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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美 인플레 기대심리: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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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2월16일 17시10분

작성자

  • 강태수
  •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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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의 역대급 인플레이션이 온다.” 월가(街)에 나도는 공공연한 괴담이다. 2월 5일자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이 인플레이션 논쟁에 불을 붙였다. 바이든 정부는 1조 9천억 달러 코로나19 긴급재정지출을 추진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쏟아 부은 전쟁비용보다 크다. 결국 두 자릿수 인플레를 보게 될 거다. 서머스의 경고다. 1970~80년대로 회귀할 거라는 지적이다. 1980년 인플레는 13.5%다. 

 

□ 이틀 후 7일 옐런 신임 재무장관이 반박에 나섰다. “1조 9천억 달러 지출은 완전 고용 달성에 필수적이다. 지금 추가 부양하지 않으면 코로나 실업률이 수년간 지속된다. 인플레이션이 급등해도 관리할 수단이 있다.” 2월 10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가세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노동시장이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위기 회복에 통화정책만으로 충분치 않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관건이다.”

 

□ 시장의 선택은 서머스 편인 거 같다. 투자자들은 이미 인플레이션 한 가운데 있는 듯 행동한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7년 만에 가장 높다. 종래 물가목표 2%를 훌쩍 넘겼다. 이러다 보니 물가 상승 시 손해를 보상해 주는 연동국채(TIPS: treasury inflation protected securites) 인기가 상종가다. 인플레이션 리스크 헤지(hedge)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0년 미국 물가연동국채(TIPS) 수익률이 35%다. 채권상품 가운데 수익성이 가장 높았다.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 수준도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높은 인플레기대 심리가 주요인이다. 2020년 8월 0.51%에서 2021년 2월 12일 1.21%로 두 배 이상 올랐다. 긴급재정지출 1조 9천억 달러는 국채발행으로 조달할 계획이다. 미 국채금리 상승 압력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는 의미다. 

 

□상황이 다급한데 미 연준의 대응이 과거와 사뭇 다르다. 연준이 미처 의도치 않은 결과도 뒤따른다. 

 

연준이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 리스크를 키우는 모양새다. 

   올 하반기경 미국 전역에 백신접종이 마무리된다. 집단면역이 형성되면 눌려있던 소비,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다. 물가상승은 불 보듯 뻔하다. 과거 연준은 즉시 대응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플레 기대심리 안정화에 공을 들이지 않고 있다. 2020년 8월 도입한 새로운 통화정책 때문이다. 목표치(2%)를 넘어서는 인플레이션도 용인한다. 정책의 무게추가 물가안정에서 고용안정으로 이동했다. 소위 유연한 평균물가목표방식(flexible average inflation target)이다. 예컨대 올해 인플레이션이 5%라도 내년 1%면 평균은 2%다. 대신 내년 통화정책은 초긴축으로 강행해야 ‘평균 2%’가 가능하다. 경제활동 사이클 증폭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게 시스템 리스크다.

 

 ② 2022년까지 통화정책 방향을 공언한 것도 리스크 요소다. 

   ‘초저금리 판’을 앞으로도 2년간 더 깔아준 거다. 연준이 보내는 시그널이 너무 단정적이다. 통화당국이 두 손을 스스로 묶어 놓은 거 같다. 중앙은행이 나서서 투기꾼들의 ‘일방향 베팅’을 보장(?)해 준 꼴이다. 자산시장 과열은 더 이상 ‘안 봐도 비디오’다. 중앙은행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기 전에 ‘펀치볼 치우기’다. 그런데 지금 연준은 파티를 밤새 이어가게 위스키 공급을 계속하겠다고 나선 거다. 이러다 보니 글로벌 시장은 유례없는 리스크를 앞에 두게 되었다. 언제가 완화정책은 끝난다. ‘2013년 5월 시장 발작(taper tantrum)’ 보다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다. 

 

연준이 예상치 않은 부작용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자산가격 급등 리스크가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만연해 있다. 포용적 금융(inclusive finance)에도 반한다. 파월 의장은 통화정책의 중심에 코로나로 고통 받는 미국 서민을 보살피겠다는 의지가 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초저금리정책이 사회적 불공정을 더 확대시켰다. 주가 등 자산가격을 올려놓아 소수 고소득 계층만 이익을 봤다. 아이러니다.

 

한국은행이 처한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우선 통화정책의 ‘끗발’이 안 먹힌다. 백신 접종이 지연되고 있다. 민간소비와 고용회복 속도가 더딜 것으로 보인다. 원화 강세가 예상된다. 미국과 달리 디스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10년 만기 장기금리는 양국 간 동조화가 뚜렷하다. 실물경제 사이클이 다른데 금리는 함께 움직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춰 경기 부양을 하려 해도 정작 장기 시장금리는 상승하는 거다. 금융시장에 중앙은행의 영(領)이 안 선다. 

 

 □ 국채 매입 압력이 높아지는 것도 한은이 마주할 위기 상황이다. 미 국채금리 급등으로 국내 국고채 금리가 덩달아 오르면 한은이 매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 국내 인플레이션 압력도 높아진다. 더욱이 최근 코로나 긴급 재난지원금 조달용으로 국채 발행이 예정되어 있다. 국채발행은 국고채 금리를 끌어 올리게 된다. 이 와중에 한은이 장기시장금리 안정 의지를 당당하게(?) 밝힌 점도 찝찝하다(2021년 통화신용정책 운영방향 참조). 장기시장금리 변동성이 확대되면 국고채를 단순 매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때맞춰 정치권도 한은에 돈 찍어 국채 매입하라고 채근하는 중이다. 정부 부채를 발권력으로 지원하는 행위는 중앙은행이 가장 피해야 할 금기 사항이다. 

 

□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선 허울뿐인 기존 ‘물가안정목표제’를 폐기하고 평균물가목표제 도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차제에 고용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한은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속도를 내면 어떨까. 일본은행이 2016년 도입해 효과가 확인된 ‘수익률 통제정책’(yield curve control), 미 연준이 활용했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정책도 고려대상이다. 

 

□ 미국 인플레이션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미국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다. 한국은행 목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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