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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의 이름으로 독재를 부르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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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10월29일 14시00분

작성자

  • 김병준
  • 국민대 명예교수, 前 대통령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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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이낙연 대표가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위법하고 부당하다고 한 윤석열 검찰총장을 맹비난했다. 수사지휘권 행사가 불가피하다고 본 대통령의 판단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선출직이 행정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민주적 통제’의 기본원칙까지 부정했다는 것이다. 

 

이미 승부가 난 싸움, 패자로서 그냥 한마디 했나보다 했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걸려 다시 읽는 순간, 작지 않은 충격이 왔다. 아니, 정치와 행정의 관계나 ‘민주적 통제’의 문제를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니........

 

물어보자.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직의 판단은 언제나 옳은가?” 당연히 아니다. 또 하나 더 물어보자. “모든 공무원은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직이 내린 판단과 결정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가? 부당하고 위법하다 판단되어도.” 이것 역시 천만의 말씀, 우리는 공무원들에게 그런 의무를 부여한 적이 없다.

 

민주주의는 권력에 대한 부정(否定)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고, 그래서 권력을 가진 너를 다 믿지 못하니 내가 너를 통제해야 하고, 나 또한 완전하지 않으니 너의 통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과 제도로 권력을 종횡으로 분산시키고, 각 부문과 계층의 고유한 권한과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 부정(否定)의 철학에 예외는 없다. 대통령을 비롯한 선출직도 마찬가지이다. 선출직이 임명직을 통제하는 것이 맞지만, 그 통제에는 명확한 한계를 둔다. 선출직이라 하여 완벽하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이 아니라, 말단 9급 공무원이라 하여도 대통령과 선출직의 판단과 결정을 무조건 따르게 되어 있지 않다.

 

사실 검찰이 안고 있는 문제도 상당 부분 선출직에 의한 통제가 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강해서 일어났다. 즉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선출직이 검찰을 장악함으로써 일어났고, 이들의 힘에 눌린 검찰이 그 방어벽을 허물고 이들의 수단이 되면서 일어났다. 상호견제 해야 할 선출된 권력과 검찰이 한 식구가 되어 자의적 권력을 향유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었다.

 

민주화의 역사는 일면 이러한 현상을 해소하는 과정이었다. 즉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선출된 권력이 국가기구들을 필요 이상으로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이 기구들 상호 간의 견제 메커니즘과 일반 국민의 직접적인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낙연대표의 인식은 민주주의의 이러한 철학과 역사를 부정하고 있다. 대통령의 판단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무엇이겠나. ‘선출직 우위론’과 ‘민주적 통제’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선출직의 절대지배와 대통령독재를 부르고 있다.

 

권위주의와 독재와 싸워왔다는 사람들이 이제 스스로 그 권위주의와 독재를 복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근거 없는 ‘선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독재를 해서 안 되지만 우리는 해도 돼. 왜? 우리는 선민이니까. 우리는 선한 목적을 가졌으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비친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조국사태, 윤미향사태, 드루킹, 공무원피격 방관....... 등, 추하고 추한 모습에다 법률가들의 일반 상식에 반하는 수사지휘권 발동까지. 어디에 선민의 모습과 선한 목적이 있는가.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대통령의 판단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선출직의 절대지배와 대통령독재를 부르는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돼지들, 네 다리로 걷는 것이 좋다며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을 경멸했던 이들은 어느새 두 다리로 걷는 것이 더 좋다고 외치고 있다. “민주주의는 좋다. 그러나 선출직 절대지배와 대통령독재는 더 좋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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