책은 극히 제한적이다. 

 

지금은 자력갱생과 고난의 행군을 강요하기보다는 주민들의 경제적 자유를 늘려 시장 활성화를 유도하는 정책과 함께 생산력 증대와 대외협력 강화를 통해 경제의 외부성을 확장하는 정책 시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개혁이 계속 지연된다면 과거 고난의 행군이 다른 모습으로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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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북한연구소, “김정은 당세포비서 대회에서 ‘고난의 행군’ 독려,”『INKS 논평』p.2. 2021년 4월 10일.

주2) 노동신문, “주체적 청년운동의 강화발전을 힘 있게 추동하게 될 새로운 전환적 계기: 김일성-김정 일주의 청년동맹 제10차대회 개막,” 2021년 4월 29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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