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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제정세] ③ 글로벌 거버넌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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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1월04일 16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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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0-특집호-제37호]에 실린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의 건강뿐만 아니라 글로벌 거버넌스에 있어서도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 질병정보 공유, 방역 노하우, 백신의 신속한 공급을 위한 협력이 필요한데도 패권경쟁을 벌이는 강대국은 자국중심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며 다른 나라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멀티플 팬데믹 상황에서 중심을 잡고 다양한 행위자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할 국제기구마저도 신뢰성과 투명성을 의심받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현존 국제제도 대부분은 과거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기존 국제제도의 적실성을 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한다면 기존 제도의 도약의 기회가 되겠지만, 실패한다면 기존 제도의 몰락과 새로운 제도의 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지속가능성 여부를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국제제도의 위기

 

현재 경험하고 있는 팬데믹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다자주의적 국제제도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첫째, 자국중심주의의 확산이다.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는 경제활동의 차단까지 초래했다. 세계적으로 실업률이 증가하고,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적 하강 국면에 따른 불만이 심화되면서 우파 포퓰리즘과 반국제주의가 인기를 끌었다. 트럼프의 일방주의와 브렉시트는 국제화와 국제이주에 대한 저항의 결과였다. 코로나 위기는 유엔난민기구(UNHCR)와 같이 외국인의 접근성 확대를 펼치는 국제제도에 대한 거부감을 심화시켰다. 트럼프는 정책실패를 감추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를 희생양 삼았고, 보호무역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우며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둘째, 글로벌 거버넌스의 재정난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세계경제는 악화되었고, 각국은 구호 프로그램에 따른 재정부담에 시달린다. 침체한 경기가 코로나 이전으로 회복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백신이 보편적으로 보급되고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2021년 상반기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침체기에 국가들은 글로벌 협력과 개발을 위한 국제제도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도움이 절실한 저소득 국가들의 회복은 더욱 어려울 것임을 의미하며, 지구온난화 방지와 같은 글로벌 공공재를 위한 다자적 협력도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셋째, 미국의 영향력 쇠퇴에 따른 국제제도의 지역화와 중국에의 의존이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이 축소되면서 국제제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참여도 축소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거버넌스의 활동 범위도 특정한 지역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또한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은 국제제도에서 미국의 빈자리를 중국 몫으로 대체할 것이다. 코로나 위기로부터의 회복이 미국에서보다 중국에서 훨씬 더 빠르기에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이런 추세를 당장 역전시키기는 어렵다. 특히 개발협력과 금융 분야의 글로벌 거버넌스는 대중국 의존도를 높일 것이다. 이는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미국의 영향력 상당부분이 중국으로 넘어가게 될 것을 의미한다. 

 

넷째, 국가의 축소와 민간의 역할 확대에 따른 부작용이다. 재정 부족과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국제제도는 민간 행위자 참여를 확대하여 어려움을 극복하려 한다. 게이츠 재단은 WHO 예산에서 미국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글로벌백신연합(GAVI), 글로벌에이즈·결핵·말라리아퇴치기금(GFATM)과 같은 파트너십 사업의 내용과 방향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파리기후협정 과정에서 그린피스 등 국제 NGO와 시민단체들은 주요국 대표들을 압박하여 국가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민간의 역할 확대는 일견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되지만, 결과론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사례에서처럼 국가의 반발과 철수를 초래하여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 자체의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다섯째, 제도화의 후퇴이다. 국제제도의 재정난과 국가들의 자국중심주의 행태는 새로운 국제기구의 수립과 국제조약의 체결을 포함하는 다자적 국제협력 증진 노력을 와해시킬 수 있다. 위기상황에서조차 국가간 경쟁은 국제제도의 다자적 협력 기능을 압도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WHO는 강대국 눈치를 살피다가 보건위기상태 정의를 언어유희 수준으로 떨어뜨려 스스로 신뢰성을 실추시켰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협력을 위해 행위자들은 강대국 경쟁에 잠식된 기존 제도를 우회하여 소규모의 이니셔티브를 모색하거나 비공식적 메커니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것이다. 이 경우 기존의 국제제도는 존재가치를 상실할 수 있는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여섯째, 끝으로 자유주의의 후퇴이다. 그동안 국제제도는 행위자들의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번영을 추구한다는 자유주의에 바탕을 두고 발전해왔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팬데믹에 대한 자국중심주의 접근이 만연하면서 자유주의 접근에 대한 기대가 빠르게 퇴색하고 있다. 헝가리와 폴란드에서처럼 일부 지도자들은 위기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권력기반을 확대하고 시민의 자유적 권리를 억압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자국의 위기 해결에 급급한 서방의 주요국가 지도자들은 이러한 자유주의 역행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는 결국 자유주의 방식의 국제제도에 대한 회의감을 더욱 키울 것이다. 

 

바이든의 미국과 국제제도의 회복 가능성

 

코로나 팬데믹이나 지구온난화와 같은 문제의 해결은 특정 국가의 역할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주의적 해법만이 해결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기구가 전문성을 바탕으로 설립 목적에 맞는 사업을 개발하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자율성과 독립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강대국 패권경쟁이 국제기구의 활동 영역에까지 깊숙이 침투하면서 국가와 국제기구 사이의 관계를 주인-대리인 관계로 이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UNESCO와 WHO로부터 탈퇴를 선언하고 WTO로부터의 탈퇴까지도 언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바이든은 다자주의를 강조하며 당선될 경우 WHO 탈퇴를 철회하고 유엔 등 국제기구와의 관계도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인-대리인 논리로 국제기구 정책을 펼쳤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행위자 사이의 파트너십을 강조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강요보다는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 모색을 시도할 것이다. 특히 바이든의 글로벌 리더십 회복 노력은 국제제도에서 미국의 역할과 능력을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국제기구 정책은 중국과 차별성이 크게 드러날 수 있는 민주적 가치, 인권, 환경에 관한 정책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 가운데 이란 핵협정 복원, WTO 재건, CPTPP 가입, WHO 복귀, 기후변화협정 회복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후변화 분야에서 미국은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니셔티브를 쥐고 중국 등 경쟁국가들을 압박하면서 글로벌 공공재 창출이라는 명분을 세울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바이든은 파리기후협약으로의 복귀를 약속하면서 2035년까지 전력생산에서 탄소배출을 완전히 없애고 2050년까지 미국의 탄소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아울러 자유무역과 탄소배출권을 연계시켜 미국의 환경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산업분야에서 경쟁국가의 추격을 따돌리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러한 접근은 경쟁자인 중국을 세계 최대의 탄소배출국가로 지목함으로써 화력에너지에 의존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압박하려는 속내가 담겨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국제기구 정책에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이미 국제제도 내에 깊이 침투한 미중 패권경쟁의 파급효과는 지속될 전망이다. 국제제도를 무시하면서 중국과 경쟁하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국제제도의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동맹국을 규합하는 정책을 폄으로써 제도 내부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구사할 것이다. 결국 바이든의 다자외교 강화의 목적은 단순히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한 다자협력만이 아니라 국제제도에 대한 미국의 실추된 위상과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 견제 기조는 계속될 것이다.

 

미국이 다자주의로 복귀한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거버넌스에 만연한 위기 요인들이 일거에 해소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선진국 경제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리는 국제기구들은 빠르게 회복하는 중국경제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국제기구와 거리를 두는 사이 중국은 국제기구 고위직에 자국 인사를 대거 진출시켰다. 유엔 전문기구 가운데 30%는 중국인이 수장이며, 국제기구 내에서 중국인 직원의 비중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테드로스 WHO 사무총장처럼 국제기구 수장이 친중국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의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출마한 WTO 사무총장 선거에서도 미국의 입김이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물들 때문에 미국의 국제기구 복귀만으로 과거와 같은 미국의 영향력과 위상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글로벌 거버넌스와 한국의 중견국 외교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글로벌 어젠다 우선순위가 변화하고 있다. 보건, 환경, 사이버와 같은 신흥안보 이슈가 급부상하고, 이러한 위기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회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글로벌 차원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기존의 강대국 중심의 지정학적 논리에 입각한 군사안보, 글로벌 금융 및 무역 등 전통적 어젠다가 사라지거나 위축된 것은 아니다.

 

이처럼 보건, 환경 등 신흥이슈가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글로벌 외교무대가 다차원적인 형태로 변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신흥무대에서는 전통적 강대국이 아닌 중견국가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환경 거버넌스에서 북유럽 국가들의 위상은 강대국들에 버금간다. 노르웨이는 일찍부터 산림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면서 이를 ODA와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글로벌 기후환경제도 수립의 가교역할을 인정받았다. 그 결과 노르웨이는 화석연료에 의한 환경파괴의 원인제공 국가인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으로 친환경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도 글로벌 보건안보 무대에서 그러한 지위를 모색할만하다. 비록 최근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백신 도입에 관한 논란이 있지만 한국의 보건안보 대응은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성공적이었다. 한국은 이미 WHO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이며, 2019 글로벌 보건안보 지수에서 9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성과와 역량을 바탕으로 한국은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에서 주도적 지위를 모색해야 한다. 미국의 WHO 복귀를 계기로 글로벌 보건 거버넌스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WHO 개혁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글로벌 보건안보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신흥분야의 글로벌 거버넌스 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요구된다. 먼저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국가와 국제기구, 그리고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들 사이의 공통의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통이익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고 이에 관해 입장을 같이하는 동지 세력 사이의 연대를 강화시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아울러 해당 이슈 영역에서 글로벌 표준 및 규범 설정을 위한 논의를 주도할 수 있는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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