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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택정책> (4)역대 정부의 주택정책(Ⅰ):80~90년대와 DJ·노무현 정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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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2월02일 17시05분

작성자

  • 이종규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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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의 주택정책은 모두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랬을까? 이 시리즈에서 제기하는 가설은 주택시장의 대세적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천편일률적 정책수단들을 반복적으로 동원한 것이 그 원인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선 역대 정부의 주택정책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주택정책 수단을 동원함에 있어서 좁은 안목이 적용되었다는 점을 부각하게 될 것이다. 한편 현재와 같은 주택정책의 체계가 잡혀진 것이 외환위기 이후라는 점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의 정책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 1980~1990년대

 

부동산 경기는 일반 실물경기에 후행하기는 하지만 일반 경기에 따라 등락하는 속성이 있다. 특히 금융이 발달하지 않은 경우 부동산 경기는 일반 경기를 추수(追隨)하는 특성을 보인다.  부동산 매입 자금을 일반 경제활동을 통해 축적해야 하였기 때문이다.주1) 

※주1) 최근에는 부동산경기가 일반 경기와 분리되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금융부문의 확대를 배경으로 실물 경기가 위축되면 여유 자금이 새로운 투자 기회로 부동산을 활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호황기를 거치면서 개인들의 소득이 향상된다. 기업들도 투자 확대 등을 위해 토지나 건물을 구입하여야 한다. 이에 따라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부동산 수요 확대기에 공급이 부족하게 되면 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 후반기의 주택가격 상승은 이와 같은 부동산 경기의 전형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1980년대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된 반면 도시에서의 주택 공급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후반 주택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우리 경제는 1986년부터 3저 호황주2)으로 장기간 고도성장을 구가한 데다 경상수지가 흑자로 전환되면서 해외부분을 통한 통화 공급이 확대되었다. 

※주2) 3저(3低) 현상이란 저물가, 저유가, 저환율 등을 지칭하는데 이 현상은 당시 거시경제적 여건이 대폭적으로 호전된 것을 의미한다.  

 

주식시장도 활황을 거듭하는 등 자산시장도 호황을 지속하였다. 이러한 일반 경기의 호황 지속으로 주택 구입을 위한 자금 여력이 축적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올림픽 개최와 함께 사회적 분위기도 이완되어 소비지출이 확대되는 추세였다. 이 상황에서 주택 공급의 부족 등을 배경으로 주택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함에 따라 소위 “광란의 투기열풍”이 일어났다.

   

이에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투기억제 대책(1988년 8월 10일)을 시행하는 한편 1989년 5월에는 ‘200만 호 주택건설 추진계획(1988~1992)'을 발표하고, 이어서 1990년 토지공개념 관련 조치들을 단행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구사하였다.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는 1991년의 시기에 이르러 주택시장은 안정화되고 그 이후 장기간 주택시장은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였다. 

 

당시의 대책들이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대규모 주택공급에 더하여 토지공개념 관련 제도의 도입은 시장에 충격을 줄 정도로 강력하였다. 하지만 그 정책의 효과가 즉시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 주택 가격이 안정을 보인 것은 경제 여건 변화 및 시장상황의 변화에도 일부 기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정책이라 하더라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이 기간 중 경제여건의 변화 등으로 시장의 흐름에 큰 변화가 수반되어야 정책 의도가 현실화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 대책이 사후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사전적인 측면에서는 결코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80년대 후반 주택 가격이 이미 큰 폭으로 상승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주택 구입 기회를 상실하는 등 주택시장 불안으로 고통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즉 사전적인 대책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정책의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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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정부주3)

※주3) 외환위기 당시의 주택정책에 대해 보다 자세한 논의는 윤주현·김혜승(2000)( 『외환·금융위기 이후 주택정책의 시장파급효과 분석연구』, 국토연 2000–9, 국토연구원, 2000)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 이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대부분 부동산 경기에 따라 수요를 억제하거나 진작하는 정책을 되풀이하여 왔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투기 억제, 세금인상 등을 단행하였다.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 세금 부담 경감, 대출 지원 등의 대책을 반복하였다. 정책수단의 내용을 보면 대개가 가격조정 정책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시각에 입각하여 김대중 정부 이후의 부동산 정책을 정리하고자 한다. 

 

지금과 같은 다양한 규제나 규정을 주택정책 수단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가 취임한 1998년 초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였다. 기업부문의 과다차입으로 촉발된 외환위기로 인해 경기가 큰 폭으로 위축되는 상황에서 일부 기업과 개인이 주택 등 부동산을 처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IMF 프로그램이 적용되면서 고금리정책이 시행되었다. 그 여파로 기업의 파산이 이어지는 등 극심한 불황이 발생하였고 실업이 대폭 늘었다. 이 상황에서 금융기관은 대출을 회수하는 소위 신용경색(credit crunch) 현상이 나타남으로써 주택 시장은 거래 자체가 마비되는 사실상 시스템 붕괴 상황에 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의 폭락을 방치할 경우 경기악화를 심화시키는 데 더하여 서민들의 생활도 궁핍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정부는 하락하는 부동산 가격을 반전시키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였다. 건설 및 부동산 경기는 고용이나 산업유발효과가 클 뿐만 아니라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이와 동시에 부동산경기 진작은 IMF 프로그램에서 설정한 거시경제정책의 제약을 벗어나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 영역으로서 국내 경기 활성화를 위한 좋은 대안이 되었다.   

 

한편 IMF 프로그램의 기본 속성이 자유화와 시장기능의 창달에 있었기 때문에 이 조류에 맞춰 부동산 시장에서도 시장기능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주택거래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8년 5월 8일 분양권 재당첨 금지 기간 단축, 청약 자격 제한 완화 등의 규제 완화 대책을 발표하였다. 이어 분양가 자율화, 양도세 한시 면제, 취득세 및 등록세 감면, 토지거래 허가제 및 신고제 폐지, 분양권 전매 허용 등 규제 완화 대책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심지어는 ‘외국인의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외국인토지법’으로 개정하여 외국인의 토지 취득을 내국인 수준으로 완화하였다. 이와 동시에 1999년 이전 인가 개발사업에 대한 개발부담금을 면제하고, 2000년 이후 사업에 대해서는 부과율을 50%에서 25%로 낮춰주는 조치를 단행(1998년 9월)한 데 이어 토지초과이득세법을 폐지(1998년 12월)함으로써 사실상 토지공개념제도를 폐기하였다. 이외에도 개발제한구역 해제와 저금리 기조로 전환, 지속적인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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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시장이 살아나지 않자 1999년 10월에는 ‘주택건설촉진대책’을 마련하였다. 청약자격을 완화하고, 취득세 등록세를 감면해주는 등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2000년에 들어서도 정부의 이러한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매매가격은 전혀 상승하지 않았다. 반면 전세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하였다. 서민주거안정대책 등을 여러 차례 시행하였고 2000년 1.10 대책에서는 전세금 인상분의 50%까지 대출해주는 대책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여러 대책을 시행한 지 꽤 시일이 흐른 2001년 이후 주택가격 상승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강남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확대되는 조짐이 나타났다. 당시 재건축 대상 아파트는 분양가 자율화와 분양권 전매 허용 등 정부가 취한 일련의 조처로 투자 적격 대상으로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200년 이후 주택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2002년 이후에는 주택공급을 확대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하였다. 10년 동안 국민임대주택 100만 호 건설 등 임대주택 확대 정책을 제시하였다. 투기과열지구 지정, 분양권 전매 요건 강화 및 청약 요건 강화,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등 투기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하지만 이미 오르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의 열기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주택과 토지 가격 모두 급등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대세 전환의 계기를 맞은 주택시장은 일부 규제정책으로는 그 흐름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 노무현 정부

 

부동산시장 안정을 핵심 정책으로 삼은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관련 동원할 수 있는 대부분의 정책수단을 동원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대책을 강구하였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적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은 불로소득을 야기하는 부동산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과도한 개발이익이나 불로소득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환수하는 것이 부동산가격 안정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정책이념을 제시하였다. 

 

2001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주택가격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이에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다양한 대책을 반복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럼에도 주택가격이 안정되지 않자 결국에는 2003년 10월 29일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보유세 현실화를 통한 수요 억제, 공급 확대, 자금출처 조사를 포함한 행정규제 등에 이르기까지 온갖 수단을 망라하는 강력한 정책을 동원하였다. 이 대책 이후 주택 시장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렇더라도 이 대책으로 서울 주택시장의 대세적 흐름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한편 2003년 10.29 대책 이후 주택시장이 일시적으로 안정세를 보인 데에는 다른 요인도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 신용카드 대란으로 금융 불안이 야기된 것이 주택시장에서 경계심리를 발동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외환위기 와중에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경험이 생생한 당시로서는 카드회사의 대규모 부실이 외환위기와 같은 금융위기로 전이되지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5년 이후 소위 버블 세븐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재차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이 지역은 기본적으로 주거선호지역으로 교통, 교육 여건 등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주택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이에 비해 수도권 토지 이용 규제, 재건축 규제 강화 등으로 이들 인기지역에서의 주택 공급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8.31 대책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종전의 10.29 대책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이었지만 주택가격 상승 흐름을 막지는 못하였다.

 

특히 2006년 들어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 상승세가 더욱 확대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초과이익 환수제를 도입하고 재건축 등의 주택에 대한 구입 여력을 제한하기 위하여 기존의 주택대출담보비율(LTV)에 대한 규제에 더하여 부채상환능력비율(DTI)을 추가로 적용하기로 하였다. 

 

2005년 이후 이들 주거선호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택가격 상승 패턴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수택 수요가 주택의 특수성 등의 면에서 차별화되고 다양화되는 추세가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볼 때 다양한 주택 수요가 대두되는 데 대하여 천편일률적인 수요 규제를 동원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 등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특히 재건축 규제의 장기적 효과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이 지역의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재건축 규제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가 최근에도 주택가격상승의 진원지가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가격안정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재건축 규제는 단기적으로는 해당 지역 주택가격을 안정시킬지 모르지만 주거선호지역에서 주택공급을 위축시키는 부작용 등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주택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한편 당시 정부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하여 수요억제대책 이외에도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정책이 서울 집값을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는 지역간 균형발전의 명분으로 행정복합도시(2005년 시행), 기업도시(2007년 시작), 혁신도시(2007년 개발 시작) 등을 건설하였고 이 과정에서 대규모 토지보상금이 지급되었다. 이 자금은 본래 부동산 구매로 활용될 여지가 많은데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서울의 주거선호지역 주택 수요로 유입된 것이다. 이를 기화로 서울 선호 지역의 주택가격이 재차 상승하고 이 상승세가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이 되풀이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2006년 하반기 이후에는 주택가격 오름세가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이후 주택 수요 억제를 위한 규제 강화와 주택가격 상승이 번갈아 반복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주택시장의 인프라 확충, 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과 강화, 실거래가 과세 및 양도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을 단행하였다. 주택공급의 공공성 강화를 내세워 공공택지 내에서 주택공사 토지공사 등 공공기관이 개발뿐만 아니라 주택건설, 분양, 임대까지 하는 방식까지 구상하였다. 이는 공공택지의 개발 이익을 공공부문으로 환수하려는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민간 주택 공급물량의 지속적 감소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등으로 불안심리가 확산된 데 기인하여 주택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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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수요 억제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2006년에 이르러서야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하였다. 송파, 검단, 파주, 동탄 2기 등이 그 대상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주택정책은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등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실거래가 도입, 주택현황 파악, 개발이익환수제 도입 등 시장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 면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의도하였던 버블 세븐 지역의 집값을 잡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주택가격 폭등을 가져왔다. 부동산 관련 세금은 결국에는 가격으로 전가되는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상술할 예정). 특히 선호지역에서는 매도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에 그 부작용이 더욱 현저하였다. 이러한 수요 억제 정책은 장기적으로 가격을 상승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조세 저항 등의 문제에도 직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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