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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기본자산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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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1월26일 17시10분

작성자

  • 옥동석
  • 인천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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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정부가 모든 국민들에게 현금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정부예산으로 모든 국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일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로서, 어쩌면 정부예산과 복지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 논의가 점차 국민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철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을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묵살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는 재원의 조달가능성에 집중되었다. 많은 연구들이 있었지만 현실적 구체성을 띠고 있는 연구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주1)

※주1)  최한수, 「각국의 기본소득 실험이 한국에 주는 정책적 시사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2017년. 

 

기존의 복지급여(생계급여, 주거급여, 근로장려세제, 가정양육수당, 한부모가족 자녀 양육비, 쌀소득 보전 고정직불, 기초연금)를 모두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면 1인당 매월 23,000원을 지급할 수 있다. 만약 근로소득과 관련된 각종 공제(근로소득 공제, 인적공제, 세액공제, 각종 사회보험료 공제)를 폐지하고 이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쓴다면 개인당 월 94,000원을 추가로 지불할 수 있다. 기본소득을 이보다 더 늘이고자 한다면 당연히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금액이 미미하다는 분석은 기본소득 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더구나 특정 집단에 선별적으로 제공하던 복지급여를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기본소득으로 바꾸면 소득재분배 효과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존의 복지급여와 세금공제를 모두 폐지하는 것도 사실상 실현불가능하다.

 

기본소득이라는 혜택에도 불구하고 세금공제 제도의 폐지에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극렬하게 저항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본소득을 지급할 때는 모두가 환영하겠지만 그 재원을 조성하고자 국가의 강제력이 동원될 때 비로소 국민들은 ‘기본소득을 도대체 왜 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진보좌파적 정치철학자들은 그 당위성을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에서 찾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토지, 환경, 지식에 대한 공평한 권리를 갖기 때문에 이들을 활용하여 창출한 소득과 부에 대해서는 공평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권리부여가 이미 형성된 기존의 사유재산권 질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들은 기존의 시장경제 하에서 정부가 공유자산에 사용료를 부과하고 외부효과에 교정조세를 부과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들도 감안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공유자산에 공평한 권리를 부여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재정수입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장을 수용하자면 공산혁명 이상의 파괴적 변화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진보좌파의 일부 학자들은 기본소득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현하는 수단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보수우파의 학자들은 기존 복지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기본소득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기존 복지정책의 문제점이 자신의 빈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재산소득조사(means-test)에서 비롯한다고 주장한다. 

정직한 빈곤자들은 재산소득조사 때문에 자존감의 상실을 겪고 스스로 복지급여를 포기하며, 부정직한 일부 부유한 자들은 재산소득조사를 위장하며 복지급여를 타내려 한다. 또한 불성실한 빈곤자들은 복지급여에 안주하며 경제활동 자체를 포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수우파 경제학자들은 기존의 복지정책이 빈곤층을 구제하는 목표를 제대로 정조준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보수우파 경제학자들은 기본소득을 권리가 아니라 음(陰)의 소득세(또는 마이너스 소득세)를 관철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공감하고 있다. 이는 일정한 기준소득에 미달하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음의 소득세)을 비례적으로 지급하자는 것이다. 소득이 0인 사람에게 기초적인 보조금(기초소득)을 보장하지만 소득이 점차 증가하면 그 정도에 따라 보조금을 감액하는 것이다. 소득이 증가하여 기준소득을 초과하면 그 때부터는 양의 소득세를 납부하도록 한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음의 소득세를 구축하고자 그 초기단계로서 2009년부터 ‘근로장려세제’를 도입한 바 있다.

 

진보좌파의 기본소득과 보수우파의 음의 소득세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가? 결과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동일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이 두 가지 제도의 동등성(equivalence)을 설명하기 위해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그림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림1)은 기본소득을, 그림2)는 음의 소득세를 각각 나타내는데, 그림에서 파선 OX는 세금과 복지급여가 전혀 없을 때 시장에서 벌어들인 소득(Y)이 가처분소득(D)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세금과 복지급여가 존재하는 현실의 상황에서는 Y와 D의 관계가 점선 ①로 표현된다. 점선 ①에서는 세금과 복지사업의 현재 문제점 때문에 시장소득과 가처분소득의 관계가 불규칙적인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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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의 기본소득 제도에서는 부자와 빈자를 구분하지 않고 전 국민에 보편적인 현금을 지급하기에 점선 ①을 실선 ②로 이동시킨다. 반면 음의 소득세 제도는 그림2)에서 점선 ①을 실선 ③으로 이동시키는 변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OE의 기준소득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보조금을 그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음의 소득세 제도에서는 세금과 보조금의 동시 변화를 추구하며 OE 이하의 빈곤자들에게 기초소득 OA를 먼저 보장하고자 한다. 그런데 실선 ②로 표현되는 기본소득 제도 역시 그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조세개혁이 필요한데 이의 궁극적인 형태는 실선 ③을 지향한다. 

결국 기본소득과 음의 소득세의 최종적인 목표는 동일하기에 이 두 제도는 동등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제도가 추구하는 목표는 동등하지만 목표에 이르는 방법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기본소득 제도는 일단 기본소득부터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혁명적인 변화를 도모하고 그 이후에 혁명적인 세제개혁을 단행하자는 것이다. 반면 음의 소득세 제도는 보조금 지급과 세제개혁을 병행하는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1983년의 생활보호, 1999년의 국민기초생활보장, 2009년의 근로장려세제, 2015년의 자녀장려세제 등은 실선 ③을 추구하는 과정의 일부이다. 결국 진보좌파의 목표와 보수우파의 궁극적 목표는 동일하지만 그 접근방법에서 혁명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진화를 택할 것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인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금씩 확산되기 시작하자 기본소득을 주장하던 일부 정치인은 기본자산제라는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왔다. 기본자산제는 개인들에게 기본적인 자산을 나눠주되 그 사용과 처분, 그리고 상속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변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도모하기에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혁명적이다.

 

 기본자산제를 위해 정부는 신생아 출생 시 2천만 원을 신탁하여 성년이 되었을 때 5천만 원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사람들로서는 귀를 솔깃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또한 면밀히 분석해보면 지금까지의 정부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대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주어진 재원의 한계 속에서 무엇이 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할 것인지 우리는 더 많은 현실적 고민을 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제에 대해 잠정적인 결론을 내려야 한다. 우리는 먼저 진보좌파의 입장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한 대표적 이론가의 결론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벨기에의 정치철학자 필리프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굉장한 규모의 경천동지할 사건이 한 방에 터져서 모든 문제를 풀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수천 번의 작은 기회들을 단기적인 목표로 지혜롭게 이용하여 이를 장기적 진보로 쌓아올리는 편이 바람직하다.”주2) 

※주2)  필리프 판 파레이스, 야니크 판데르보호트, (홍기빈 번역) 「21세기 기본소득」, 2018, pp.562-563.

 

또한 기본소득을 실증적으로 검토한, 보수우파의 주류경제학을 대변하는 OECD 보고서의 다음 인용문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최근의 논의는 전통적인 복지지원 형태가 점차 직면하고 있는 도전에 유익한 관심을 환기하는 것이고 … ‘묻지마’ 식의 보편적 정부지원은 단순할 뿐만 아니라 지원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사람이 없다는 장점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실현가능한 유의미한 수준으로 모두에게 하는 무조적건 지급은, 기존 복지급여의 축소뿐만 아니라 증세를 요구할 것이고 또한 빈곤을 감소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 못할 것이다. 기존의 복지급여들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한다면, 일정한 정책목표를 전혀 조준하지 않은 채 사회보호제도를 뒤엎음으로써 사회적 취약집단의 일부가 손해를 볼 것이다. … 현실적으로는 경제성장의 편익을 보다 골고루 나누기 위한 재원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에 대해 균형 있는 논의를 진행하면서, 단계별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주3)   

※주3) OECD, “Basic income as a policy option: Can it add up?” May 2017, p.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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