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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인플레이션, 이런 나라를 원하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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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3월16일 16시00분

작성자

  • 조장옥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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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나라를 세우고 부흥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쇠망하게 하는 데에는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나라를 쇠망시키는 원인은 너무나 많다. 그 가운데 용서가 될 수 없는 것은 정책의 실패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재(人災)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책의 남용과 실패는 망국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염병을 이유로 남발하는 재정지출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재정이 무슨 화수분인가? 이런 때일수록 규모 있게 재정을 사용해야만 지속되는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을 왜 모르는지 의아하다.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는 부산신공항을 특별법을 통해 졸속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나라도 팔아먹겠다는 심산이 읽히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포퓰리즘은 결국 칼이 되어 국민이 피 흘리게 한다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먼 역사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돈을 찍어서 재난소득을 지급하자는 법안까지 제출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포퓰리즘에 정신 줄까지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밖에 달리 말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을 지출의 주체인 정부에서 독립시킨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특히 내재적인 가치가 없는 화폐를 정부가 마음대로 찍어 쓸 때의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대부분의 경우 그런 재정지출의 결과였다. 

 

 높은 인플레이션 가운데에서도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의 경우에는 특히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여야만 한다. 정의상으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물가상승률이 월 50% 이상으로 유지되는 경우를 말한다. 만일 물가가 월 50%로 계속 상승하면 년으로는 12874.63% 상승하는 셈이다. 최근까지 세계적으로 50번이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있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예외 없이 정부가 돈을 찍어 썼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여기 그 예를 살펴봄으로써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자 한다. 

 

베네수엘라

 

후고 차베스(Hugo Rafael Chávez Frías, 1954–2013)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1998년이다. 그 이후 2002년 쿠데타에 의해 잠시 밀려난 적이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2013년 사망할 때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였다. 

 

1999년 차베스는 대통령에 취임하자 국민투표를 통해 의회와 사법부를 해산하고 새로운 헌법을 도입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과 그에 따른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렸다. 그와 함께 원유를 비롯한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고 각 지역에 주민이 참가하는 「공동체 위원회(Communal Committees)」를 설립하였다. 공동체 위원회는 주민들이 스스로 구성한 조직이었다. 도시의 경우 150에서 200 가구, 농촌의 경우 20 가구, 원주민의 경우 10 가구 정도의 이웃을 기반으로 구성되었으며 지역개발을 위한 사업과 정책을 감독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차베스가 죽은 다음 정정이 불안해지고 정권이 위험해지자 공동체 위원회는 무장한 준군사조직(Colectivo)으로 변모해갔다. 특히 빈곤층의 거주 지역에서 횡행하였으며 납치, 살인, 마약거래 등 초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협하였다.        

 

차베스의 경제정책은 부의 재분배, 토지개혁, 기업의 노동자 소유와 자율경영 등 근본적으로 포퓰리즘에 기초하고 있었다. 많은 복지수단을 단기적인 목적으로 도입하였으나 포퓰리즘이 성공을 거두자 임기 내내 지속하였다. 차베스는 자신의 복지정책을 「볼리바르 혁명(Bolivarian Revolution)」이라고 불렀다. 이를 통해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식량, 주택, 의료, 교육을 무상으로 공급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재원은 원유수출로 조달하였다. 아래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계 원유가격은 차베스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상승하기 시작하여 2008년에는 배럴당 미화 150달러 턱밑까지 상승하였다.

 

 베네수엘라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수입이 밀려 들어왔다. 석유산업의 높은 이윤에 힘입어 차베스는 빈곤과 문맹률을 낮추고 소득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삶의 질도 개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차베스의 포퓰리즘 정책은 구조적인 불평등을 개선할 수는 없었다. 차베스가 죽은 다음 2년 만에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은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으로 회귀하였다. 그리고 차베스 치세에 개선된 것으로 보이는 빈곤과 불평등은 주거, 환경, 교육 및 고용의 질을 고려하면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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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의 포퓰리즘 정책은 궁극적으로 심각한 사회경제적인 위기를 초래하였다. 그의 정책은 베네수엘라 경제의 주춧돌이라 할 수 있는 석유수출에 기초하고 있었다. 2000년 베네수엘라의 총소득 가운데 원유로부터 얻는 비중이 51%였으나 2006년에는 56%였다. 수출 가운데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77%에서 2006년 89%로 증가하였다. 그 비중은 2012년에 96%로 증가하였다. 베네수엘라의 이와 같은 원유 의존도에 대하여 세계은행이 그 취약성을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원유가 총소득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는 사이 원유 이외의 거의 모든 수출산업은 몰락해 가고 있었다. 이와 같이 자연자원의 수출비중이 증가하면서 여타 산업이 몰락하는 현상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북해 천연가스가 발견되면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복지정책에 대한 지나친 지출과 규제일변도의 기업정책이 차베스 치세 말년에 이르러서는 물가와 빈곤율의 상승, 의료비와 식료품을 비롯한 물자의 부족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차베스가 죽음을 앞두고 있던 1913년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베네수엘라의 「경제자유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는 36.1로 1999년의 56.1에 비해 20포인트나 낮았으며, 이는 지수에 포함된 177개국 가운데 174번째였다. 이와 더불어 적대적인 기업정책과 국가부도위험 증가로 인해 해외투자의 유입이 막힘으로써 환율이 부지기수로 상승하였다. 이에 대처하고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차베스 정부는 개인의 외환보유를 철저히 통제하였다. 공식 환율과 암시장 환율의 차이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였다. 생필품을 해외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상인들은 수입을 위한 외환이 필요하였다. 환율이 급상승하고 시장에는 가격통제가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수입에 따른 이윤은 날이 갈수록 축소되고 생필품의 부족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었다. 

 

차베스 이전 베네수엘라의 건강과 영양지수는 낮은 수준이었다. 영양을 확보하는데 불평등이 높았다. 차베스는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하고 식량주권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를 위해 2003년부터 실시한 것이 식량과 음식에 대한 가격통제였다. 이를 통해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영양실조에 의한 사망률을 50%나 낮출 수 있었다. 식량주권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차베스는 또한 대지주들로부터 500백만 에이커의 땅을 몰수하여 재분배하였다. 생필품의 부족이 외환시장 개입과 가격통제 때문에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투기와 사재기 때문이라고 비난하면서 가격통제를 더욱 조였다. 

그리고 그보다 높은 가격을 받는 상인은 투기꾼이라고 성토하였다. 2011년 수도 카라카스에서 생필품의 가격이 가격통제 이전보다 아홉 배나 상승하였다. 생필품의 수입이 어려우니 국내생산을 독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 슈퍼마켓과 같은 식량과 음식산업을 대거 국유화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생필품은 태부족이고 생필품 가격은 더더욱 상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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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잘 나가던 원유시장이 2015년을 기준으로 불황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앞의 [그림 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원유가격이 반 토막 났다. 1998년 미국에서 개발된 기술로 생산되기 시작한 세일가스의 영향이 컸다. 세계에서 원유매장량이 가장 많다고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원유수출은 미국의 제재로 크게 위축되어 있었다. 여기에 원유가격 하락은 치명적이었다. 원유수출에 의한 재정수입이 크게 감소하자 차베스를 이은 마두로 정권은 대량으로 돈을 찍어 쓰기 시작했다. 결과는 명약관화일 수밖에 없었다.

 

 위의 [표 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표 1]에는 베네수엘라의 두 가지 인플레이션 추정치가 나타나 있다. 참고로 2018년부터 몇 년은 공식적인 수치가 발표되지 않았다. [표 1]에 나타나 있는 수치는 메릴랜드 대학의 Steve H. Hanke가 구매력평가를 이용하여 추정한 것과 IMF가 매년 10월에 발표하는 World Economic Outlook에서 예측한 것이다. 2018년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Hanke에 따르면 78,499.0%이고 IMF에 따르면 1,370,000.0%이다. 이런 인플레이션을 들어보는 못한 독자들이 태반일 것이다. 돈을 찍어 쓰는 것이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물가만이 이렇듯 무섭게 상승한 것이 아니다. 아래 [그림 2]에서 보듯이 실질GDP도 자유 낙하하였다. 결과는 베네수엘라 국민 30%의 국외 탈출이었다. 과연 이것이 차베스가 의도한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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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

 

짐바브웨(Zimbabwe)는 아프리카의 남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내륙국이다. 북쪽으로는 잠베지 강을 경계로 잠비아와, 남쪽으로는 림포포 강을 경계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인접해 있다. 그리고 동쪽에는 모잠비크, 서쪽에는 보츠와나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북서쪽 잠비아와의 국경에 잠베지 강이 떨어지는 빅토리아 폭포가 흐른다. 인구는 1,420만 정도이다. 1965년까지 영국의 자치식민지였으며 그 해 백인 소수정부가 일방적으로 로디지아(Rhodesia)라는 국명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그 이후 국제적인 고립과 흑인 민족주의자들과의 내전을 치른 다음 1979년 평화조약에 의해 1980년 영연방의 일원으로 독립국가 짐바브웨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국제법 위반으로 2002년 영연방국가 자격이 정지되었으며 2003년에는 스스로 탈퇴하였다. 

 

짐바브웨의 주요 수출품은 광물자원, 금 및 농산품이다. 매장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백금(platinum) 광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6년에 발견된 다이아몬드 광산은 100년 동안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많은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자연 때문에 관광수입 도 적지 않았다. 

 

한편, 짐바브웨의 농업은 전통적으로 생산량이 충분하고도 남아서 수출과 외화수입의 원천이었다. 지하자원과 관광 그리고 농업을 기반으로 짐바브웨는 1980년대 5% 이상의 실질GDP 평균성장률을 기록하였다. 정부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긴 하였으나 1990년대에도 평균 4.3%의 실질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 사이 짐바브웨 정부는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개선하였다. 그 사이 인구증가율과 해외직접투자의 유입은 완화되었다. 풍부한 지하자원, 잘 교육된 노동력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비추어 짐바브웨는 아프리카의 성공사례가 될 것으로 보였다.

 

 짐바브웨 정부의 정책실패는 1990년대 시작된 대통령 무가베(Robert Gabriel Mugabe, 1924-2019)의 장기집권과 권력 사유화의 영향이 컸다. 그는 1997년 지지기반인 독립전쟁 참전용사에 대한 대규모 연금지급을 약속하였다. 그리고 재정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고 화폐발행으로 적자를 메우기 시작하였다. 이에 세계은행은 미화 1억 달러 대출계좌(loan facility)를 동결하였다. 그 해 인플레이션은 20%였다. 1998년 무가베는 무분별하게도 자비로 민주콩고공화국에 11,000의 군사를 파견하였다. 조세인상에 항의하는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으나 더 이상의 조세인상은 할 수가 없었다. 많은 은행이 파산하고 인플레션은 48%로 상승하였다. 1999년부터는 해외로부터의 자금도입이 고갈되기 시작하였으며 대규모 화폐발행이 시작되었다. 인플레이션은 57%로 상승하였다. 

 

공식 환율을 고정함에 따라 암달러시장이 등장하였다. 차베스와 마찬가지로 무가베는 친정부인사들에게 달러를 공식 환율로 매각함으로써 암시장에서 폭리를 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부정부패는 정권연장의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적지 않은 광산수입 또한 군인과 집권당인 ZANU-PF 정치인 차지였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토지가 없는 흑인들에게 재분배한다는 명분으로 백인 소유의 토지 몰수가 시작되었다. 이유는 1890년대 영국이 식민 지배를 시작할 때 비옥한 토지를 빼앗았기 때문에 흑인들이 척박한 공동 경작지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토지 몰수에 대하여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몰수한 토지는 농업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무가베의 지지자들에게 분배되었다. 수많은 흑인 농업 노동자들은 직업 없이 내몰렸다. 짐바브웨 대법원이 불법 판결을 내렸음에도 토지 몰수는 계속되었다. 이와 같은 토지 몰수는 농업 생산성을 크게 떨어뜨려 짐바브웨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2000년 25만 톤이던 밀 생산량은 2016년 6만 톤으로, 200만 톤이던 옥수수 생산량은 50만 톤으로, 육우 도축 두수는 60.5만 두에서 24.4만 두로 감소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커피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다. 수출하던 식량은 이제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짐바브웨 20년 역사상 재산권이 존중되지 않은 첫 사례였다. 

            

부패와 정책실패 그리고 토지 몰수와 함께 아프리카의 희망이던 짐바브웨는 지구상의 가장 어두운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래 [그림 3]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짐바브웨의 실질GDP는  2000부터 2008년까지 계속하여 –4.2, -0.5, -7.7, -16.2, -6.3, -7.4, -3.6, -3.4, -16.3 %로 성장하였다. 이와 같은 마이너스 성장의 결과 평균적인 수준의 짐바브웨 국민의 2005년 구매력은 1953년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2003년 인플레이션은 500%를 넘어섰으며 짐바브웨 달러의 가치는 99%까지 하락하였다 (IMF, Zimbabwe 2003 Article IV Consultation-Staff Report,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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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는 식량가격 폭등 때문에 폭동이 일어났다. 공식 환율과 암시장 환율의 확대되는 괴리는 시장의 왜곡을 더욱 심화시켰다. 그 해 인플레이션은 112%였다. 2002년에는 전격적인 가격통제가 실시되면서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물론 생필품의 부족과 전기 음로수의 공급부족이 나타났다. 그 와중에서도 토지 몰수는 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같은 해 인플레이션은 199%였다. 2003년에는 짐바브웨 국민의 해외탈출이 대규모로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인플레이션은 599%였다. 2004년 짐바브웨 준비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자율을 5,000% 이상으로 인상하였다. 그로 인해 잠시 인플레이션은 133%로 하락하였으나 주택 및 주식시장이 붕괴하였다. 이 해에 마지막으로 공식 환율을 암시장 환율로 조정하였다. 2005년에는 경기진작을 위해 이자율을 낮췄다. 이를 위해 통화 공급을 계속 증가시킨 결과 인플레이션은 다시 586%로 증가하였다.  

 

2006년에는 인플레이션이 처음 1,000%를 상회하였다. 모든 공식적인 상점은 문을 닫았으며 계속적인 식료품 부족에 시달렸다. 짐바브웨 준비은행은 세 번의 화폐개혁을 통해 단위를 1/1,000로 낮췄다. 화폐 대신 연료쿠폰이 대체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2007년 인플레이션은 통제 불능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짐바브웨 준비은행은 인플레이션은 “불법(illegal)”이라는 어이없는 선언을 한다. 엄청난 가격통제로 인해 거의 모든 거래는 지하시장에서 이루어졌다. 2007년 인플레이션은 66,212%였다. 2008년 급격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제가 완전히 정지하게 된다. 그 와중에 무가베는 여섯 번째 임기를 시작한다. 짐바브웨 준비은행은 화폐 단위에서 10개의 0을 떼어내고 일부 기업은 다른 나라 화폐의 사용을 시작한다. 이 해 인플레이션은 %이었다. 이제 짐바브웨 달러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2009년은 모든 거래가 미국 달러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해이다. 유통되는 달러가 부족하기는 하였지만 달러의 사용과 함께 상점은 생필품으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따라 짐바브웨 국민이 겪은 고초는 다음 세 장의 사진이 냉소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 (A)은 짐바브웨 달러는 화장실의 밑씻개로도 쓰지 말라는 경고문구이고 (B)는 화폐 단위가 기하급수로 부풀려져서 10억 짐바브웨 달러를 가지고도 굶어 죽음을 풍자하고 있다. 사진 (C)는 가격통제로 텅텅 비어있는 상점의 선반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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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인플레이션의 역사

 

가장 널리 알려진 초인플레이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일어났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연합국은 독일에 대해 GDP의 1,4배에 해당하는 막대한 전쟁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였다. 전쟁보상금은 막대한 재정적자로 나타났고 독일 정부는 급기야 재정적자를 화폐를 발행하여 보전하였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독일의 월별 인플레이션은 1922년 시작되어 1923년 10월 29,524.8%로 정점을 찍은 다음 1923년 말에 재정개혁과 함께 진정되었다. 1923년 말에 정부 공무원의 삼분의 일이 해고되었으며 전쟁보상금 지급은 일시적으로 정지된 다음 감액되었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라이히스방크(the Reichsbank)에서 랜탠방크(the Rentenbank)로 교체되었다. 독일의 새로운 중앙은행은 재정적자를 화폐를 발행하여 보전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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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표에서 볼수 있는 바와 같이 1차 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에서도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난 이유는 독일의 경우와 유사하게 재정적자를 화폐를 발행하여 보전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인플레이션은 먼 과거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최근에도 베네수엘라, 짐바브웨뿐만 아니라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난 사례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하이퍼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로운가?        

 

새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20세기의 주류 거시경제학이 과연 21세기에도 옳은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와 같은 의문의 핵심에는 화폐와 인플레이션의 관계가 느슨해지거나 사라진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있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의 기제(機制)가 과거와 다르게 변한 것은 아닌지 묻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대부분의 국가는 통화량을 다량 풀었다. 그리고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정책이자율을 0%로 내려 유지하고 있다. 통화를 얼마든지 풀 용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통화의 증가 혹은 통화를 무한정 증가시킬 수 있다는 중앙은행의 의지표명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은 0%에 가까이 유지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돈을 찍어 재정에 사용하자는 무모한 것인지, 무지한 것인지 모를 주장까지 등장하였다. 돈을 찍어내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데 무슨 문제냐는 강변이다. 이 나라에서도 얼마 전 어떤 국회의원이 그런 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돈을 찍어 재정에 사용하는 경우의 부작용은 앞에서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를 보면 분명하다. 우리 국민은 아직 포퓰리즘의 폐해를 모르는 것 같다. 문재인 정권의 포퓰리즘이 다다른 곳이 지금의 부동산시장 붕괴와 LH이다. 

 

이제는 돈을 찍어서까지 쓰자고 하니 어떤 미래가 이 나라를 기다리고 있을지, 개봉박두이다. 특히 이재명 경기지사의 포퓰리즘은 너무나 위험하다. 무조건 표만 얻고 보자는 그의 포퓰리즘, 우리의 재정으로 유지 가능해 보이지 않는 기본 시리즈 끝에 대한민국 국민이 만일 그를 선택한다면 ‘이재명=차베스 또는 무가베’, ‘대한민국=베네수엘라 또는 짐바브웨’의 등식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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