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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파리 구석구석 돌아보기(6)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9월07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9월06일 14시2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메타정보

  • 6

본문

어제도 많이 걷긴 했지만 공원에서 쉬기도 하고 비교적 가까운 곳들을 돌아다녔으므로 오늘 아침에는 피로도가 많이 낮아진 것 같습니다. 오늘도 힘을 내어 빠리를 돌아보아야겠지요. 오늘은 그 대상으로 마레지구, 즉 관광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보주 광장 (La Place des Vosges)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일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보주 광장 이전에 그 바로 이웃에 있지만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바스티유 광장 (La Place de Bastille)부터 가보기로 했습니다. 바스티유 광장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곳입니다만, 광장의 상징인 철구조물을 중심으로 빙 돌아가며 차들이 달려대는 넓은 로타리가 형성되어 있어 접근성이 나쁘므로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곳입니다. 귀에 익숙한 두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는 프랑스 혁명 당시 이곳에 있던 감옥을 부수면서 혁명 내내 역사의 주 무대가 되었던 점입니다.  우리가 서양 역사를 열심히 공부했다는 증거이지요. 그 다음 이유는 세계적인 음악가 정명훈씨가 이곳 바스티유 오페라의 악단장으로 활동하였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저희도 버스를 타고 광장 근처에 내려서 여느 관광객들처럼 사진을 찍는 것으로 방문 인증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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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보주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을 우리나라 건물들이 생긴 방식으로 설명한다면 5층 짜리 주상복합 건물들 39개를 연이어 지어서 네모형 건물로 이루어진 성을 만들고 그 가운데 빈 공간을 광장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될까요. 이곳이 마레지구의 중심인 셈인데 원래 이곳이 늪지대여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만, 지금은 그런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돌로 만든 주상복합 건물들은 중간에 연한 붉은 벽돌들을 넣어서 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광장 내에 심어진 나무들 (마로니에와 띠열: des marroniers et des tilleuls: 칠엽수와 피나무, 다른 공원에서는 두 나무의 키가 비슷하게 자라는데 사진에서 보듯이 가운데 있는 칠엽수는 크고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는데 프랑스 전통방식으로 전지를 한 피나무는 네모 반듯하고 키작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과 분수 , 잔디밭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어른들이 쉬는 모습이 어우러져 빠리지앵들의 여유스럽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삶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인 셈인데 그 자체가 어쩌면 관광의 포인트인지도 모릅니다. 저도 오늘 구입한 Le Monde를 조금 읽으며 그 그림의 한 요소 역할을 해 보았습니다. 가운데에는 이곳 개발을 마무리한 루이 13세의 기마 동상이 서 있습니다. 주상복합 건물이라 했는데 2층 위의 공간들은 개인들의 아파트로 쓰여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어제 주제가 된 빅토르 위고, 왕조시대 유명한 재상 리슐리외 등도 이곳에 살았다고 합니다. 지상층은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아치형 공간 (우리나라라면 아케이드라고 부를 것 같음)이 형성되어 있고, 그 안으로 많은 갤러리, 부티끄, 그리고 식당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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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레지구에 오면 이곳에 살았던 빅토르 위고의 집을 보아야 하는데 공사로 인해 한동안 볼 수 없다고 해서 아쉬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명한 관광 가이드 책인 미슐랭에서 적극 권하는 몇 곳들, 즉 과거에 귀족들과 부자들이 살았던 집들을 개조해서 만든 몇몇 박물관들, 옛 빠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까르나발레 박물관, 사냥과 자연 박물관, 그리고 프랑스 역사 박물관 등이 모두 대대적인 수리 과정에 들어가 볼 수 없었는데 한편으로는 아쉬웠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체력이 비축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박물관, 미술관들을 다녀본 분들은 저의 심정을 이해하리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다음 행선지가 많이 걸어야 하는 국립 피카소 미술관이기에 더욱 다행스런 측면이 강했던 셈입니다.

역시 Sale라는 부자가 살던 집을 개조하여 1985년에 미술관으로 만든 '국립 피카소 미술관' 방문은 피곤했던 저의 아내를 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림에 관심이 많던 (한동안 아마추어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던) 사람이 물을 만난 셈이지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는 동안 저는 점점 지쳐갔지만 생생하게 그것도 시간을 물쓰듯 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그림들을 감상하고 설명들을 읽고 다녔습니다. 마침 중간중간에 의자들이 놓여 있어서 저는 몇번이나 자리에 앉아 기다려야 했습니다. 물론 저도 피카소의 그림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그런 열정은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덩치가 큰 서양 부부들 사이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고 덩치 큰 서양 아저씨와 제가 함께 의자에 앉아 있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이 대부분이었지만 한동안 그와 함께 다니며 작품활동을 했던 칼더의 그림들도 일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희들이 공부하던 시절 만 5살 정도였던 저희 큰 딸과 함께 마드리드에 있는 게르니카 미술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를 중심으로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 및 다른 작품들을 전시한 곳)을 들렀을 때 막 불어를 유창하게 쓰기 시작했던 큰 딸이 "gribouillage (아이들의 서투른 그림)!!!"라고 말하자 주변에서 듣던 프랑스 관광객들이 크게 동의하던 그 피카소의 그림들은 역시 낙서급의 그림들도 많았습니다. 조각들도 재미는 있었지만 역시 장난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많았구요. 아직 제 실력으로는 이 그림들을 정서적으로 잘 그린 것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아침에 호텔에서 떠나기 전에 미리 인터넷으로 구입한 박물관 표들 사진과, 여기서도 저의 재채기 하나 때문에 얘기를 나누게 된 마이애미에서 온 미국인 부부 (부인은 중국계)와 찍은 사진도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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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그림들을 보고 나오니 저희가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피자집 벽면의 낙서마저도 예술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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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레지구에서 그래도 박물관으로 열려 있던 '국립 고문서 박물관'은 내부는 생략하고 그 뜰과 건물 외부만 구경했습니다. 역사학도인 아내마저도 피카소 미술관을 나오자 지쳤는지 내부로 들어가지 말자는 저의 제안에 동의하네요. 마레지구 마지막 거리를 지나 빠리지앵도 놀라게 만든 건물인 퐁피두 센터 앞에서 버스를 타고 오늘은 일찍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찍은 퐁피두 센터 건물 외관 사진도 올립니다. 아내는 연신 '정말 못 생겼다.'고 하네요. 저는 유투브에서 이 퐁피두 센터에 관한 다큐를 하나 보았는데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약간 어정쩡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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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9월07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9월06일 14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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