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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빈 K뉴딜과 막장으로 치닫는 원전 폐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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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0년05월17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20년05월17일 06시45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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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떠들썩하게 ‘한국형 뉴딜’(K뉴딜)을 내놓았다. 디지털·비대면·스마트화가 핵심이다. 그런데 모두가 당장의 일자리 창출 가능성이 불투명한 ‘미래형 산업’이다. 평화경제는 안보‧국제 현실을 외면한 환상이고, 뒤늦게 허겁지겁 추가하겠다는 ‘그린 뉴딜’도 알맹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멈춰 서버린 경제를 되살리는 일에 확실하게 기여할 수 있는 ‘현재형 산업’은 통째로 빼버렸다. K방역을 성공시킨 바이오산업도 보이지 않고, 에너지 산업에 대한 고민도 없다. 오히려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을 내팽개치는 일은 더욱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알량한 ‘배민’으로는 국가경제를 살릴 수 없다

 

  정부가 제시한 K뉴딜의 핵심은 5G와 데이터 기술이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5G의 사업화를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5G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에서도 첨단을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 기술도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우려와 이익집단들의 첨예한 갈등에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무능이 중첩되어 첫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화려한 공유경제의 모범 사례였던 ‘타다’조차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코로나19로 멈춰서버린 경제를 되살리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다. 5G와 데이터가 우리를 먹여 살려 줄 것이라는 어설픈 소설을 쓰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더욱이 비대면 유통의 상징인 ‘배민’(배달의 민족) 수준의 일자리로는 세계 10위 수준으로 커진 우리의 경제를 되살릴 수도 없다. 그나마 배민도 독일 기업에게 팔려버린 상태다. 비대면(온라인) 교육은 사교육 시장의 ‘일타 강사’를 벤치마킹하겠다는 뜻이고, 비대면(원격) 의료는 의료계가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우리만 열심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지구촌 전체를 거미줄처럼 엮어놓은 가치사슬(value chain)을 복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의 공허했던 ‘4차 산업혁명’의 환상에서는 확실하게 깨어나야 한다. 

 

  당장의 현실이 절박하다. 코로나 이후(After Corona)에도 전 세계가 식량·에너지·자원을 함께 생산하고, 함께 소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소재와 부품과 제품의 생산과 소비의 분업적 특성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없다. 기술의 개발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주문(呪文)만 외우면 뚝딱하고 새로운 기술을 내주는 요술방망이는 어디에도 없다. 어렵게 개발한 현재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위험하고 더러운 것은 기술을 포기하는 핑계가 될 수 없다. 안전하고 깨끗하게 활용하는 용기와 지혜가 필요할 뿐이다. 


K방역의 핵심은 바이오산업

 

  K방역이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K방역이 돋보이게 된 것은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중국으로부터의 감염 유입 차단을 포기해버린 무모한 ‘감염주도 방역’ 덕분이었다. 1만 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하고, 260명의 무고한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전 세계 190여개국이 우리에게 빗장을 닫아거는 모욕적인 일을 당했다. 불과 2달 전에 겪었던 일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참혹한 경험이었다. ‘진단’(BT)과 ‘추적’(IT)을 핵심으로 하는 K방역이 세계적 표준이라는 호들갑은 섣부른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과도한 추적의 과정에서 발생했던 인권침해에 경악하고 있다.

 

  재앙적인 감염주도 방역을 더 할 수 없는 축복으로 만들어준 것이 바로 바이오산업이다. 지난 석 달 동안 무려 103개 국가에 2억 3천만 달러의 진단 키트를 수출했다. 코로나19의 진단키트와 의료용품을 수출하는 40여 개 기업 중 상장사는 씨젠 하나뿐이다. 모두가 대덕에서 출발한 소규모 바이오 벤처들이다. 

 

  바이오 벤처들의 성과가 단순히 경제적으로만 놀라운 것이 아니다. 비록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개한 유전정보와 교과서 수준의 ‘실시간 유전자 증폭기술’(RT-PCR)을 이용한 진단키트를 고작 2주 만에 전 세계에서 최초로 상품화시키는 실력은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의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개발한 진단키트는 개발 과정에서 놓쳐버린 오염으로 전량 폐기했다. 25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아직도 코로나 진단키트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런 바이오 벤처에 대한 정부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로 싸늘하다. 대통령이 진단키트를 개발한 기업을 방문한 것은 CNN이 떠들썩하게 보도를 해준 뒤였다. ‘홍보’를 더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이 진단키트 개발사에게 알려준 알량한 생존전략(?)의 전부였다. K방역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영국 BBC의 질문에 대해 식약처의 신속사용허가 덕분이었다고 답한 외교부 장관이 바이어산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심지어 과기부도 진단키트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2015년 메르스 때의 지원을 핑계로 기술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국가경제의 기반은 에너지 산업

 

  에너지 산업도 코로나 이후의 경제 되살리기에 꼭 필요한 것이다. 특히 원자력은 경제와 환경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원이다.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빌 게이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 중의 상식이다. 더욱이 원자력은 자립도가 가장 높은 에너지원이다.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에너지 안보를 보장해줄 에너지원이라는 뜻이다.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탈원전은 그런 원전을 포기하고, 해외 의존도가 100%인 신재생과 LNG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삼척동자도 용납할 수 없는 억지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위험하고 더러워서 폐기하는 원전을 다른 나라에 수출하겠다는 발상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탈원전은 단순히 원전 폐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창원의 원전 산업이 무너지면 원전의 수출은커녕 남아있는 원전의 안전가동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이미 UAE에 수출한 바라카 원전의 유지·보수 계약도 흔들리고 있다. 절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리가 지은 원전의 유지·보수를 경쟁사가 맡게 되면 APR-1400은 더 이상 우리의 기술이라고 할 수 없게 된다. 유지·보수를 위해서는 원전에 대한 모든 기술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설계 수명이 끝났다고 원전을 해체하는 것도 반(反)환경적이다. 가장 친환경적인 원전을 안전하게 가동해서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을 포기하는 것부터 문제다. 더욱이 80년 이상 쓸 수 있는 멀쩡한 원전을 해체해버리는 것도 반(反)환경적인 일이다. 지구촌에서 우리가 함부로 버릴 수 있는 자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코로나19로 경제가 멈춰서버린 상황에서 탈원전을 추진할 사회적 비용을 마련할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국고는 이미 재난지원금 퍼주기로 바닥이 나버렸다.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과 LNG에 들어갈 엄청난 비용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 그런 비용이 모두 중국의 태양광 기업과 미국·독일·일본의 LNG 발전설비 업체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 비용은 코로나 이후의 경제 살리기에 필요한 마중물로 소중하게 활용해야만 한다. 

 

 이제 막장에 도달한 탈원전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엉터리 경제성 분석으로 세워놓은 월성1호기를 재가동하고, 어정쩡하게 중단시켜놓은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서둘로 재개하는 것이 진정한 K뉴딜의 출발이다. 어설픈 고집으로 국가의 미래를 망쳐놓아서는 절대 안 된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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