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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불황에 대한 시각 : 통계와 사기 사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9월15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9월15일 17시04분

작성자

  • 조장옥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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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즘 정책당국은 읽기에 편안한 자료가 생산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개선된 지표가 발표되면 소득주도성장을 위시한 문재인정부의 정책효과 때문이라고 생색내기에 바쁘다. 나라를 운영하면서 가장 한심한 태도가 그런 것이다. 수십 개월 나쁘다가  무슨 지표 하나가 개선되면 모든 선전매체를 동원하여 자랑하고 선전하기에 바쁘다. 지난 수요일(9월 11일)에 발표된 고용지표에 대해 열광하는 정부와 여당을 보면 대한민국의 모든 경제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닌지 어리둥절하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과연 일본식 장기불황에 진입하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현재 우리의 기초여건이 너무나 1990년대 초반 일본이 장기불황에 진입하기 직전과 유사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일본의 경험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장기불황을 염려하지 않은 수가 없다. 더불어서 문재인정부가 등장하고 나서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골라서 실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잘 들리지 않지만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어불성설의 거시경제이론 아니 광기를 내세워 나라를 2년 이상 그리고 앞으로도 표류하게 한 것은 이제 오롯이 문대통령이 남은 평생 짊어져야만 할 업보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왜 장기불황을 염려하는가?

 

1980년대가 끝나갈 무렵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미국은 구조조정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디트로이트를 비롯한 대규모 자동차생산 공장들이 문을 닫고 연일 대량해고의 뉴스가 미디어를 덮고 있었다. 그 결과 (아버지) 부시의 치세는 단임으로 끝나고 클린턴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머리에 남는 것은, 선거가 임박했는데도 부시행정부가 구조조정의 명목으로 시장에 개입한다든가 확대재정을 편성하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장기능을 믿고 그에 맡긴다는 원칙을 선거의 패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키는 부시대통령의 대응을 보면서 정치에 있어 철학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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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일본은 호황이었다. 호황이 지나쳐서 지금은 거품이라고 부르지만. <그림 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본의 주가지수인 니케이지수와 주요도시 부동산가격지수가 1985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세 배 상승하였다. 극심한 구조조정에 따른 불황에 시달리던 미국과 엄청난 호황의 일본을 비교하면서 당시 미국을 포함한 세계 언론은 앞으로 세계경제는 일본이 이끌어 갈 것이라고 공공연히 단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을 변곡점으로 니케이지수와 일본의 도시부동산가격지수가 다시 거품 이전으로 원위치하고 불황이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의 불황이 그토록 길어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일본의 대응은 미국과 달랐다. 미국과는 반대로 불황이 시작되자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고통이 따르는 구조조정은 뒤로 미뤄졌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계속하여 실시한 결과 국가채부가 GDP의 250%까지 증가하였다. 차는 다니지 않고 다람쥐만 다니는 소위 ‘다람쥐 고속도로(squirrel highway)’까지 생겨났다고 하니 낭비적인 재정지출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팽창적인 통화정책 또한 지속되고 이자율은 0%까지 하락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20년 이상 회복되지 않았다. 

 

일본과는 다르게 극심한 구조조정의 홍역을 치른 미국 경제는 1990년대 초반 이후 회복되기 시작하여 2001년 9.11테러공격이 있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미국 역사상 가장 긴 호황을 경험하였다. 이 기간 미국 경제는 시장을 통한 확실한 구조조정을 통해 소위 ICT기술을 접목한 신경제(New Economy)로 이행하였다. 반면 일본 경제는 구조조정을 뒤로 미룬 채 정부지출에 기대어 불황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있었다. 그 사이 미국의 1인당 소득은 일본의 두 배 가까이로 증가하였다. 일본 경제가 미국 경제를 대체하고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던 예측은 너무나 황당하게 빗나가고 만 것이다. 

 

기시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의 현재 불황이 일본과 마찬가지로 단기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 같은 것이 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신선놀음을 하는 사이 도끼자루는 썩고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불황이 어떤 이유에서 발생하였든 그로부터 빠져 나가기 쉽지 않은 이유는 가장 먼저 우리 경제의 구조에 있다. 특히 노동, 교육, 규제의 세 가지는 무엇보다도 앞서 개혁되어야 함에도 문재인정부 들어 오히려 개악하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정규직화, 노동시간단축, 강성 귀족노동조합 전횡의 방치 등 노동시장에 대한 개입은 우리 경제를 구제불능으로 만들고 있다. 나아가 재정이 무슨 만병통치약인양 장기불황기의 일본식으로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과거의 일본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있는가. 

 

지금은 디플레이션인가?

 

근래에 우리 경제의 장기불황 징조를 디플레이션에서 찾는 연구들이 존재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림 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2011년 이후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2019년은 8월까지)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1960~70년대 경제개발시대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없을 수 없다. 올해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월까지 0.55%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을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즉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4개월, 올해 3, 6, 7월은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였다. 지난 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 동안 월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인 경우가 일곱 번이고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8%였다. 기실 디플레이션의 징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이 디플레이션에 시달렸지만 1년 내내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인 경우는 없었다. 물가상승률이 때때로 마이너스이고 연간 평균상승률이 0% 근처라면 디플레이션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물며 마이너스인 경우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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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가계부채가 과중한 경우에 디플레이션은 그 부담을 가중시켜 금융기관 부실화 등 온갖 폐해를 낳으며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킴으로써 그 자체가 불황의 원인이 된다.  1930년대의 대공황이 그토록 심화된 것은, 원인이야 다양하지만 디플레이션 때문이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디플레이션을 우리 마음대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새 특히 그렇다. 최근 거시경제이론이 잘 설명하지 못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그토록 많이 통화를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인플레이션이 매우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통화와 인플레이션의 연결고리가 끊긴 것은 아닌지 의심할 지경이 되었다. 이 와중에 우리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하던 대로 지극히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장기불황이 들어선 다음에는 통화와 재정을 포함하여 백약이 무효함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다.     

 

고용은 개선되고 있는가? 

 

지난 주 수요일(9월 11일)에 발표된 고용지표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통계청의 8월 고용동향 발표에 따르면 15~64세 고용률은 67.0%로 전년 동월대비 0.5%p 상승하였고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44.0%로 전년 동월대비 1.1%p 상승하였다. 전체 실업률은 3.0%로 전년 동월대비 1.0%p 하락하였으며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7.2%로 전년 동월대비 2.8%p 하락하였다. 취업자는 2,735만 8천명으로 전년 동월대비 45만 2천명 증가하였다. 소위 말하는 오쿤의 법칙(Okun’s Law)에 따르면 실업률이 1%p 하락하면 경제성장률이 3~5%p 정도 증가하여야만 한다. 실업률 수치가 함의하는 그런 어마어마한 변화는 없어 보인다. 더군다나 국내의 경우 한국은행, KDI를 포함한 국책연구기관과 민간연구기관, 국제적으로는 국제기구, 외국 은행과 투자기관이 우리나라의 성장률 예측치를 왜 경쟁적으로 낮춰 잡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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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실업률은 세계금융위기 동안에도 4%를 상회한 것이 두 번뿐이었다. 그러나 문재인정권 등장 이후 2018년 3월 4.0%를 기록한 이후 28개월 동안 여덟 차례(25%)나 4.0% 이상을 기록하였다. 평균적으로 3.5%를 크게 상회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림 3>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8월 실업률이 지난해 4.1%에서 올 3.1%로 갑자기 나이아가라 폭포수 떨어지듯 하락하였다. 무슨 괴변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용지수의 개선이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과를 얻는다. 먼저 연령별로 보면 60세 이상의 고용이 전년 8월에 비하여 391,000명, 50세 이상은 524,000명 증가하였다. 그러나 30대와 40대의 고용은 각각 9,000명과 127,000명 감소하였다. 그리고 15~19세의 고용은 9,000명 감소하고 20~29세의 고용은 71,000명 증가하였다. 요약하면 노년층 고용이 증가하고 청·장년층 고용이 감소한 것이다. 고용이 증가한 것 자체야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재정을 그만큼 투입해서 공공근로를 대폭 확대한 효과일 뿐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고용의 질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산업별 고용에도 나타난다. 고임금직종이 몰려있는 제조업과 전기·운수·통신·금융업의 고용은 전년 8월 대비 각각 24,000명, 45,000명 감소하였다. 반면에 공공근로를 포함한 막대한 재정이 투입된 사업·개인·공공서비스업의 경우 물경 392,000명 증가하였다. 한편 <그림 4>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16,000명 감소하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97,000명 증가하였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로 대규모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2018년 10월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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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와 사기 사이

 

한 달에 몇 번씩 통계청이 보도자료를 낼 때마다 정부와 여당은 유리한 자료만을 들이대면서 소득주도성장이 효과가 있었다고 주장하곤 한다. 그와 같은 왜곡은 사기다. 국민의 지지와 표를 얻기 위해 읽고 싶은 통계만을 들이대고 전체를 왜곡하는 것은 매국이나 반역에 다름없다고 본다. 이번의 통계도 그렇다. 집권당의 대표라는 인사가 드디어 소득주도성장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단다. 하긴 통계가 마음에 안 든다고 청장을 갈아치우는 사람들이니까! 들고 온 메시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메신저의 목을 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미안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재정이 일으키는 환상이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고용이 증가하다고 성장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재정을 풀어서 고용을 일시적으로 증가시킬 수는 있으나 국가부채가 쌓이면서 그 부작용은 경제위기로 돌아온다. 경제위기의 폐해는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서민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하는 것이다. 허위를 마치 현실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특히나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인사들이 피해야만 하는 행위다. 조국씨의 법무부장관 임명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통령을 비롯하여 지금 집권세력은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없다. 장기불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나 집권당의 바람대로 장기불황이 오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허식을 빼고 데이터를 읽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야 바른 정책과 대안이 마련되는 것이다. 

 

앞에서 디플레이션과 고용통계를 논하면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지금 디플레이션의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은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이번 통계청의 발표는 무언가 이상하다. 지난해 동월과 비교하여 실업률이 1%p 하락하고 지난 7월과 비교하여 0.9%p나 하락하였다는 것은 변동의 규모가 지나치다. 그렇다면 수퍼 예산이라고 하는 내년 예산은 뭐 하러 확대편성하나? 그리고 오쿤의 법칙에 따라 증가하였을 성장률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그 누구도 대한민국에 장기불황이 도래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통계를 가지고 장난치는 집권세력이 존재하는 한 그 개연성이 더욱 증가한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나라는 대통령을 포함하여 그 어떤 개인의 나라가 아니다. 적수공권으로 시작하여 선진국까지 해방 이후 가꾸어온 이 나라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정권 이후 우리의 역사는 북한의 그것보다 못한 것으로 폄훼되고 있다. 좋다. 정권은 어차피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제는 그보다 큰 것이다. 장기불황의 개연성을 과소평가하지 말기를 위정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그리고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에 관심을 갖기를 간청한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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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9월15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9월15일 17시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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