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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혼군 #10 : 정통의 전량(前涼)을 실질적으로 무너뜨린 장조(g,끝)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0년08월07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20년06월24일 18시10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 4

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   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   (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   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끝으로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36) 장중화 죽음과 장조의 독단(AD353년11월)

 

장중화가 병으로 눕게 되었다. 이 때 나이는 스물여섯에 불과했다. 10살짜리 아들 장요령을 세자로 세웠다. 장중화의 서형 장조가 용기, 힘, 재능을 모두 갖추었으므로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몰렸다. 그는 장중화의 총신 조장, 위집과도 의형제 맺었으므로 그야말로 실세 중의실세였다. 도위 상거가 장중화에게 장조를 내치라고 권유했다. 장중화가 거절하면서 말했다.

 

  “ 장조를 주공(周公)으로 삼아 

    어린 아들을 보필하게 하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요?“

 

부한의 대승 공훈으로 전량을 위기에서 구한 사애가 뛰어난 능력 때문에 주변의 질시와 참소를 받아 주천태수로 강등되었다. 장중화가 건강할 때에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주군이 눕게 되자 권력다툼이 수면 위로 나타나면서 충신들이 박해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사애가 주군 장중화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 권력을 가진 총신이 일을 멋대로 처리하면

     공실이 장차 위태로워지니 

     빌건대 신이 들어가서 돕도록 해 주십시오.

     장녕후 장조와 조장 등의 무리가 장차 반란을 일으킬 것이므로

     그들을 내쫓아야 합니다.“

 

AD353년 11월 10일 장중화가 병이 위독해지자 사애를 징소하여 위장군으로 삼고 안팎의 모든 군사를 도맡게 하는 조서를 내렸다. 그러나 장중화의 조서를 장조와 조장이 숨기고 보내지 않았다. 11월 18일 장중화가 사망하고 세자 장요령이 계승하여 대사마, 양주자사 및 서평공이 되었다. 장조는 조서를 고쳐 자신을 스스로 도독중외제군사로 임명하고서 모든 정치와 군사를 관장했다.  

 

 

(37) 장조 쿠테타(AD354년 1월)

 

장조가 스스로 양왕을 자처하면서 연호를 건원으로 고치고 백관을 설치했다. 아들 장태화를 태자로, 동생 장천석을 장녕후로 봉했다. 명백한 반란이었다. 낭중 정기가 장조에게 충간을 올렸다.

 

   “ 무공(장궤) 이후 전량 조정은 대대로 신하의 절개를 지켜왔습니다.

     오랑캐에게 대적하고 군사를 매년 일으켰어도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은 것은 공실의 충성심 때문이었습니다.

     전하의 공훈과 덕이 돌아가신 공보다 높지 않은데 혁명을 꾀하시니

     신은 아직 그것이 옳은지 알지 못합니다.

     저들 병사와 백성들이 우리에게 귀부하고 충성을 바치는 것은 

     오로지 동진 조정을 받들기 때문입니다.  

     지금 스스로를 높이시면 장차 민심이 떠날 것인데

     어떻게 이 한 모퉁이 땅을 가지고 천하 강적을 이기겠습니까?

  

장조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정기를 궐 아래에서 참수해버렸다. 

 

 

(38) 은호의 축출과 환온의 정권장악(AD354년 겨울)

 

동진 조정에서는 은호와 형사옹양익상교관팔주제군사 환온이 줄기차게 북벌을 주창하고 있었다. 특히 후조가 내부분열로 흔들리면서 전연에게 멸망하던 AD351년 전후야말로 북벌의절대 기회라고 믿고 있었다. 이것은 AD337년 모용황이 세운 전연과 AD351년 건국한 전진의 세력을 지극히 가볍게 본 것이었다. 동진이 전진과 붙은 남전전투(AD354)에서 동진군이대패한 것을 보면 그것은 명백하고도 남았다. 이 패배를 계기로 은호가 축출되고 환온이 군권을 장악했다.(AD354) 환온은 보,기병 4만으로 강릉에서 재차 북벌에 나섰다.(AD354년2월)

  

진주자사(이 때에 이미 후조는 멸망했으므로 독립된 상태) 왕탁이 전량 조정에 사신을 보내 알려왔다.

 

     “ 환온이 입관(함곡관 넘어 옴)했습니다.

       그는 용병도 매우 잘하고

       그 뜻도 깊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점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점치기 어렵다는 말은 환온이 장차 동진의 황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뜻도 품어있고 또 전쟁에서 이겨서 관중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항복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장조가 한편으로는 왕탁의 건의를 거절하기도 어렵고 또 그가 자신을 배반할 것도 두려워 왕탁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왕탁살해음모가 발각되자 군사를 발동하여 동쪽을 정벌한다고 하면서 서쪽으로 도망쳤다가 환온이 철군하자 다시 돌아왔다. 장조는 진주자사 우파와 3천 군사를 보내 왕탁을 공격했다. 의지할 곳을 잃은 왕탁은 11월 전진에 항복했다. 전진 주군 부건은 그를 상서로 삼고 조정에 등용했다.

 

 

(39) 포학한 장조 퇴출과 장관 부상(AD355) 

 

장조는 음란하고 옹졸하고 포학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장조가 하주(감숙성 임하)자사 장관을 질투하여 장액태수 색부로 교체하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장관을 호족토벌 부대로 좌천시킨 뒤 역췌와 장령을 보,기병 1만 3천군사와 함께 파견하여 장관을 습격하게 했다. 그러나 장액사람 왕난이 그 계획을 알고 장조에게 권면했다.

 

  “ 이 군사들이 나가면 반드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차 전량이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

 

이와 함께 장조의 부도덕한 짓 세 가지를 지적하는 상소를 함께 올렸다. 화가 난 장조는 왕난의 목을 치도록 명령했다. 왕난이 죽기에 이르러 이렇게 예언했다.

 

  “ 내가 죽으면 군사들은 밖에서 패배할 것이고

    왕은 안에서 죽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

 

장조는 왕난의 일족을 참살시켰다. 장관이 그 말을 전해 듣고 군사를 일으켰다. 하주자사로 부임한 색부의 목을 베고 전국에 격문을 띄웠다. 장조를 죽이고 폐위시킨 뒤 장요령을 세우자고 했다. 장조가 보낸 역췌와 장령의 군사가 황하를 건너자 장관이 나가서 격퇴시켜 버렸다. 역췌는 겨우 빠져 나와 홀로 고장으로 돌아왔다. 장조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다.

 

장조와 사이가 나빴던 효기장군 송혼, 송수 형제도 장조에게 등을 돌리고 장관과 합류했다. 

장조는 후환을 없애려고 장요령을 불러 허리를 부러뜨려 죽였다. 송혼의 군사 1만이 고장에 도달했다. 장조는 장관의 동생 장거와 장숭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장거와 장숭은 시장거리에 나서서 수 백명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 장조가 무도하여 형님의 대군이 이미 성 동쪽에 도착했소.

    장조의 편에 서는 사람들은 삼목을 멸할 것이요. “

 

그리고 장거와 장숭은 재빨리 나아가서 성 서문을 열고 송혼 군사를 영입했다. 전에 장조를 세우자고 주장했던 영군장군 조장은 죄가 두려워 장중화의 생모 마씨를 불러 전각에 세운 뒤 양무후 장현정을 주군으로 옹립한다고 선언하게 하였다. 역췌는 전각으로 들어가 배반한 조장을 잡아 죽였다. 전각 안에서 장조는 전투를 적극 독려했지만 민심을 잃은 장조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군사에 의해 장조가 피살되고 그 두 아들도 함께 죽었다. 

 

송혼과 장거는 일곱 살짜리 장현정을 대장군, 양주목, 서평공으로 추대했고 장관이 고장에 도착하고 나서는 장현정을 양왕으로 옹립했다. 그리고 장관 스스로는 사지절, 도독중위제군사, 상서령, 양주목, 장액군공으로 사실상 전권을 장악했다. 송혼은 상서복야가 되었다.

 

농서에서 군대를 장악하고 있던 이엄은 장관에 불복종한다고 선언하고 동진에 붙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엄을 따랐다. 장관은 우패를 보내 이엄을 토벌시켰으나 서평(청해성 서녕) 위침도 이엄세력에 동참하면서 우패가 크게 패배했다. 장관은 다시 장거를 파견하여 위침을 격파했다. 주천태수 마기도 전량 조정에 반란하면서 위침에 호응했는데 장관이 장요와 왕국을 파견하여 겨우 토벌에 성공하고서 마기를 참수했다. 그러나 이번의 일로 전량의 국세는 크게 훼손되었다.  

 

 

(40) 전진 복속국이 된 전량(AD356) 

 

전진 주군 부생의 동생 정동대장군 부류가 사신 염부와 양수를 전량에 보내왔다. 말하자면 후조를 계승한 전진에게 복종하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온 것이다. 장관이 말했다.

 

   “ 나는 동진의 신하입니다. 

     신하는 경계 바깥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두 분께서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은데 무슨 일이십니까? “

 

염부와 양수가 조용히 말했다.

 

   “ 우리 주군 부류는 그대와 이웃하는 번국입니다.

     비록 산과 강이 가로막혀 있으나 

     바람과 길과 사람이 통하는 곳 아닙니까?

     서로 수호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

 

장관이 반박하며 대꾸했다.

 

  “ 우리 가문은 아시다시피 동진을 섬긴지 6대째입니다.

    부 정동장군과 사신교환하는 것은 

    이는 위로 돌아가신 주군을 배반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과 군사의 절개와 뜻을 어기는 일인데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소? “

 

염부와 양수가 다시 말했다.

 

 

   “ 진나라 조정은 이미 쇠잔해진지 오래고 

     천명을 잃은 지 실로 오래이요.

     또 두 전량 왕이 두 조를 섬긴 것(장무는 전조, 장준은 후조)은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지혜의 소산 아닙니까?  

     지금 우리 전진은 위엄과 덕망이 하늘 찌르듯 왕성합니다. 

     만약 전량왕이 황하의 오른쪽에서 스스로 황제가 되더라도

     전진에게 적이 되지 못합니다. 

     어차피 작은 나라가 되어서 큰 나라를 섬긴다면 

     어떻게 동진을 버리고 전진을 섬기는 것만큼 현명한 일이 있겠소?“ 

 

 

장관이 다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 중주(전진)사람들은 식언을 잘 하지 않소.

    전에 (장중화 때)에 석씨 사자가 돌아가기도 

    전에 무장기병이 도착한 것을 잊을 수가 없소. “

       

염부와 양수가 말했다.

 

  “ 후조는 원래 간사한 나라가 맞습니다만

    전진은 신의를 두텁게 하는 나라입니다. 

    어찌 후조와 전진을 같이 생각하시는게요? “

              

장관이 다시 물었다.

 

  “ 그렇다면 왜 먼저 동진을 공격하지 않소? ”

 

염부와 양수가 대답했다.

 

  “ 동진이 멸망하려면

    먼저 부패하여 도가 무너진 다음에

    반란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야 

    새 나라가 정복하여 교화가 따르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주상께서는 반드시 동진을 군사적으로 복종시킬 생각이십니다.

    그러나 황하의 오른쪽(전량)은 반드시 

    의와 덕으로 품을 수있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저희같은 행인을 보내 수호한 

    다음 평화적으로 관계를 맺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만약 천명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얼마 있지 않아서 이 땅은 그대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

 

장관이 불쾌한 듯 대답했다.

 

  “ 우리에게는 세 개의 주(양,하,사)에 10만 군사가 있소.

    게다가 서쪽으로는 총령이 감싸고 동쪽은 대하가 막혀있지 않소. 

    다른 사람을 정벌하더라도 여유가 있는데

    스스로 지키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소.

    그러니 진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소. “

 

염부와 양수는 가볍게 반박했다.

 

  “ 귀국이 견고하다고 하나

    효산(하남성의 산)과 함곡관과 비교하면 어떻소?               

    백성과 물자가 풍부하다고 하나 

    진주와 옹주와 비교하면 어떻소

    두홍과 장거가 조를 밑천으로 삼고 재물을 바탕으로 

    관중과 사해를 석권하려 했지만  

    먼저 돌아가신 황제 부건의 군사가 서쪽으로 군사를 돌리자(AD350)

    얼음이 녹고 구름이 흩어지듯 

    순식간에 주인이 바뀌는 것(AD351후조멸망)을 느낄 사이도 없었소.

    우리 주상(부생)께서는 그대가 복종하지 않을 경우

    사수 100만이 북을 치면서 서쪽으로 진격하실텐데

    잘 모르긴 하겠지만 어떻게 그것을 막아낼지 모르겠소. “ 

   

장관이 웃으면서 말했다.

 

   “ 허허 이 일은 내가 아니라 왕이 결정하실 일이요”

 

염부와 양수가 다그쳤다.

 

  “ 주군은 연세가 아직 어리시니 

    그대가 이윤과 곽광 같은 책임을 지고 있지 않소?

    국가 안위는 그대의 손아귀에 달려있는 것이오. “

 

마침내 장관은 장현령의 명령을 받는 형식으로 전진의 복속국이 되기로 약속했다. 전진은 장현령의 직위를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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