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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의 ‘혼네’(本音)와 동문서답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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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8월12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8월12일 18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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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일본이 일방적인 무역보복 조치로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 한편 8월 10일자 도쿄신문(東京新聞)은 대한국 수출규제 강화가 경제보복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아베 정부의 고민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양상은 작금에 전개되고 있는 양국 간 무역전쟁에 대한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이해의 간격이 얼마나 심한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동문서답(東問西答)이 전개되고 있다. 아베 수상의 의도는 무엇이며, 왜 양국은 동문서답으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가?

 

  필자의 관점으로는 아베 총리는 이익을 얻고자 수출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베 총리는 5월부터 개시된 나루히토 일왕의 ‘레이와(令和)’시대의 전개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고 분석된다. 나루히토 일왕의 연호 ‘레이와’(令和)에 대하여 아베 총리는 "레이와(令和)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서로 모아서 문화를 태어나게 하고 키우자는 의미이다. 문화나 자연과 같은 나라(일본)의 특색을 다음 세대에 이어나감과 동시에, 혹독한 추위 뒤에 피는 매화처럼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과 함께 각자의 꽃을 크게 피울 수 있는 그런 일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라고 설명했다. 실로 우아한 연호이며, 멋진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우아한 의미의 ‘레이와’시대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는 준비가 필요하다. 먼저 일본을 패전국에서 정상적인 국가로, 그것도 침략 만행으로 얼룩진 과거사의 흔적을 깨끗하게 씻은 평화국가로 거듭나는 준비가 필요하다. 바로 이 준비가 아베 총리의 숙원 사업이며, 그 잘못된 출발이 작금의 무역전쟁을 야기함으로써 아베 총리는 난관에 직면해 있다.  

 

아베 총리의 비전, ‘전후(戰後) 체제의 탈각’

 

  2006년 9월 아베 총리가 처음으로 총리에 취임한 이래 추구한 비전은 ‘전후(戰後) 체제의 탈각’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후 체제’ 상징은 전쟁 포기와 군사력 보유 포기를 내용으로 한 헌법 9조다. 

헌법 9조로 인해 일본은 군대를 가질 수 없고, 따라서 스스로 국가를 지킬 힘이 없는 이상한(?) 국가의 족쇄에 72년째 갇혀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자위대가 그 기능을 대신하고 있으나, 국가를 지키는 당당한 군대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을 군대를 가질 수 있는 정상적인 국가로 바꾸고, 이에 따라 자위대가 헌법상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대의 위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아베 총리의 비전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 국민들은 헌법 개정 문제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NHK 조사(8월 5일 발표) 결과, 개헌에 대한 지지율은 34%로 ‘반대’ 24%보다는 높지만 ‘유보’가 3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은 상황(NHK 7월 21일 발표, 반대 57%)에서 7월 21일 예정된 참의원 선거를 치루기 위해서는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그 무엇’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점에서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때리기’라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성공사례를 보여준 바 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베 총리는 징용공 배상문제 대응의 일환으로 준비해 왔던 ‘한국 때리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7월 1일 일본 정부는 ‘수출관리령’을 개정하여 신뢰 가능한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방침과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절차 강화를 발표했다. ‘한국 때리기’가 참의원 선거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8월 2일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다는 결정을 발표한 3일 후 실시된 NHK 조사 결과 아베내각 지지율은 49%로 3주전 조사보다 4%포인트 상승한 반면에 아베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31%로 2%포인트 하락하였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일단 참의원 선거에서 ‘한국 때리기’는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수출금지로 한국을 압박하여 한국과의 얼룩진 과거사의 흔적을 단절할 수만 있다면, ‘레이와’시대를 준비하는데 있어 이것만큼 아베 내각의 성과를 빛나게 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일본을 모르는 한국, 한국을 모르는 일본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왜 이 시점에서 ‘한국 때리기’가 일본 국민들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산케이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7월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직후 조사에서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 75%, ‘수출규제 찬성’이 70%로 나왔다. 일본에서 ‘혐한(嫌韓)’감정이 확산된 계기에 대해서는 대부분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2011년 12월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상징하는 소녀상 건립이후 계속된 갈등과 2015년 양국 간 합의로 다소 진정되었던 갈등은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신일철주금에 대한 징용공 배상명령과 12월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배상명령으로 다시 고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국민들은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에 지쳐 갔으며,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정서는‘참을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나라’로 변화했다. 과거사가 여하 간에 이제는 지겹다는 것이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혐한’ 정서가 확산되어 갔다. 아베 총리는 이러한 민심의 변화를 주목했으며, 더구나 배상판결에 관련한 2019년 1월과 5월 두 차례의 정부 간 협의 요청에 대하여 한국 정부가 냉담한 반응을 보임에 따라 관계 정리의 명분을 쌓아 왔다. 마이니치신문(8월 9일자)은 일본 정부가 ‘징용공 대응 촉구 의도’에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가 양국 기업 출연(出捐)으로 징용공 피해자 위자료 지급 방안을 제시한데 대하여 일본 정부는 6월 19일 거절 의사를 발표함으로써 일본의 반격은 시작되었으며, 이어 7월 1일 ‘백색국가’ 제외 법령 개정안을 고시했다.  

 

  이제 공은 한국으로 넘어 왔다. 7월 1일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발표이후 불과 40일간에 한국 사회가 보여준 소위 ‘안 사! 안 가!’로 집약되는 반일 감정의 표출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단적인 예로 맥주 수입액은 7월 전월대비 45% 감소하였으며, 승용차 수입액은 7월 전년 동월대비 34% 감소했다.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이용객 수는 7월 33% 감소했다. 

 

  아베 총리의 ‘혼네(本音)’<속내>에 대하여 1) 참의원 선거용, 2) 징용공 대응 촉구 의도, 3) 과거사 정리, 4) 한국 IT산업에 대한 경쟁의식 등의 분석이 있다. 필자는 1), 2), 3)이 복합된 것으로 보이며, 이면의 큰 그림은 ‘레이와’시대의 전개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아베 총리의 ‘혼네’는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한국 정부와 사회의 분노와 반발을 야기함으로써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 사슬을 손상시킴으로써 경제대국으로서 일본에 대한 세계 경제의 신뢰를 크게 추락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나라’ 對 ‘더는 참을 수 없는 나라’

 

  ‘레이와 시대’를 여는 중요한 국가적 이벤트가 개헌과 한국 관계 변화라고 한다면, 개헌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아베 정부가 지지도가 높은 무역전쟁을 끝낼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2020년 총선을 앞 둔 한국 정부가 반일 기조를 거두고 아베 총리를 납득시킬 만한 해결책을 제시할 가능성 역시 낮다. 양국이 공유해 왔던 글로벌 공급사슬의 이익을 포기하고, 자국 국민들의 감정을 힘으로 대결하고자 하는 상황에서는 양국 공히 국내적으로는 해결의 동력을 마련하기 어렵다. 더구나 양국 정부가 공히 정권이 걸린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치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 정부가 포퓰리즘의  힘으로 무역전쟁을 밀어붙이는 상황은 마주 향하는 기차의 대결에서 예상되는 충돌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재자로 나설 명분도 실효성 있는 수단도 없다.

 

  일본은 글로벌 공급 사슬을 끊어서 국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한국의 수입을 애 먹일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반도체 생산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경우, 글로벌 공급 사슬을 끊음으로써 국제적 여론은 물론 미국이나 중국 등 이해관련국이 개입할 명분을 만들기 때문에 무역전쟁을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로 격리하기 위해서도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8월 7일 일본 정부는 기존 개별 허가품목으로 지정된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을 제외하고는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음으로써 일단 3년 단위 특별일반포괄허가제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 시행세칙을 발표했으며, 같은 날 일본 정부는 수출 개별허가 지정 후 34일 만에 포토레지스트의 대(對)한국 수출을 처음으로 승인했다. 따라서 사태는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 정부가 8월 28일부터 실시되는 3년 단위 특별일반포괄허가제를 원활하게 시행하여 한국에 대한 수출의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한국도 반일 감정을 계속 고조시킬 명분이 약해짐에 따라 양국의 무역전쟁은 서서히 진정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양구간의 외교 채널을 통한 관계 정상화 협상 여건도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동문서답(東問西答)과 포퓰리즘 대결의 중단이 해결의 출발점 

 

  아베 총리는 지금과 같은 한일관계로는 진정한 ‘레이와’시대를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지우려던 과거사의 흔적을 오히려 키우고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는 실상을 고민해야 한다. 반면에 문 대통령은 한국이 일본에게 ‘더욱 참을 수 없는 나라’가 된 일본 국민들의 정서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나라’와 ‘더는 참을 수 없는 나라’간의 포퓰리즘 대결은  양국 공히 국익 손실은 물론 패자만 있을 뿐이다. 

  사태의 본질은 징용공 배상 문제와 국민 정서의 대립(‘반일감정’ 대 ‘혐한감정’)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전쟁은 무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무역전쟁으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글로벌 공급 사슬을 위협한 대가(代價)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이 아니다. 그런 만큼 일본 정부는 일본의 국익 손실을 막기 위해서도 한국과의 무역전쟁을 서둘러 끝내는 것이 답이다. 

 

  양국은 동문서답을 그만하고 사태의 본질을 두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이제 아베의 ‘혼네’를 드러내고 협상을 시작해야 할 것이며, 문재인 정부도 가득이나 위축된 경제를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해서도 일본과의 협상을 받아 들여야 할 것으로 본다. 양국 국민들의 감정 차원이 아니라 양국의 국익 차원에서 협상이 추진되어야 한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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