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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한‧일 대립 더욱 거세졌으나 …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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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9월03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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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래
  • 광주대학교 초빙교수, 前 국민일보 편집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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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가 강대강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이후 속을 끓여오던 일본 정부는 올 7월 4일 뜬금없이 대한(對韓) 수출규제 조치를 내세워 압박을 가했고, 이에 한국 정부는 범국민적 반발과 더불어 8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이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양국의 갈등구조가 역사문제에서 비롯되어 무역 제재와 경제 갈등으로 번지고 급기야 안보 이슈로까지 증폭되는 상황이다.

 

  양국의 갈등 사태가 어떻게 귀결될지 전망조차 조심스럽다. 서로를 향한 감정이 극단화되고 있고 상대와 관련한 부정적 주장이 연일 미디어를 장식한다. 최근 필자가 직면했던 상황을 돌아볼 때 상황은 더욱 비관적으로 비친다. ifsPOST의 지난 18일자 ‘뉴스인사트’ 칼럼(‘對日 공세 누그러뜨린 8‧15 경축사 … 그 후속 대응은’)에서 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한 공세를 누그러뜨렸다는 점을 크게 평가하면서 양국의 관계개선을 위한 긍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한국 정부는 불과 한 주일 만에 강공으로 전환했다. 관찰자의 분석이 여지없이 빗나갈 만큼 지금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난형난제요, 갈수록 태산이다. 

 

  이럴 때일수록 근원적인 입장에서 사태를 뜯어봐야 한다. 한‧일 갈등의 지속은 양국 모두에 피해를 떠안길 뿐이다. 더구나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떠안고 있는 한국의 처지에서 보면 이웃나라의 공감과 지원을 얻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되레 거꾸로 내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지금의 한‧일 갈등은 봉합되지 않을 수 없다.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환경이 양국의 대립‧갈등관계를 방치할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지소미아의 위상과 의미, 지소미아 종료 결정 배경, 정부의 과제 등을 짚어보기로 한다.

 

한‧일 지소미아, 미국과 일본이 더 원했던 것

 

  지소미아는 협정 체결국 간 군사정보 상호교환 및 상대국 군사정보 제3국 유출 금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군사협정이다. 한국은 현재 35개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포함)과 군사정보보호협정 및 약정을 맺고 있으며 동맹국인 미국과는 1987년 체결했다. 일본 역시 현재 7개 국가 및 NATO와 지소미아를 맺고 있으며 역시 동맹국인 미국과는 2007년 체결했다.

  한‧일 지소미아는 여느 지소미아와 달리 각별한 성격을 갖고 있다. 미국과 각각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지만 정작 한‧일은 동맹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한‧미‧일 3국 연대를 위해서는 적어도 한‧일 지소미아 체결은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미국은 일찍부터 한‧일 지소미아 체결을 원했고, 일본 역시 미국의 바람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려는 입장이었다. 다만 한국의 입장은, 군사정보는 절실하지만 과거 한국을 침략한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는 것에는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일 지소미아를 둘러싼 한‧미‧일의 입장 차는 실제로 지소미아 체결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010년을 전후로 일본과 미국의 요청에 의해 제기됐던 한‧일 지소미아 문제는 마침내 2012년 6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일본과 지소미아 밀실 추진’이라는 국민적 반발에 직면해 정부는 6월 27일 도쿄에서 양국 대표가 서명하기로 한 당일 전격적으로 협정 체결 취소를 통보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과거 한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일본과 어떻게 군사협정을 맺을 수 있느냐는 국민적 저항을 넘지 못했다.

 

  한동안 의제에서 밀려나 있던 한‧일 지소미아는 2016년 11월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2016년 7월 중국의 반발과 한국 국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한국 배치를 공식화 한 데 이어 11월 23일 미국과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한‧일 지소미아를 체결했다. 그런데 당시 박 정권은 지소미아를 추진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소미아 체결 직후인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될 정도였다. 촛불 정국은 이미 시작됐고 정권이 사실상 백척간두에 섰던 그 시점에서 갑작스레 지소미아 체결을 몰아세운 정황을 감안하면 지소미아에 거는 미국과 일본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즉 사실상 파기 결정에 대해 미국과 일본은 거칠게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 지소미아를 통한 실질적 혜택이 한국 이상으로 미국과 일본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8월 22일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했고, 이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을 비롯한 미국 정부 관계자의 비판 수위는 갈수록 고조됐다. 미 국무부는 28일 “지소미아 파기는 주한미군에 대한 위협을 증가 시킨다”며 “한국이 11월 22일(지소미아 종료 시한)까지 결정을 바꾸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일본 정부도 “극히 유감”이라는 뜻을 밝히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지소미아를 매개로 한 군사정보 교환 건수는 지난 3년 동안 약 30건에 불과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이 극에 달했던 2017년 양국의 군사정보 교환 회수가 19건으로 피크에 달했지만 연간 교환 건수는 그리 많지 않다. 정보란 많을수록 당연히 유리하겠지만 현재의 지소미아는 한국에 기여하는 정도가 그리 크지 않다. 지소미아 종료로 한국의 대북 미사일방어 능력 저하로 이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과의 정보 교환은 실시간으로 이뤄질 것이며, 지소미아 체결 이전인 2014년부터 마련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 체계도 재가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 대응인가, 전략적 선택인가?

 

  한‧일 지소미아는 매년 갱신을 원칙으로 하며, 종료 시점 3달 전 양국 중 어느 한 쪽에서 종료 의견을 내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갱신되는 구조다. 종료 시점은 11월 22일까지인데 갱신 여부를 제기하는 시한은 8월 24일이다. 한국 정부는 바로 그 이틀 전에 종료 결정을 내렸다. 청와대가 밝힌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공식적인 이유는 “양국 간 민감한 군사 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즉 반도체 관련 세 가지 소재에 대해 기존의 포괄적 수출허가를 개별 허가방식으로 전환하고, 한국을 수출우대국가(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배경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의 대일 수입물자 관리에서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이 전략물자가 포함된 대일 수입품목 중 일부를 부적절하게 제3국에 유출했을지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한국을 안보 차원에서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낙인찍은 것이다. 일본이 한국에 대해 안보상 신뢰할 수 없어 수출규제를 취한다고 하니 한국 정부로서는 한국을 못 믿겠다고 하는 나라와 군사정보를 교환할 수는 없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부의 결정은 자못 감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8‧15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이 대화와 협력을 거론했지만 일본으로부터 분명한 반응도 없었고,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바로 전날 중국에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일본은 경제보복 조치 철회 요구에 받아들이지 않은 점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몇 번의 외교적 시도가 먹히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종료 결정을 내린 것은 성급하다. 종료 결정 당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3시간의 난상토론 끝에 내린 결정이라니 이 또한 황당하다. 한 나라의 중대한 전략적 선택이 그렇듯 불같이 결정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이낙연 국무총리의 발언은 좀 더 자제력 있는 상황 타개책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22일의 NSC에도 참석한 바 있지만 정착 그의 타개책은 나흘 후인 26일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나왔다. 그는 “지소미아 종료가 3개월 남아 있다”며 “그 기간에 타개책을 찾아 일본 정부가 취했던 부당한 조치들을 원상회복하고, 우리는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2일 NSC의 결정에서 조건부 해법을 제시하고 일본을 압박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어찌됐든 문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동북아시아에서의 한‧미‧일 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 시도가 비록 전략적 차원에서 벌인 선택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미국과 일본 측에서 강력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그에 상응하는 후속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지소미아를 강조하는 미국의 입장은 한‧미 동맹에서 양국이 갖는 역할과 관계가 깊다. 한국과 미국은 한‧미 동맹에서 각각 방패와 창의 역할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유사사태가 벌어질 경우 한국은 역내 현장에서 방패 노릇을 감당하고 미국은 배후에서 창 역할을 맡는다. 다시 말하면 방패의 역할은 전장의 한가운데서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배후에서 준비된 창이 날아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해는 방패역할을 맡은 한국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

 

  한‧미간의 이러한 구도는 미‧일 동맹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일본으로서는 지소미아를 통해 방패 역할에서 한국이 먼저 앞장서 줄 것을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한‧미‧일 협력관계를 한국을 맨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일본, 맨 위에 미국이라는 수직적 안보체계로 생각하는 입장이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한‧미와 미‧일이 동맹관계는 아니었지만 이미 경험했던 구도다. 

  한국은 미국의 압박 속에서 사드를 배치했고 그 때문에 미‧중 패권 구도에서 중국의 안보상 적대국가로 지정돼 있다. 지소미아의 파기는 적어도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한‧미‧일 구도에서 최하위의 방패 역할로만 일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과 다르지 않다. 미국과 일본이 지소미아 파기 결정과 관련해 한국이 한‧미‧일의 협력과 연대를 훼손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비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미 동맹 관리는 당장 필연적인 수순

 

  이번 지소미아 파기 선언과 더불어 한‧미 동맹관계의 의미와 역할을 재점검하는 작업은 문 정부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무엇보다 미‧중 패권대립이 구체화되고 있는 지금, 한국이 그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존재감을 키우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압박은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그런데 8월 2일 미국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파기 선언은 제2의 사드 사태라는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원래 INF는 구 소련과 미국이 체결한 ‘미‧소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 조약’(1987)인데 러시아가 구 소련을 계승하면서 조약은 유지돼왔고 그간 미‧러는 충실하게 군축에 임해왔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INF에 가입돼 있지 않았기에 중‧단거리 미사일 군축 의무는커녕 오히려 중‧단거리 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마음껏 늘려왔다. 이를 보다 못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INF의 폐기를 결정하고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

  미국은 INF 폐기 이후의 수순으로 중국을 겨냥한 중‧단거리 미사일을 아시아권에 전략 배치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호주 일본 한국을 연이어 방문하면서 “지상에서 발사하는 중‧단거리 미사일을 아시아 동맹국 등과 협력해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가장 먼저 호주는 ‘자국 배치 불가’를 천명하고 나섰다. 이제 남은 곳은 일본과 한국이다. 이런 와중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방위분담금을 5배로 올리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은 제2의 사드 사태로 치달을 수 있는 미국의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문제와도 연계될 수밖에 없다. 동맹관계를 앞세워 하위의 방패역할만 요구하는 미국에 대해 문 정부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할 것인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 등과 연계해 어떤 의사결정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비핵화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새로운 대중 방패막이용 미사일기지 배치 수용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한편 이를 위해 지소미아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소미아 갱신을 전제로 미사일기지 배치를 피하는 방안도 가능하겠다. 어떻든 아직도 여운이 남아 있는 사드사태는 한 번으로 족하다.

 

한‧일 관계는 징용자 문제부터 선제적 수습을

 

  일본과의 갈등과 관련해서도 문제의 핵심을 분명하게 찔러 해법을 찾아야 옳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이런저런 이유를 달고 있지만 핵심은 징용자 배상판결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다. 당장 일본 전범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몰수돼 현금화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자국 기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일본 정부로서는 좌불안석이 따로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출규제 조치’를 ‘지소미아 폐기’로 맞받아친들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양국관계 회복이 요원함을 내외에 알려, 중국과 북한에 한‧미‧일 공조가 훼손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더구나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편 가르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이 미‧일과는 다른 길을 추구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징용자 문제 해법뿐이다. 그 물꼬를 터줄 수 있는 대응이 절실하다. 당초 문 정부는 일본에 ‘1+1’를 제안한 데 이어 ‘1+1’+알파의 여지도 거론했다. 즉 일본의 전범기업과 청구권자금으로 성장한 한국기업이 더불어 기금을 마련해 배상문제를 풀자는 방식, 그리고 이 방식을 기반 삼아 추가논의를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과감하게 한국 정부가 ‘1+1+한국 정부’ 안을 제안함으로써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것이 좋겠다. 당장 배상과 관련한 비용을 한국정부가 부담하고 추후에 이를 일본기업과 한국기업이 정산하도록 하거나 나아가 종국에는 일본 정부도 여기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징용자문제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로 피해자 배려 우선 원칙을 세운다는 점이다. 이는 징용피해자뿐만 아니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게도 처음부터 당연히 제기됐어야 마땅한 문제였다. 둘째로는 한‧일 갈등문제의 근원인 1965년 한‧일 기본조약, 이른바 ‘65년 체제’에 대한 비판적 재구축을 위한 계기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데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와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사실 징용자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은 이미 1974년과 2004년‧2007년에 각각 특별법을 제정해 정부 주도의 1, 2차 보상을 벌인 바 있다. 물론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배상판결은 불법 식민지 지배로 빚어진 피해에 대한 위자료 성격으로 배상을 규정하고 있어 기존의 1, 2차 정부보상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다만 자국민의 피해에 대한 정부의 무한 대응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그간의 정부보상에 더해 위자료 문제를 새롭게 추가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정부의 선제적 보상은 일본과의 대립구도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줄 것이다. 정부가 보상 문제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맡음으로써 앞으로 한‧일 관계를 보편적 가치 차원에서 리드해갈 수도 있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자구조치’를 선언한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지원하되 일본 정부는 진상조사와 더불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후세에 교육할 것을 촉구했다. 그 결과가 그해 8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로 나타났다.

 

  악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의 와중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꾀하겠다는 문 정부라면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대일 이슈와 관련해 좀 더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맞다. 해방 후 74년, 국교정상화로부터 54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거사 문제에 대해 늘 소극적이고 될 수만 있다면 최소한으로만 대응하려는 일본의 태도는 이미 지겹도록 경험해왔다. 그런데도 그런 일본을 향해 우리가 여전히 감정만을 앞세운다면 앞으로도 원하는 해법을 얻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들이 응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먼저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바람직한 틀을 마련하고 그들로 하여금 따라오도록 리드하면 될 문제가 아닌가. 한국은 이제 그 정도의 재정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나라로 성장했고 시민사회의 위상 또한 그에 상응할 만큼 성숙했다. 한반도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평안을 위해 한국의 시민사회는 물론 정‧재계 모두가 차분하고 대범하게 대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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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9월03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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