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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흥망의 교훈 #19 : 거대한 기마제국 북위(I​)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8월21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20년08월03일 15시08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4

본문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

 


<41> 연필대가리(筆頭) 충신 고필(AD444)

 

최호와 함께 탁발도에게는 충신 고필(古弼)이 있었다. 8년 전 북연을 공격할 때 도망가던 풍홍을 놓친 죄로 사졸로 강등되었던 사람이다. 그는 정직하고 신중하며 소박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다시 복직되어 시중으로 있던 중 탁발도는 모든 행정을 태자 탁발황에게 위탁하고 중서감 목수와 사도 최호와 시중 고필에게 태자를 보필하도록 명령했다. 고필은 상곡(하북 회래)에 있는 황실 소유의 동물원이 너무 넓어서 그것을 반으로 줄이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경작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주청하기 위해 알현을 기다리는 동안 황제는 시종 유수와 바둑을 두면서 좀체 시간을 내주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고필이 갑자기 유수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려 등을 때리며 말했다.

 

“ 조정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오로지 네 놈 때문이다.”

 

탁발도가 놀라서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말했다.

 

“ 주청하는 일을 듣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인데 

  유수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말인가? 그를 해치지 말라. “

 

고필이 황실 동물원 건에 대한 사실을 고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 남의 신하가 되어서 무례하기를 이와 같이 했으니 그 죄는 큽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가 관을 벗고 맨 발로 땅에 엎드려 죄를 청했다. 탁발도가 이렇게 말했다.

 

“ 경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말인가.

  진실로 사직을 생각하고

  백성의 편안함을 생각하는 사람이 온 힘을 다하여 

  해야 할 말을 한 것이니

  관을 다시 쓰고 신발을 신어 직무에 나아가라.“(AD444)

 

탁발도가 사냥을 나가면서 고필에게 사냥기병들에게 가장 좋은 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고필은 가장 나쁘고 늙은 말을 공급했다. 탁발도가 격노하여 말했다.

 

“ 연필 대가리(筆頭) 같은 고필이 일부러 짐을 깎아 내리는구나.

  내 장차 이 놈의 목을 베어 버릴 것이다.“

 

고필의 좌우에 있는 신하들이 죽을 것이 걱정이 되었다. 고필이 이렇게 말했다.

 

“ 남의 신하가 되어서 

  주군이 사냥이나 하면서 즐기는 것을 막지 못한 죄는 작다.

  불우한 일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지 않고

  군대와 국가가 쓸 물건을 낭비한 죄는 크다.

  지금 북으로 유연이 강성해지고 있고 

  남쪽으로는 유송이 건재해 있는데

  약한 말을 주고 좋은 말을 따로 비축해 둔 것은

  국가를 위해 먼 장래를 대비한 일 아니냐.

  비록 작은 죄로 죽더라도 무엇이 한스러우냐.

  그리고 그건 내가 한 일이니 너희들이 걱정할 게 무엇이냐.“

 

탁발도가 그 말을 듣고 감탄했다.

 

“ 이 고필 같은 신하는 나라의 보배다.”

 

옷 한 벌과 말 두 필과 사슴 열 마리를 상으로 하사했다. 탁발규가 사냥을 갔다가 사슴 수천마리를 잡았다. 운반하는데 수레 500대가 필요했으나 고필이 분명히 수레를 주지 않을 것이니 각자 자신의 말로 운반하라고 하였다. 돌아오는 도중에 고필의 편지가 도달했다.  

   

“ 지금 가을 곡식이 여물어있고

  삼과 콩 또한 들판에서 추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멧돼지와 사슴과 들새가 곡식을 노리고 있으니

  추수가 늦어지면 아침과 저녁 사이에

  수확량이 세 배나 차이가 나게 됩니다.   

  수레를 보내려 하오니 급하게 오지 마시고

  천천히 내려오십시오.“

 

탁발도가 경탄하며 말했다.

 

“ 과연 내 말대로 필공은 사직을 지키는 신하다. 

  (果如吾言,笔公可谓社稷之臣矣)“

 

 

<42> 국기(國記)와 최호의 죽음과 고윤(AD450)

 

탁발도에게는 또 다른 훌륭한 충신들이 많았다. 태위 장손숭은 4대를 걸쳐 탁발씨 황실을 섬겨 아버지 탁발사로부터 추천을 받은 훈구공신이고 최호는 지혜로, 장손도생은 청렴으로 이름을 떨친 신하였다. 탁발도가 이렇게 말했다.

 

“ 지혜라면 최호이고 청렴이라면 장손도생이다.“

 

최호가 탁발도의 총애를 믿고 인사를 독단적으로 전횡하면서 태자 탁발황과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최호는 불교를 매우 탄압했는데 황태자 탁발황은 반대로 매우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것이 갈등의 뿌리였다. 탁발도는 최호와 고윤에게 사실에 근거한 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국기(國記)>를 저술하도록 명령했다. 최호는 교만하고 아첨꾼인 민담과 치표를 측근으로 두고 있었는데 이들이 황제를 설득하여 최호를 국기 저술의 총책임자로 선출하게 했었다. 최호 또한 민담과 치표를 추천하여 국기를 저술하는데 참여하도록 추천했다. 민담과 치표는 최호에게 <국기>를 돌에 새겨 영원히 남기자고 제안했다. 이 말을 듣고 고윤이 경계하며 말했다.

 

“ 돌에 새긴다면 글자 하나 차이로 

  가문의 만세의 화가 될지도 모르는데 두렵습니다.

  우리 또한 제대로 목숨을 건질 수가 있을지 걱정입니다.“

 

최호는 마침내 사방 100보의 석단 위에 국사를 돌에 새겨 세웠다. 문제는 그 내용에 있었다. 사실대로 기록하다보니 북방민족, 즉 북위의 선조인 선비족을 폄훼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내용을 본 북방출신 사람들이 모두 최호를 비방하며 말했다.

 

“ 그가 나라(탁발씨)의 잘못한 점을 폭로하여 드러냈다.”   

 

탁발도는 크게 화를 내며 조사를 시켰다. 이 소식을 미리 얻어들은 황태자 탁발황이 서둘러 스승 고윤을 불러 같이 잠을 자면서 말했다.

 

“ 황제께서 찾으시거든 내가 경을 불렀다고 말하시오.

  그리고 무엇을 물으시면 반드시 내가 일러 준 대로 말하시요.“

 

고윤이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었지만 태자는 들어가 보면 안다고 말했다. 마침내 황제가 고윤을 불러 국기의 저술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태자가 끼어들어 말했다.

 

“ 고윤은 신중하고 세밀하여

  직급이 낮아서 최호의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청컨대 사형을 면제해 주십시오.“

 

그제야 고윤은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깨달았다. 최호의 일이 이렇게 될지 어느 정도 예상은 되었던 일이었다. 황제가 국기의 내용을 모두 최호가 서술했는지 다시 물었다. 고윤이 대답했다.

 

“ 태조기록은 등연이 썼고

  선제기와 현 황제의 기록은 저와 최호가 기록했으나

  최호는 워낙 바쁜 몸이라서 대강만 기록했을 뿐

  거의 모든 것은 제가 썼습니다.“

 

탁발도가 화를 내며 태자에게 말했다. 

 

 “ 고윤의 죄가 더 큰데 어떻게 살려 준다는 말이냐.”

 

태자가 고윤을 두둔 옹호하며 말했다.

 

“ 고윤이 지금 정신이 없고 헷갈려서 그런 것입니다.

  전에 제가 물어 보았을 때 분명히 최호가 다 썼다고 했습니다.“ 

 

탁발도가 다시 고윤에게 그것을 확인했다.

 

“ 과연 태자 말이 맞는가?”

 

고윤이 확실하게 대답했다.

 

“ 황실을 욕보인 신의 죄는 멸족이 되어도 당연합니다.

  감히 헛되고 망령되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태자께서는 저에게 오래 시강 받으시면서 

  저를 가엽게 여기셔서 두둔하시는 것일 뿐

  저에게 그렇게 물으신 적도 없으며

  신 역시 그렇게 대답한 적이 없습니다.

  신의 정신은 헷갈린 적이 없습니다.“

 

탁발도가 그런 고윤에게 감탄하며 태자에게 말하였다.

 

“ 정직하구나.

  훌륭하구나.

  죽음에 임하고서도 

  말을 바꾸지 않으니 믿음직하고,  

  신하가 되어 주군을 속이지 않았으니 곧은 사람이 아니더냐.

  그의 죄를 사면하고 

  그의 충직함을 널리 표창하라.“

 

그러고 나서 탁발도는 최호를 불러 국기 기술을 물었다. 겁에 질린 최호는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탁발도는 고윤에게 조서를 쓰라고 하여 최호, 종흠, 단승근 등 국기 기술 관련자 128명을 사형시키고 관련자 모두의 5족을 멸족 시키도록 명령했다. 고윤은 그런 조서를 쓸 수가 없었다. 고윤이 계속 미루자 황제가 재촉했지만 고윤은 움직이지 않고서 황제에게 알현을 요청해서 말했다.

 

“ 최호가 다른 죄가 아니고

  직서를 쓰다가 죄를 지은 것이라면

  사형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화가 난 황제는 황명 거역죄로 고윤을 가두었다. 태자가 나서서 간청하자 화가 풀린 황제가고윤을 풀어 주며 말했다.

 

“ 고윤이 아니었으면 족히 수천 명은 죽었을 것이다.“   

 

최호에게는 5족 멸족의 중벌이 내려졌다. 최호의 친족과 최호와 혼인관계에 있던 노씨, 곽씨 및 유씨를 족살 시켰고 그 외에는 모두 본인에게만 사형을 내렸다. (AD450) 고윤이 아니었으면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종흠은 자신이 죽는 마당에서도 고윤을 거의 성자였다고 칭찬했다. 

 

다른 어느 날 황태자 탁발황이 스승 고윤에게 말했다.

 

  ” 사람은 기회를 잘 알아야 합니다.

    내가 경을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실마리를 다 열어두었으나

    경이 끝내 좇지 않아서 황제가 몹시 화가 난 것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고윤이 이렇게 답했다.

 

  ” 무릇 역사란 군주의 선과 악을 같이 기록하여

    장래를 위하여 권고하고 경고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군주는 두렵고 꺼리는 것이 있게 되어   

    행동을 조심하는 법입니다.

    최호는 외로이 성은을 몹시 입어 개인적 욕망으로 청렴을 버렸으며

    애증을 가지고 공평함과 정직함을 가렸으니

    그것은 최호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조정의 생활을 기록함에 있어서는

    국가가 얻는 것과 잃은 것을 말하였으니

    이는 국가의 대체가 되는 것으로 많은 것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신은 실로 최호와 실제로 그 일을 하였고

    죽는 것과 사는 것, 명예와 치욕은 의리상 별로 다름이 없습니다.

    살아나는 은혜를 받기위해 마음을 속이고 

    죽음을 면하는 것은 신이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

 

태자가 얼굴색을 고치고 다시 한 번 그를 칭찬했다. 그러나 고윤이 다시 말했다.

 

  ” 제가 태자께서 지시하신대로 하지 않은 것은 

    사실 적흑자에게 죄를 얻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적흑자라는 사람은 고윤의 친구로 황제 탁발도에게 매우 총애를 받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뇌물로 포 1천 필을 받은 것이 발각이 나자 고윤에게 이렇게 자문을 구했다.

 

  ”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은폐해야 하는가?“

 

고윤이 권했다.

 

  ” 두 번 속여서는 안 될 것이니

    용서를 바라고 진실을 말해야 할 것이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은폐하기를 권했으나 고윤이 자백하라고 하자 적흑자가 고윤을 원망하면서 말했다. 

 

  ” 어찌 사람에게 죽을 지경까지 가라고 하는 가“ 

 

적흑자는 결국 뇌물수수를 은폐하다가 발각이 나서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 탁발도는 최호를 죽인 것을 매우 후회하고 애석하게 생각했다. 탁발도의 능력이나 인재존중이나 리더십으로 볼 때 최호를 죽인 것은 과도한 면이 있다. 아마도 복용하던 약 때문에 판단력이 매우 흐려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호의 뒤를 이은 이효백도 최호 못지않게 대소사를 탁발도와 함께 의논하는 총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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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0년08월03일 15시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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