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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기본소득’, 과연 보편성이 있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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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2월02일 17시10분

작성자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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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0년 3월부터 일부 시군들은 ‘재난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전체 주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였다. ‘재난지원금’이라 하면 재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선별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재난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을 지향하기에 보편적 지급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기본소득’으로 정치적 입지를 확대하려는 경기도 이재명 지사는 2021년 1월 20일 전도민을 대상으로 제2차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발표하였다. 1,399만명의 전도민(외국인 포함)에게 1인당 10만원을 보편적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점차 우리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을 개인의 보편적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지급해야하는 가장 밑바탕의 소득이 있을 때 ‘보편적 복지국가’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갖추어야할 속성들은 보편성, 무조건성, 개인성, 정기성, 현금성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특성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보편성’에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재난기본소득’ 명칭을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모두에게 보편적인 현금지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근대사회의 발전과정을 조명해보면 만민평등(萬民平等)의 사상은 두 가지 개념 속에서 발전하였다. 하나는 자유로운 교환에 기초하여 신분제를 타파한 시장경제의 발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들에게 보편적이고도 획일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정치사회의 발전이다. 권리장전 등 시대별로 다양하게 등장한 여러 권리선언들은 개인들에게 부여하는 다양한 권리의 내용을 정리한 일종의 ‘표준약관’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들에게 각종의 권리들을 평등하게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권리의 내용과 범위는 시대에 따라 변천하는데, 현대에 들어 가장 논란이 되는 권리는 ‘인간다운 삶의 권리’라 할 수 있는 ‘생존권’이다. 과연 ‘생존권’은 권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정치철학자들은 생존권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이성적 논증(理性的 論證)으로 보이고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논증게임(argumentation-game)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논거는 만민평등과 인간존중의 사상이다. 과연 생존권은 만민평등을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매 시대별로 변천하는 권리의 내용을 판단함에 있어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중요한 원칙은 ‘보편적 권리는 반드시 보편적 의무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신체의 자유’를 보편적 권리로 주장하려면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권리를 보편적으로 인정해야만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권리에서 –언론, 집회, 종교, 주거의 자유 등- 개인들이 부담하는 보편적 의무에 대한 경제적 비용은 크지 않다. 예컨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언론의 자유’를 인정할 때 우리가 의무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은 그 사람의 견해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생존권의 경우에는 그 범위와 내용에 따라 개인들이 부담해야 할 경제적 비용은 상당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기본소득을 보편적 권리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재원에 대해서도 보편적 의무를 인정해야 한다. ‘지출-재원’의 양 측면 모두에서 보편성의 요건을 충족할 때 기본소득이 권리로서의 설득력을 갖출 것이다. 그렇지 않고 기본소득의 재원이 차별적인 형태로 조성된다면 그것은 정치적인 구호,그것도 적대감에 기초한 구호에 그칠 뿐 인류의 번영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기본소득을 보편적 권리로 주장하면서도 보편적 형태의 재원부담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일부에서 탄소세, 데이터세, 국토보유세를 언급하지만 이들만으로 충분한 재원이 조성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우리는 기본소득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을 평가하기로 한다. 여기서 우리의 질문은 아주 간단하다. 과연 ‘재난기본소득’은 ‘지출-재원’의 보편성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가? 우리는 경기도의 이전지급이 ‘기본소득’인지 아니면 ‘재난지원금’인지 그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여기에 담긴 정치인의 진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재난기본소득’은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지급되기에 전국민에 대한 보편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경기도 내에서도 31개 시군별  ‘재난기본소득’이 별도로 차등 지급되기에 보편성을 근간으로 하는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지역별로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국가 전체로 볼 때 제로썸(zero-sum) 게임의 경쟁을 초래할 수 있기에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지역별 차등을 인정하는 여타의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지역차등적 기본소득은 보편성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둘째, ‘재난기본소득’의 재원은 기편성된 예산을 재조정하여 마련되기 때문에 도지사의 개인적 역량에 좌우되는 일시적 조치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지사도 언급하였듯이, ‘재난기본소득’은 예산편성의 우선순위에 대한 지자체장의 의지에 대한 문제이다. “지방정부마다 각자 특색과 철학에 따라 경쟁하며 배워가는 것이 지방자치제도”인데, 지자체들은 단체장의 정치적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우리는 ‘재난기본소득’에 제도화의 노력이 결여되어 있기에 보편성을 갖춘 기본소득이라 할 수는 없다.

 

셋째, 경기도는 지역개발기금,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재난관리기금, 재해구호기금으로부터 모두 1조 4,035억원을 조성(또는 차입)하여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에 ‘재난기본소득’은 미래에 쓰일 돈을 현재로 당겨 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금은 미래에 소요되는 지출을 충당하고자 적립한 자금이기 때문에 미래에 그 기금을 사용할 잠재적 수혜자들은 ‘재난기본소득’의 피해를 보게된다. 재원충당을 위해 미래의 수혜자들이 왜 차별적인 처우를 받아야 하는가? 현재의 세출예산 중에서 각종의 선별적이고도 차별적인 지원들을 과감하게 폐지하는 노력이 없었기에, 우리는 재원부담의 보편성이 훼손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은 보편성을 추구하는 기본소득 개념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러나 ‘재난기본소득’이 기본소득이 아니라고 하여 그 지급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절박한 도민의 어려움, 외면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밝힌 바와 같이, 코로나19의 상황에서는 ‘재난지원금’으로서의 당위성은 매우 높고 절실하다. 여기서 주장하려는 것은 ‘재난기본소득’이 ‘기본소득’이 아니고 ‘재난지원금’이며, 또 차라리 ‘재난지원금’의 명칭으로 실질과 형식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경기도는 ‘재난기본소득’이 기본소득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였다고 변명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제도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과제이기에 더 깊고 더 넓은 논의가 필요하다. 비록 ‘보편성’에서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소득이라는 제도의 정당성을 전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위해 정치인이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우리는 정치행위로서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행위에는 반드시 비용이 수반된다. 그 비용은 절박한 사정에 처한 피해자들을 더 많이 구제할 수 없었다는 아쉬움에 있다. 기본소득의 정치적 주도권을 위하여 우리는 절박한 사정의 피해자들을 방관하는 것은 아닐까? 차라리 ‘재난지원금’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했더라면 절박한 이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재난지원금’이라고 하였더라면 우리는 국가적 위기에서 더 많은 손해를 보고 더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우리의 연대감이 더 잘 발휘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평가를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할 수 있고, 또 여기에 내재되어 있는 정치적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정치인에게는 제도화된 보편성이 득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해서는 지지자들에게 차등적인 이익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경제학자들이 분석한 정치인들의 득표행위에 대한 진실이다. 우리가 정치인의 이러한 포퓰리즘적 본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정치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정부여당의 그 엄청난 물량공세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먹고도 안찍는 민주배짱’이 있었기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치의 본질을 각성해야 할 보편적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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