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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핵무기금지조약(TPNW) 발효와 핵 비확산 레짐의 미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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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3월04일 16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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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1-3월-제8호](2021.3.2.)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유엔 핵무기금지조약 발효

 

핵무기를 전면 금지하는 유엔의 핵무기금지조약(TPNW: 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이 1월 22일 발효됐다. 흔히 그냥 금지조약(Ban Treaty)이라고도 불리는 핵무기금지조약은 모든 핵무기의 개발·실험·생산·보유·사용뿐 아니라, 핵보유국의 다른 나라들에 대한 ‘핵우산’ 제공까지도 금지한 최초의 국제조약이다. 핵무기금지조약은 핵보유 예외를 인정한 기존 핵확산금지조약(NTP)과는 달리 핵무기 자체를 비인도적인 불법으로 간주한다. 유엔 회원국의 60%인 122개국 찬성으로 2017년 7월 채택됐다. 50개국이 비준하면 90일 후에 발효된다는 규정에 따라 22일 0시부터 법적 효력이 발생했다. 50번째 비준에 참여한 국가는 지난해 10월 서명한 온두라스였다. 핵무기의 현실적 위협이 갈수록 커지는 현실 속에서 TPNW 발효는 국제 핵비확산 레짐의 발전에 있어서 큰 진전이지만 실제 핵무기를 금지할 수 있을지 그 이행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TPNW는 핵무기를 완전히 금지하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최초의 다자조약이다. 20개 조문으로 구성된 동 조약은 첫째, 핵무기 개발‧실험‧생산‧보유를 금지한다. 둘째, 핵무기 사용 혹은 사용의 위협을 금지한다. 셋째, 조약 당사국 영토 내의 핵무기 주둔·설치·배치를 금지한다. 넷째, 조약 당사국은 핵실험 혹은 핵무기 사용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을 지원하고 환경 복구를 도울 의무가 있다. 이처럼 TPNW는 사실상 핵무기 관련 일체의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TPNW 채택은 무엇보다도 핵무기 전면 폐기의 법제화, 핵무기 사용 금지, 핵실험 금지 등 핵군축 규범의 법제화라는 의의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핵무기 사용이 초래할 인도주의적 참상에 주목하고 피해 복구를 강조하는 한편 핵보유국의 핵무기 불사용 원칙과 소극적 안전보장(NSA) 천명을 촉구하고 있다. TPNW 자체는 검증 레짐(verification regime)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나 조약 당사국들은 IAEA와 별도의 안전조치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TPNW가 등장한 배경은 기존 핵확산금지조약(NPT: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의 미진한 성과와 그로 인한 비핵국가들의 불만 때문이다. TPNW는 핵전쟁의 결과에 대한 세계인들의 경각심을 제고하기 위한 인도주의적 고려에서 출발했다. TPNW 추장자들은 이 조약이 NPT를 보완하는 한편 핵무기 사용 금지 규범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자들은 동 조약이 오히려 NPT의 역량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2020년에 NPT 체제는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NPT는 핵군축, 핵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3대 축(pillar)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핵비확산 관련 논의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NPT 체제의 기여에도 불구하고 비판이 많다. 

 

NPT 조약에 대한 비판으로는 첫째, NPT가 보편적·강제적인 규범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조약 자체에 서명한 적이 없다. 북한은 서명은 했으나 2003년에 탈퇴했다. 1995년에 NPT 연장 결정과 함께 채택된 결의안은 중동지역의 모든 국가들이 NPT에 가입하도록 촉구했고, 국제사회가 북한의 NPT 준수를 설득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양자 및 다자적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지금까지 큰 성과가 없었다. 둘째,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NPT가 강제성이 약하다는 점이다. 셋째, NPT의 비판자들은 이 조약이 근본적으로 불공정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비판자들은 NPT가 핵보유를 현상 동결함으로써 조약에 의해 승인된 5대 핵보유국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반면 이들이 실제로 핵무기를 철폐하도록 충분히 압박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기존 핵확산금지조약을 대체할 목적으로 추진된 것이 TPNW이다. 하지만 TPNW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우선 TPNW는 무엇이 핵무기에 해당하는지 명확한 정의를 제시하지 않을 뿐 아니라 NPT조약 VI조에 규정된 효과적인 핵군축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예를 들면 IAEA의 최신 안전조치인 추가의정서를 포함하지 않고 핵군축 검증도 포함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TPNW는 NPT와 경쟁관계의 규범으로서 NPT 회원국들의 이탈을 유발할 수도 있다. 또한 TPNW는 동맹관계의 확장억지를 불법화함으로써 비핵무기 국가들의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 유혹을 자극한다. NPT 체제 내에서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과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국으로 평가되는 4개국(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 9개국은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NATO 국가들과 일본, 한국 등 핵보유국의 ‘핵우산’ 제공을 받는 대부분의 국가들도 참여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NPT 체제가 불공정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체제로, 오히려 핵확산을 조장한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핵무기를 보유한 핵심 국가들이 협상에 불참하여 비핵국가들의 입장만 반영한 반쪽짜리 조약이 되었고, 핵보유국가들의 반발로 핵군축의 실질적 효과도 의문시된다.

 

TPNW와 핵비확산 레짐

 

이러한 상황에서 TPNW 발효는 국제 핵비확산 레짐 강화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NPT는 2020년에 50주년을 맞아 성대한 평가회의가 예정돼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NPT 평가회의는 2021년으로 연기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국제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시작된 미중 패권경쟁의 악화, 고조되는 반세계화 추세 속에 글로벌 거버넌스와 국제제도의 약화, ‘레짐 붕괴(regime meltdown)’ 현상은 우려되는 추세이다. 특히 근간 국제질서에서 글로벌 거버넌스와 국제규범 및 레짐의 약화는 뚜렷한 추세를 이루고 있다. 최근의 중요한 사례만 들어봐도, 미‧러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폐지, 미국의 대이란 핵합의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탈퇴,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및 재가입, 북한과 이란으로 인한 NPT 체제의 약화, 자국이익 우선주의 및 보호주의로 인한 자유무역협정(FTA) 레짐의 약화, 길거리 민주주의, 포퓰리즘으로 인한 민주주의 위기 등이 주요 사례라 할 수 있다. 

 

현행 NPT 레짐의 약화는 근간 국제정치의 전반적인 추세로서 강대국들이 지정학적 이익을 앞세우면서 국제질서의 규범적·제도적 틀을 경시하는 경향이 중요한 요인이다. 그 핵심에는 미중 패권경쟁과 미러 간 군비경쟁 등이 자리잡고 있지만, 특히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미국의 국익만을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여파가 크다. 다행히 트럼프 뒤를 이은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이 탈퇴한 각종 국제기구 재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시대 대외정책의 두 축은 다자주의와 가치ㆍ규범외교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다자주의는 국제 제도 및 기구, 레짐에 대한 존중과 복귀, 동맹 및 우방국들과의 협력 강화를 포함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언하고 있는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재가입 검토, 이란 JCPOA 복귀 검토 등을 포함하며,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의 반전(反轉)이라 할 수 있다. 가치ㆍ규범 외교는 민주주의, 인권 등 가치와 규범 중시, 규칙 기반의 무역질서 강화 등을 포함하며,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강조해 온 거래적 국제관계관의 반전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시대가 초래한 국제질서의 갈등과 반목,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각박한 국익전쟁은 어느 정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다자주의로의 복귀라는 맥락 안에서 미국의 비확산 리더십이 과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 트럼프 행정부 들어와서 미국의 핵비확산 정책은 대체로 퇴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핵태세검토(NPR) 보고서는 향후 국제정치 상황에 따라 핵무기가 사용할 수 없는 무기에서 실제 사용될 수 있는 무기로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북한처럼 NPT 체제 밖에서 비확산 규범은 물론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소극적 안전보장의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핵무기 선제사용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트럼프 행정부 이전에도 미국 스스로 핵비확산 정책의 예외를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세는 비확산 레짐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 스스로 비확산 정책에 예외를 만든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인도 간 원자력협력협정이다.

 

일찍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핵무기 없는 세계의 비전을 고양한 기여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핵무기금지조약을 추진한 스위스의 NGO인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은 201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핵무기의 위험을 제거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미·중, 미·러 강대국 전략경쟁으로 인해 핵무기 금지 조약이 추가적인 동력을 얻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미국이 핵비확산 이슈에서 리더십을 회복하려면 우선 TPNW와 NPT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견을 해소하는 데서부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TPNW와 NPT 간의 불일치는 TPNW가 다른 조약과 충돌할 경우 TPNW가 우선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TPNW는 핵군축을 위해서는 효과적인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함의

 

TNPW 발효는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위해 몇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재점화시키는 자극제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TPNW는 북한 비핵화, 혹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상이 정체된 현 국면에서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참여연대 등 한국의 진보진영은 남북 모두 핵무기금지조약 서명으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거대한 역사의 물결에 하루빨리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는 입장이다. 참여연대는 한반도는 핵전쟁의 위협이 상존하는 지역이며 한국은 일본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원폭 피해자가 있는 국가로, 핵무기금지조약에 찬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진행되어 ‘높은 단계의 비가역성’이 확보된다면 남북이 TPNW에 동시 서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국책연구소 보고서에서 등장하기도 했다.주1)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핵문제가 여전히 미해결인 상태에서 미국의 확장억지까지 금지하는 TPNW에 대해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동북아 비핵지대화 논의에 대한 시사점이다. 핵무기 없는 세계가 당장 실현되기 어렵다면 그 중간단계로 동북아 지역에서 핵무기를 금지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비핵지대(NWFZ) 구상은 특정 지역 내 국가들이 핵무기를 제조, 획득, 시험 또는 보유하지 않기로 한 협정에 의해 성립된다. 현존하는 NWFZ는 현재 5개로, 그 중 4개가 남반구에 소재한다. 현재 NWFZ 협정에 의해 다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중남미(1967년 트라틀롤코 조약), 남태평양(1985년 라로통가 조약), 동남아시아(1995년 방콕 조약) 중앙아시아(2006년 세미팔라틴스크 조약), 아프리카(1996년 펠린다바 조약) 등이 있다.

 

 이들 사례에서 각기 환경은 다르지만 비핵지대 구성의 공통된 요건은 핵무기의 부재,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 조약기구의 설치 등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핵무기의 부재란 해당 지역 내에 핵무기의 개발·제조·실험·보유·배치 등을 금지하는 것이며, 해당 지대에 대한 핵무기의 사용 및 사용 위협을 금지하는 것이 소극적 안전보장이며, 조약의 위반을 방지하고 관련된 분쟁을 해결할 조약준수 기구의 설치가 필요하다.

 

 한반도가 NWFZ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 요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관련 핵무기 보유국들, 특히 미국, 중국, 러시아가 북한에 소극적 안전보장을 제공할 용의가 있는지 여부이다. 둘째,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무기와 모든 관련 프로그램을 포기하면서 이런 생각을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북한과 관련 주변국들 간의 심각한 불신을 고려할 때, 신뢰구축이 선행되지 않는 한 비핵지대 구상의 진척은 어려울 전망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결국 북한의 핵무기 보유 유인을 해소할 수 있는 적절한 안전보장 조치와 인센티브, 주요 관련국들의 합의 등 정치적 요건이 갖춰져야 달성될 수 있다. 

 

핵심 핵무기 보유국들의 불참으로 인해 핵무기금지조약은 있으나마나 한 조약이 됐다는 비판 속에서도 동 조약의 발효로 국제 핵비확산 레짐은 추가적인 동력을 얻게 됐다. 무엇보다도 TPNW는 유엔에서 다수 국가들의 합의에 의해 성립된 조약이라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TPNW는 NPT 체제 내의 핵무기 보유국들뿐 아니라 기타 핵무기 보유국들까지도 대상으로 보편의무(erga omnes)를 발생시키는 강행법규(jus cogens)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기존 핵무기 국가들뿐 아니라 비핵무기 국가들 모두가 TPNW의 보편규범 적용을 받는 날이 오면 북한도 이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고 한반도 비핵화도 그만큼 앞당겨질 것이다. TPNW가 당장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이를 향한 비전과 리더십은 분명히 핵무기의 위협을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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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홍 민, “북한의 자발적 비핵화와 정치-기술적 과정,” 통일연구원 Online Series (201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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