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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파행상에 비친 학벌사회의 민낯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1월19일 19시1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47분

작성자

  • 김경근
  •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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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대입 파행상에 드리워진 학벌사회의 그늘

최근 대학입시와 관련된 두 가지 사건이 국민을 큰 충격과 혼란에 빠트렸다. 하나는 학부모가 교사와 짜고 학생부를 조작하여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킴으로써 입학사정관제도를 뿌리째 흔들어버린 사건이다. 수법 자체도 경악할 만했지만 경찰 수사를 받던 학부모가 억울해하며 던졌다는 “왜 나만 갖고 그러세요”라는 한 마디가 국민을 더 큰 충격과 허탈감에 빠지게 했다. 듣기에 참 거북한 언사이지만 입학사정관제도의 숱한 허점을 감안하면 새겨들을 구석이 전혀 없진 않다. 다른 하나는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이 명백한 출제 오류였다는 것이 법원 판결에 따라 공인된 사건이다. 정부가 오류를 인정하고 피해 학생들에 대한 구제에 나섰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 문항 때문에 지원했던 대학에 불합격했던 학생들은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하향지원으로 원하지 않은 대학에 다니게 된 학생들은 구제를 받을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학벌 프리미엄을 놓쳤다고 생각하는 당사자로서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분출을 경험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학벌 프리미엄에 대한 강고한 믿음

 

별개의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두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하나로 요약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학벌이 삶의 기회를 결정하는 관건이라는 믿음이 사람들 사이에 강고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이 자식의 교육문제라면 어지간한 불법과 편법은 문제될 게 없다는 상황윤리의 만연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바로 이러한 믿음 때문에 수능에서 오답으로 처리된 단 한 문제 때문에 인생이 잔뜩 꼬였다고 여기는 학생들이 도처에 넘쳐나고 있다. 

학벌을 중시하는 성향은 그 프리미엄에 익숙한 계층에서 더욱 두드러진 것으로 보인다. 2014학년도 수능자료 분석결과를 보면 서울시에서 재학생 대비 재수생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강남구로 무려 74.3%에 달한다. 재수생 비율이 가장 낮은 금천구의 23.8%와 비교해 보면 강남지역의 재수 성향이 얼마나 높은지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교육특구의 핵심인 강남지역은 학생들의 학력이 높기로 소문난 곳이다. 따라서 이 지역 학생들은 타 지역 학생들에 비해 학력이 부진해서 대거 재수로 내몰린 게 결코 아니다. 삶의 기회와 결부시켜 학벌을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연간 수천만 원이 소요되는 재수 비용을 훨씬 능가하는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재수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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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잠재 능력 중시 성향과 패자부활전의 부재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왜 그렇게 중요한 가치가 되어 있는가? 무엇보다도 일반적 잠재 능력 중시 능력관이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관의 기저에는 학벌은 신뢰할 만한 일반적 잠재 능력의 증표로서 학벌이 좋은 사람은 무엇이든 잘 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또한 이처럼 학벌이 일반적 잠재 능력의 증표로 널리 수용되는 사회에서는 그것을 공개적으로 시현해 보이는 무대인 대학입시가 극심한 경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서 실패하는 것은 그 자체의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생 전체의 실패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훗날 다른 노력을 통해 그 실패를 만회하는 게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떻게든 세칭 명문대에 진학한다면 향후 진행될 각종 경쟁에서 한결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명문대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 입장에선 패자부활의 기회를 갖기 어려운 암담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연고주의가 학벌의 효용성을 강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학벌의 효용성은 강력한 연고주의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 주지하듯이 우리 사회에서는 학교 동창 중심의 친분관계가 연줄망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동창 중심의 친분관계가 연줄망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학력이나 지위가 높을수록 훨씬 더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출신 학교에 바탕을 둔 강력한 연고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되면 어떻게든 평판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그 대학 동문으로서 성원성을 획득하는 것이 신분 상승의 첩경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사회에서 학연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는 일종의 효과적인 자기방어 기제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명문대 학벌을 겨냥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경쟁이 펼쳐지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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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획득 경쟁 때문에 치르는 값비싼 대가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 학생들이 학벌 획득에 매달리는 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평생학습곡선이 비정상적인 패턴을 보이고, 궁극적으로 이것이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서구에서는 평생학습곡선이 대학시절에 정점에 도달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과 공부 못지않게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체력을 다진 후에 대학에 진학하여 일생에서 가장 밀도 있게 학업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생의 경우 운동은 물론 독서도 자제하면서 교과 공부에만 매달리고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학원에도 들르며 살인적인 학습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대학에 진학해서는 심신이 피폐해진 나머지 학습 강도도 크게 저하되어 있는 실정이다.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2009년 자료에 따르면 대학생의 일평균 학습시간은 3.78시간에 불과했다. 초등학생보다도 학습시간이 적고 고등학생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까닭에 한국 학생들이 TIMSS나 PISA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고등교육의 경쟁력은 훨씬 저조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아동과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치열한 성적경쟁 때문에 우리 사회가 치르고 있는 값비싼 대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 하겠다.   

 

실력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       

 

우리 사회에서 학벌 프리미엄은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취업은 물론 승진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수많은 학생들이 학벌 획득을 위해 사생결단의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것들 외에도 청소년의 피폐한 인성, 저질 체력, OECD 최저 행복지수, OECD 최고 자살률, 과도한 대학진학률, 사교육의 번창 등 그 폐해를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폐해는 인생의 한 시점에서 획득한 대학 간판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맹신이 불식되지 않으면 결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실력 중심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좀 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하루빨리 강구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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