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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권 4년차, 위기의 신호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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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7월20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0년07월19일 05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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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전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경,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사망자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을 기록한 초대형 재난 사고였다.

 

당시 삼풍백화점은 처음 건물을 지을 때부터 철근을 다량 빼먹는 부실공사를 했다. 옥상에 지지 하중보다 많은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했고, 건물 내부 진동으로 고객 신고가 수차례 있었다. 백화점 실내 벽 곳곳에 균열이 생겨 붕괴 위험에 직원 신고도 여러차례 있었다. 전문가 진단 결과 붕괴위험이 확인됐다. 하지만 경영진은 별다른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결국 한 시대 화려하고 웅장했던 강남 삼풍백화점은 1,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채 무너져 내렸다. 

 

1920년대 미국 하버트 W. 하인리히는 7만 5,0000건의 산업재해를 분석해 흥미로운 법칙을 발견했다. 1:29:300으로 명명한 하인리히 법칙이다. 산업재해 중 큰 재해가 1건 발생하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29번의 작은 재해가 있었고, 운 좋게 피해간 300번의 사건이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큰 사건이나 재해가 일어나기 전에 여러 번의 사전 징후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징후를 무시하고 방치할때,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사고나 재난의 결과가 발생한다. 삼풍백화점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대통령 지지율에도 하인리히 법칙이 적용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임기말 불행은 임기중 터져 나온 권력형 측근비리나 정책실패 등의 사건, 사고들이 누적되어 피로감이 임계점을 넘었을 때,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수 많은 위기 신호가 발생하고 있다. 사고는 크게 정치적 사고와 정책 실패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정치적 사고는 주로 인사, 측근비리, 부정부패 사건이다. 탁현민 의전비서관의 여성비하 논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의 감찰 무마 의혹,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선거개입 의혹, 안희정 전 경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사건,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비서 성추행 사건,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선 댓글조작 의혹 사건, 조국 전 법무장관의 딸 의전원 부정입학 의혹 사건 등이 그렇다.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 있던 김종천 전 의전비서관이 음주운전으로 불명예 퇴진했고,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여권이 차기 대권 주자 중 한명인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비서의 성폭력 미투(Me Too) 고소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두 대통령과 관련된 고위직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인데, 이는 공직에 대한 긴장감이 너무 떨어진 탓이다. 

 

정책 실패의 발생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중 최대 업적이던 남북관계는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소 폭파와 적대적 담화문을 통해 사실상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이 경제제재를 풀지 않는 한, 남북관계는 회복되기 어려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 최대 숙원 과제이던 검찰 개혁과 공수처 설치는 대통령이 스스로 임명한 검찰총장의 저항에 가시밭길이다. 수도권 집값은 정부가 조치를 내놓을 때마다 더 치솟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무려 22번째 대책인 7.10 대책을 통해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이라는 근본적 문제해결 없이, 세금 폭탄으로 수도권 집값 상승 문제를 풀겠다는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그 증거로 대통령 비서실장과 수도권 집값 문제를 담당하는 청와대 국토비서관도 고위공직자 1주택 지침에 따라 서울에 있는 집 한 채씩 남겨둔 채, 지방에 있던 집들을 모두 처분했다. 국민 정서와 정확히 정반대되는 처신이다. 

 

이 정도만 보더라도, 무게감이 상당한 사고들이 많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여당은 이제껏 너무 대놓고 사건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뭐가 문제냐고 항변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뭔가 분명히 잘못됐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국민들의 피로감은 매우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의 임계점이 가까워 진 것이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이런 크고 작은 재난들을 사전에 포착해 적절히 대응할 때, 돌이킬 수 없는 대형 사고나 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 이미 드러난 사건이 이 정도라면, 그 열 배 정도의 드러나지 않은 사고들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사고가 드러나지 않은 것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일 뿐이다.

 

대통령과 여당이 겪게 될 가장 큰 재난은 대통령 지지율의 급격한 하락과 민심이반, 다음 선거에서 참패, 그리고 지금까지 정성껏 써내려 간 역사 기록이 차기 대통령에 의해 철저히 삭제되고 부정되는 일일 것이다.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 조용히 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대형 재난이 터진다면, 그 여파는 대통령의 소망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 아직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 터지기 전이기 때문에 막을 기회가 남아 있다.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 대통령과 집권 당이 연달아 터져 나오는 사고들에 대해 좀 더 겸허한 자세로 국민 눈높이에서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정권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비극을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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