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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이냐 분열이냐,국가흥망의 교훈 #20 : 잔학한 황제로 이어진 북제(北齊) (D)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1년01월15일 17시05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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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23> 이주조의 반격과 효장제 원자유의 피납(AD530)

 

이주영이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주세륭과 하발승과 전이 등 이주영 세력들은 일단 북쪽으로 피신하기로 했다. 원자유의 처이자 이주영의 딸인 북향장공주도 황하를 건너 북쪽으로 도망갔다. 하발승은 곧 이주세륭과 작별하고 주서는 중도에서 낙양으로 돌아왔다. 이주세륭이 북쪽으로 가려는 것을 사마자여가 막아서며 말했다.   

 

  ” 전쟁터에서는 약함을 보이는 것만큼 나쁜 것이 없습니다. 

    도망가실 것이 아니라

    무리를 되돌려 황하다리를 공격하고 

    그들이 예상치 못하는 곳으로 치고 들어가면

    큰 공을 이룰 수도 없지 않습니다.

    또 설령 일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아직 힘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 또한 

    다른 사람들이 배반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주세륭이 옳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곧바로 군대를 돌려 황하다리 하교를 공격하여 점거한 다음 낙양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이주영을 살해하고 잔뜩 들떠있던 북위 조정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주세륭은 기병 1천명에게 흰 옷을 입혀 궁궐로 보내 이주영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황제는 사면을 약속하면서 이주세륭에게 항복을 회유하였다. 이주세륭은 단호히 거절했다. 원자유는 이숙인을 대도독으로 삼고 이주세륭을 토벌하도록 했다. 

 

이주세륭은 군사를 물려서 건주(산서성 장치 남쪽 진성부근)로 올라갔다. 당시 분주(산서성 습현)를 지키던 이주조가 태원을 장악한 뒤 장자에서 이주세륭과 만났다. 장광왕 원엽을 추대하여 황제로 옹립하고 이주조를 대장군, 이주세륭을 상서령으로 삼았다. 원엽은 탁발황(추존 경목황제)의 11번째 아들 탁발정의 손자다. 새로운 황제를 세운 이주조와 이주세륭이 결탁하여 군대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 때 경주(감숙성 경천)에 있던 이주천광과 하발악도 군대를 몰아 낙양으로 합류했고 서주방면에 있던 이주중원도 낙양으로 내려왔다. 평주자사 후연도 낙양토벌 대열에 합류했다.    

 

경종 효장제 원자유는 대사마 녹상서사 원휘에게 모든 것을 맡겼으나 용렬하고 시기심 많은 원휘는 모든 신하들의 건전한 건의를 묵살하고 오로지 황제의 비위만 살펴가면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거짓 확신만 심어주었다. 경종은 하발승과 정선호를 보내 동쪽의 이주중원을 막으려했으나 하발승은 정선호가 자신을 자꾸 의심하므로 이주중원에게 투항해버렸다. 나중에 정선호는 양나라로 망명했다.  

 

이주영의 조카 이주조는 힘 안들이고 황궁까지 들어왔다. 원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으며 황제 원자유는 이주조의 군사에게 붙잡혀 영녕사 누각에 매여졌다. 군사들은 황궁을 약탈하고 궁녀들을 폭행했으며 황제의 아들을 모두 죽였다. 이주세륭이 장치에서 낙양으로 들어오자 이주조는 당숙 이주세륭을 꾸짖었다. 

 

 ” 숙부께서는 어찌 천주장군(이주영)에게 

   재앙을 받도록 하셨습니까! “ 

 

이주세륭은 매우 언짢았지만 겉으로 겸손한 말과 언색으로 사과하고 돌아섰다. 



<24> 황제를 죽이지 말라는 진주자사 고환(AD530)

 

이주조는 경종의 명령으로 군대를 몰고 들어오는 흘두릉보번을 막기 위해 서둘러 진양(태원)으로 돌아갔고 낙양은 이주세륭에게 맡겼다. 이 때 붙잡혀있던 경종 원자유도 함께 진양으로 끌려갔다. 진주(산서성 임분)자사 고환은 이주조에게 황제를 다치게 하지 말 것을 권고했는데 이주조는 묵살했다. AD530년 12월 23일 이주조는 경종 원자유를 진양의 삼급불사에서 목을 매어 죽였다. 그의 나이는 24세였다. 그리고 장광왕 원엽을 황제로 옹립했다. 흘두릉보번의 군대가 진양을 공격하여 크게 이겼고 이주조는 진주에 있던 고환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고환의 측근들은 반대했지만 고환이 말했다.

 

  ” 이주조가 급해서 그런 것이니 다른 일은 없을 것이요.

    내가 그것은 보장하겠소.“

 

고환은 일부러 진군속도를 늦추어 이주조가 핍박을 심하게 받게 한 다음 흘두릉보번을 공격하여 목을 베었다. 이주조는 고환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형제의 의를 맺었다.  

 

 

<25> 병주와 사주와 진주지역을 장악하는 고환(AD530)

 

병주(태원 부근)과 사주(태원 북쪽 흔현)에는 갈영의 무리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이주씨의 종족인 계호(거란계통 호족)로부터 박대를 심하게 받았으므로 항상 반란의 염려가 있었다. 이주조가 그 고민을 고환에게 묻자 심복으로 하여금 통솔시키게 하면 된다고 했다. 이주조가 누가 적임자냐고 묻자 곁에 있던 하발윤이 고환을 추천하자 고환이 주먹으로 하발윤의 얼굴을 쳐서 이빨을 부러뜨렸다.

 

  ” 천하의 일을 의논하는 차에 

    하찮은 사람이 끼어들어 저런 망령된 말을 했으니  

    청컨대 그를 죽이십시오.“

 

이주조는 고환의 충심을 믿고 그에게 병주와 사주 지역을 맡겼다. 고환은 이주조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나가서 선언했다.

 

  ” 위임을 받아서 주의 병사를 통솔할 것이니

    분하 동쪽에 모여서 나의 명을 받으라.“

 

이주조의 측근 모용소종이 이주조에게 경고했다.

 

  ” 고공(고환)의 재주가 세상을 덮을 지경입니다.

    교룡에게 구름과 비를 주는 격이니 

    장차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주조가 말했다.

 

  ” 향불을 피우고 의형제를 맺은 사이인데 무엇을 의심하는가?“

 

모용소종이 반박했다.

 

  ” 친 형제도 믿지 못하는 세상인데 하물며 의형제야 어떻겠습니까?“

 

고환의 뇌물을 받은 이주조의 측근들이 모용소종은 과거 나쁜 관계 때문에 고환을 악담을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자 이주조는 크게 화를 내면 모용소종을 가두고 고환에게 서둘러 임지로 나가라고 명했다.    

 

태원을 나와서 임지로 향하던 고환은 도중에 북향장공주를 만나 장공주의 말 300필을 탈취했다. 이주조는 고환에게 속은 것이라고 판단하고 즉시 모용소종을 풀어주면서 대책을 물었다. 모용소종은 고환이 독 안에 든 쥐일 뿐이라고 가볍게 말했다. 이주조는 급히 고환을 추격했지만 교량다리가 부러지면서 건널 수가 없게 되었다. 고환이 강 건너에서 말했다.

 

  ” 제가 말을 뺏은 것은 훔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장공주의 앞길에 도적이 있어서 그걸 피하게 하기 위한 선제 조치였습니다.

    장공주의 모함만 들으시고

    저를 추격하시니 제가 건너가 죽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장차 분주와 사주 무리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겁이 납니다.“

    

이주조는 오해를 풀고 강을 건너가서 고환에게 칼을 주면서 오해한 자신의 목을 치라고 했다. 고환은 목을 놓아 울면서 말했다.

 

   ” 천주장군께서 죽은 후

     내가 누구를 우러러 볼 수 있겠습니까.

     대가(이주조)께서 천수 만세하셔서 

     저를 힘껏 활용하시기 바랄 뿐입니다.

     지금 측근의 말로 이간질을 당하고 있으니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이주조는 미안한 마음에 서로 부둥켜안고 한 참을 같이 울었다. 마침내 칼을 들어 백마의 목을 자르고 다시 한 번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고환의 측근 울경이 그 참에 장사를 숨겨 이주조를 잡아 죽이려고 했으나 고환이 울경의 팔을 깨물며 막으며 말했다.  

 

  ” 지금 죽이면 반드시 그의 군대들이 결성하여 공격해 올 것이다.

    지금 군사는 배고프고 지쳐 있으니

    싸움에 이길 가능성도 적고 

    또 그 틈을 타고 여러 곳에서 반란을 일으킨다면

    피해가 더욱 심할 뿐이다.

    이주조는 용감하기는 하나 꾀가 없으니

    도모한다고 할 것도 없는 사람이다.“

 

다음날 이주조가 병영으로 돌아가서 고환을 불렀는데 고환이 가려는 것을 소등이 극구 말려서 가지 않았다. 이주조는 물을 사이에 두고 고환에게 심한 욕을 하고는 태원으로 돌아갔다.

 

 

<26> 원공의 즉위(AD531)

 

이주세륭의 형제 이주중원과 이주언백 등은 장광왕 원엽이 인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더 가까운 혈통으로 교체하기를 바랐다. 원엽은 탁발홍의 아들이므로 죽은 원자유의 작은 아버지였다. 그러나 광릉왕 원공은 원자유의 사촌 동생이면서 똑똑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황문시랑까지 역임했지만 AD523년 원차가 정권을 휘두르는 동안에는 벙어리인척 피하여 숨어살았다. 설효통이 이주천광에게 말했다.

 

  ” 광릉왕은 고조(원굉)의 조카이며 명망이 좋고 침착하며 

    여러 고난을 겪어 본 사람이라서 신중합니다.

    주군으로 모시면 하늘과 사람에게 알맞고 화합될 것입니다.“

이주천광이 이주세륭 등과 협의한 끝에 벙어리가 아닌 것과 실제 재능을 확인 한 다음 원공을 설득하여 주군으로 영입했다. 원공은 형식적으로 세 번을 사양한 다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AD531년 2월 19일) 절민제 또는 전폐제라고 불린다. 고환이 세웠다가 폐위시킨 원랑을 후폐제라고 부른다. 

 

 

<27> 이주씨의 폭정(AD531)

 

북위 조정은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노군왕 원숙은 태사, 회양왕 원흔이 태부, 이주세륭이 태보, 장손치가 태위가 되었는데 장손치는 사양했다. 조군왕 원심이 사공, 이주천광은 옹주자사, 이주중원은 서주 및 연주자사, 이주조는 병주자사 및 천주대장군으로 임명되었지만 삼촌의 직함(천주대장군)만은 받을 수가 없어서 사양했다. 고환에게도 발해왕 작위를 하사했지만 고환은 거절했다. 이주영이 실권을 장악했을 때에는 이주세륭이 행동을 매우 조심하고 또 사람들을 후히 대접하여 민심을 많이 얻었는데 이제 상서령이 되어서 정치를 장악하게 되자 교만하고 탐욕스럽고 음란한 사람이 되어갔다. 이주중원도 서주와 연주에서 폭정을 거듭하면서 민심을 잃었고 이주조 또한 병주와 분주에서 폭정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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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고환의 동쪽 이동과 이주씨 토벌 선언(AD531)

 

고환은 진주자사로 임명되어 호관(산서성 장치부근 노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이주씨의 폭정으로 전국의 민심이 흉흉해지자 신도를 토벌한다고 하고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려갔다.신도는 기주의 중심지로써 반란을 일으킨 유령조에게 동조하던 고건과 고오조 형제가 점거하던 곳이었다. 고환이 군사를 이끌고 신도로 온다고 하자 주민들은 전쟁이 일어날까봐 매우 불안해했지만 고건은 고환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있었으므로 걱정할 것 없다고 위로하였다. 그리고 10여 기병을 거느리고 비밀리에 고환을 만났다. 고환은 고건의 생각과 계획을 듣고 크게 기뻐하고 휘장막 안에서 잠을 자면서 같이 움직이기로 결의하였다. 갈영의 반란무리에 동참했다가 이주영에게 발탁되었던 이원충은 이주영이 시해당하고 경종 원자유마저 피살되자 은퇴해 있다가 고환이 가까이 온다고 하자 군사를 규합하여 고환과 합류하였다. 고환은 부하장수들에게 특별히 명령하여 주민들에게 절대로 피해를 끼치지 말 것을 당부하였으므로 주변에서의 평판이 매우 좋았다.

하북성 기주(신도)에 정착한 고환은 이주씨를 공격하기 위한 군사를 일으켰다. 제일 먼저 태원에 있는 이주조가 대상이었다. 군사를 출병하기 전에 거짓 편지를 써서 이주조가 그곳 주민들을 강제로 병탄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주민들은 이주조에게 복속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였다. 고환은 손등과 울경이라는 두 장수를 보내 불안한 주민들의 힘을 규합하여 이주조를 타도하자고 다짐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원충은 은주(하북성 석가장 부근)방면을 공략했다. 고환은 은주를 지키고 있는 이주우생을 돕는 척하면서 군사를 보낸 다음 이주우생을 사로잡고 목을 베었다. 고환이 이주우생의 목을 받아들고 선언했다.

 

  ” 오늘 이 순간 이주씨를 토벌하는 반란을 결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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