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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보내며> 재앙적 위기 겪은 예술계, 더 큰 목마름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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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2월30일 17시10분

작성자

  • 이소영
  • 솔오페라단 단장, 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 수석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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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폐쇄로 생계위기까지 몰린 예술가들, “참으로 혹독한 한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재앙적 위기로 지난 한해 전 세계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의 광풍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여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는 예상을 넘어 1년 내내 지속되었다. 평범하게만 여겨지던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고 우리 사회를 유지해오던 생산과 유통, 소비의 고리마저 끊어 놓았다. 예술인들의 삶이 언제 녹록한 적이 있었느냐 만은 비대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강제 속에서 그들은 참으로 혹독한 한해를 보내야 했다. 

 

축제와 전시들은 줄줄이 취소, 연기되었고 전국의 공연장은 수시로 폐쇄와 좌석 띄어 앉기를 반복하였다. 예술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오던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새벽 배송과 택배, 대리 운전 등 일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경쟁이 치열해 쉽지 않았다. 

 

티켓 수익에 의존해야 하는 예술단체들 역시 공연을 취소하거나 연기해야만 했다. 관객들과의 약속이라는 생각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공연을 한다 하더라도 손해를 보는 것은 뻔한 일이다. 좌석 띄어 앉기 시행으로 전체 좌석의 채 50%도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쇄적으로 공연 직전 취소 통보를 받은 예술가들은 허탈감에 빠지기 일쑤다. 우리나라의 전업 예술가들 중 무려 76%가 프리랜서이다. 

 

줄줄이 공연이 취소되면서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조명, 무대제작, 무대설치, 무대스텝, 의상, 분장 등 관련업종에 종사하는 스텝들 역시 아사(餓死)를 걱정해야 한다는 자조적 한탄을 하고 있다. 게다가 고3 입시를 제외한 렛슨 마저 전면 금지 되면서 예술가들의 생계는 그야말로 막막하기 그지없다. 스트리밍 공연을 한다지만 그건 국고나 지방재정으로 운영되는 국립, 공립이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민간 예술 단체들은 스트리밍 공연을 하면 티켓을 판매할 수 없는데다가 스트리밍 작업을 위한 비용마저 부담으로 다가올 뿐이다. 

 

답답하기 만한 정부 지원 대책, 예술 활동에는 ‘턱없이 부족’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정부가 내놓은 지원 대책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말만 코로나 피해 지원이지 정부의 가장 큰 정책과제 중 하나인 일자리 지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이외의 지원 사업 역시 공모 절차나 요구하는 자료들이 기존방식과 다르지 않아 재앙에 준하는 특수 상황임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또 기존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공연예술과 교육 분야의 지원 방향이 ‘온라인 영상 작품제작 지원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그동안 받아오던 지원조차 축소되었다. 온라인 제작 경험이 전무 하고 온라인 제작 환경과 프로세스에 익숙하지 못한 공연예술 단체나 예술인들이 공모에 선정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설사 선정되었다 하더라도 영상 콘텐츠의 퀼리티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이다. 

 

코로나19 피해 극복을 위해 만들어진 정부의 융자 지원조차 문화 예술인들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19 위기 극복을 위한 전체 대출 규모 중 문화예술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0.43%에 불과하다. 문화예술업체의 대출 신청 총 금액 중 승인이 된 건은 겨우 32.8%에 불과하고 이 중 순수예술이 차지하는 비율은 더욱 작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라고 뚜렷하게 상황이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술을 향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 사라질 수 없다…암울하지만 되살아 날 것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코로나19와 같은 전대미문의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하더라도 예술을 향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사라질 수 없다. 인류는 수 백 만년동안 의·식·주라는 본능적인 기초 활동 이외에 예술을 추구하는 유전자를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위축된 본능은 더 큰 목마름으로 다시 살아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년 예술계는 더욱 암울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내년 예산 중 문화, 관광 분야의 예산을 1,480억 원을 감액하였다. 이는 전체 분야 중 공원·환경 분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폭의 감액이다. 전체 예산 중 2.3%에 불과하던 문화예산을 내년에는 2%로 감액한 것이다. 타 도시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국 17개 광역 시·도 역시 올해 공연과 전시, 행사들이 축소되었다는 이유로 앞 다투어 예산을 감액 편성하고 있다.

 

 내년 문화예술계가 얼마나 더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위기 사태가 발생하면 정부의 정책 순위에서 문화, 예술은 뒷자리로 밀려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예술 활동은 예술인들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보루이자 방편이다. 더 이상 그들의 삶이 위협 받아서는 안 된다.

 

위기의 예술계 지원과 예술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 위한 몇 가지 생각

 

코로나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지난 1년은 오히려 우리 예술 생태계 전반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했다. 위기의 예술계를 지원하고 우리 예술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코로나19 긴급 지원 대책을 공모사업으로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모라는 것은 신청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정된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재앙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책이 공모로 운영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최소한의 절차로 가장 신속하게 예술계를 지원해야 한다. 공연계는 ‘밀폐, 밀집, 밀접’이라는 ‘3밀’의 현장예술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특히 코로나의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특수고용노동자와 프리랜서들에게 매달 최대 50만원씩 3개월 동안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하는 대책을 마련하였지만 증빙이 쉽지 않아 많은 이들이 포기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내달 정부는 3차 지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밝혔지만 거기에도 예술단체와 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공모 방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공공지원제도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둘째, 스트리밍 공연, 온라인 공연이 진정한 대안인가.

많은 이들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안으로 스트리밍 공연과 온라인 공연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온라인 미디어 사업에 많은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예술의 온라인화도 일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나아갈 방향은 아니다. 공연 예술은 현장 예술이다. 공연장을 울리는 미세한 파장 속에서 연주자와 관객은 서로 교감하고 감동을 느낀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핸드폰으로 숲의 영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피톤치드 가득한 숲속을 직접 거니는 것과 같은 감동을 주지는 않는다. 영상으로 만족한다면 여행도 TV에서 소개되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방송을 보며 더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영상제작 사업은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고, 예술 활동은 예술 행위 그 자체이다. 온라인 공연은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팬데믹에 임시방편은 될 수 있으나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아니다. 지금의 형태로 지원이 계속된다면 순수 예술 단체들이나 예술가들은 소외된 채 그간 축적된 영상화 작업의 노하우가 많은 대중 예술 쪽으로 지원금들이 흘러 들어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정부는 깊은 고민 없이 온라인화만이 대안인양 얘기하는 소리에 급하게 미디어 사업의 예산을 확대하기 보다는 예술 활동 그 자체에 지원을 확대하여야 한다. 

 

셋째, 메세나 촉진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20세기 초, 미국을 필두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CSR)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오늘날 기업의 윤리경영과 사회공헌 활동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논의의 차원을 넘어서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여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에서도 CSR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GDP대비 기부금의 비중은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기업의 전체 기부금 대비 문화 예술분야에 대한 지원은 2% 정도에 그친다. 개인의 순수예술에 대한 기부는 더욱 심각해 0.2%에 불과하다. 이는 12.34%에 이르는 미국의 개인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율과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는 기업기부금 중 40% 가까운 금액이 문화 예술에 지원되며 문화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사회 복지 쪽에 치중되어 있는 우리의 기부 형태와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영국 정부는 ‘Creative Britain’  발표하여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가 곧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었다. 또 기부녹서를 발간하여 기부문화를 장려하고 있다. 미국 역시 다양한 기관들을 설립하여 메세나 활동을 촉진시키고 있다. 프랑스는 과감한 조세지원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기부문화를 촉진시켰다(매출의 0.5% 한도 내에서 60%를 세액 공제). 

 

세계는 지금 EGS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ment)를 고려하여 투자 기업을 선정하는 것이다. 즉 기후 변화와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지배구조가 투명하며 지역사회에 공헌을 하는 착한 기업에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운용기금과 글로벌 투자운용사들,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을 운용하는 노르웨이 국부 펀드를 비롯한 각국의 대형 연기금들이 앞 다투어 EGS 투자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상황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큰 영향을 받는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예술인들은 흔들림 없이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문화예술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 다양한 혜택을 주고 기업의 메세나 활동을 독려하고 기부활성화를 위한 조세지원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예술인을 위한 보다 촘촘한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2011년 1월, 32살의 젊은 예술가 최고은 씨가 이웃집 대문에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과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라는 메모를 남긴 채 사망하였다. 그녀는 프리랜서 시나리오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정부는 2011년 11월 ‘최고은 법’으로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올해 5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지난 12월 10일부터 개정 고용보험법이 시행되었다. 하지만 적용 대상을 ‘예술인 복지법’이 명시하는 예술 분야로 한정하고 있어 예술분야에 종사하고 있어도 예술인 복지법이 명시하지 않은 직군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예술인에 대한 복지 문제는 예술의 성장 발전과 직결된다. 특히 프리랜서가 많은 문화 예술계의 고용안정의 문제는 끊임없이 대두되어 왔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되어 그나마 다행이긴 하나 보다 면밀한 조사와 검토를 통해 실효성 있는 제도로 정착시켜야 한다. 특히 예술창작과 발표의 기회가 부족하고 적정수준의 경제적 보상조차 받지 못하여 이중고를 겪고 있는 장애 예술인에 대해서도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국가적 위기에선 언제나 뒷전인 예술 … 예술인 긍지와 자긍심으로 위기를 극복하자”

 

참으로 지난(至難)했던 한해를 보내며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대목이 생각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고, 우리의 부력(富力)은 배불리 먹을 만하면 족하다. 다만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는 우리를 행복하게 할뿐 아니라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평생을 민족의 독립을 위해 바친 김구 선생님이 꿈꾸던 나라가 경제대국이 아닌 문화대국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남긴다. 국가적 위기의 상황이 닥칠 때마다 예술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곤 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역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때 일수록 우리 예술인들이 긍지와 자긍심을 잃지 말고 서로를 격려하며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문화가 발전하고 성장하지 않는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문화를 지원하고 키우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시대적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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