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먹거리에 대한 우리의 비뚤어진 관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1월14일 22시2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04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메타정보

  • 18

본문

먹거리에 대한 우리의 비뚤어진 관심

요즘 우리의 식탁은 임금님의 수랏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풍성하고 화려하고 안전하다. 실제로 하얀 쌀밥(이밥)과 고깃국을 그리워하던 어려운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다. 고질적으로 부족했던 쌀은 남아도는 형편이고, 식품점과 냉장고에는 싱싱한 야채와 육류는 물론 이국적인 수입산 먹거리와 온갖 가공식품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집안의 식탁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국밥과 짜장면이 고작이던 외식 메뉴도 완전히 달라졌다. 두툼한 등심과 삼겹살을 파는 식당이 즐비하고, 파스타와 피자가 국민 외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먹거리의 품질과 위생관리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진수성찬을 마주하면서도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멀건 시래기 된장찌개와 시원찮은 푸성귀에 고봉밥으로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던 경험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식탁에 대한 정체불명의 불안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식품의 생산자와 유통업자도 믿을 수 없고, 정부와 전문가도 신뢰할 수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전문가와 언론이 쏟아내는 먹거리에 대한 혼란스러운 정보들이다. 그런 정보를 무작정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외면하기도 어려운 것이 소비자들의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소비자들의 음식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비뚤어져 버렸다. 

201411142226294w23swyn6w.png


음식에 대하는 우리의 자세부터 혼란스럽다. 장터처럼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알 수 없는 괴성과 탄성을 내지르면서 입이 터질 정도로 게걸스럽게 음식을 퍼먹는 천박스러운 모습이 일상화되고 있다. 음식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갖추지 못한 저질 먹방이 소개해주는 더 맵고, 더 자극적인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정에서의 식사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마 속의 식탁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쏟아내는 곳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정갈한 식탁에서 정겨운 대화와 품격을 갖추어 음식을 먹는 문화적인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식사 예절이라는 말은 들먹이기도 난처한 상황이다.

  음식의 맛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심각하게 비뚤어져 있다. 음식의 맛에 대한 호감은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반드시 다른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것이다. 강한 냄새를 풍기는 홍어나 과메기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고, 정반대로 코를 막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좋아하는 맛은 부모에 의해 길들여진다. 남을 대신해서 음식의 맛을 판별해주겠다고 떠벌리는 전문가는 경계하는 것이 마당하다. 포도주나 커피의 맛을 평가해주는 전문가의 의견에 누구나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식품과 의학 전문가들의 무책임하고 어설픈 정보도 소비자들의 음식에 대한 관심을 비뚤어지게 만들고 있다. ‘두부’에는 ‘레시틴’이 많아서 ‘어린이의 두뇌 발육에 좋다’는 것이 우리 전문가들의 전형적인 식품 소개 방법이다. 우유에는 카제인이 많고, 등이 푸른 고등어에는 오메가 지방산이 넘쳐난다는 식이다. 야채에 들어있는 항산화물질을 충분히 먹지 않으면 당장 심각한 질병에 걸릴 것처럼 법석을 떤다. 두부를 비롯한 식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의 종류가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화학적 상식과 레시틴과 같은 화학 성분의 생리적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분명한 경우가 많지 않다는 평범한 사실은 완전히 무시되어 버린다. 식품에 대해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효능이나 효과를 강조하거나, 식품을 질병 치료에 사용한 의약품으로 오인하거나 혼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표시와 광고는 엄격하게 금지한다는 식품위생법 제13조(허위표시 등의 금지)는 음식의 화학 성분과 생리효능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음식에 대하는 우리의 자세부터 혼란스럽다. 장터처럼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알 수 없는 괴성과 탄성을 내지르면서 입이 터질 정도로 게걸스럽게 음식을 퍼먹는 천박스러운 모습이 일상화되고 있다. 음식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갖추지 못한 저질 먹방이 소개해주는 더 맵고, 더 자극적인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정에서의 식사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마 속의 식탁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쏟아내는 곳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정갈한 식탁에서 정겨운 대화와 품격을 갖추어 음식을 먹는 문화적인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식사 예절이라는 말은 들먹이기도 난처한 상황이다.

  음식의 맛에 대한 우리의 관심도 심각하게 비뚤어져 있다. 음식의 맛에 대한 호감은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반드시 다른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것이다. 강한 냄새를 풍기는 홍어나 과메기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고, 정반대로 코를 막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좋아하는 맛은 부모에 의해 길들여진다. 남을 대신해서 음식의 맛을 판별해주겠다고 떠벌리는 전문가는 경계하는 것이 마당하다. 포도주나 커피의 맛을 평가해주는 전문가의 의견에 누구나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식품과 의학 전문가들의 무책임하고 어설픈 정보도 소비자들의 음식에 대한 관심을 비뚤어지게 만들고 있다. ‘두부’에는 ‘레시틴’이 많아서 ‘어린이의 두뇌 발육에 좋다’는 것이 우리 전문가들의 전형적인 식품 소개 방법이다. 우유에는 카제인이 많고, 등이 푸른 고등어에는 오메가 지방산이 넘쳐난다는 식이다. 야채에 들어있는 항산화물질을 충분히 먹지 않으면 당장 심각한 질병에 걸릴 것처럼 법석을 떤다. 두부를 비롯한 식품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의 종류가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화학적 상식과 레시틴과 같은 화학 성분의 생리적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분명한 경우가 많지 않다는 평범한 사실은 완전히 무시되어 버린다. 식품에 대해 질병의 예방 및 치료에 효능이나 효과를 강조하거나, 식품을 질병 치료에 사용한 의약품으로 오인하거나 혼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표시와 광고는 엄격하게 금지한다는 식품위생법 제13조(허위표시 등의 금지)는 음식의 화학 성분과 생리효능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식품 전문가들이 한순간에 과학으로 무장한 독성학 전문가로 변신하기도 한다. 특히 가공식품에 대해서 그렇다. 우리 소비자들이 식품에 들어있는 ‘발암물질’과 ‘유해물질’ 때문에 공포에 떨게 된 것도 그런 전문가들의 어설픈 주장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의해 발생하는 폐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발암물질이나 유해물질을 입에 대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치명적인 암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처럼 야단들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발암물질 분류가 발암성의 정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WHO의 분류에 따르면 술과 젓갈, 숯불과 담배도 ‘1군’(Group 1) 발암물질이다. 그러나 술과 젓갈을 먹는다고 반드시 암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전문가들에 의한 일방적인 폄하도 심각한 문제다. 전문가들은 육식을 위주로 하는 ‘서구식 식생활’을 이구동성으로 비난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식생활을 하는 서구인들이 정말 우리보다 건강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육식이 반드시 채식보다 나쁘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싼 값으로 쉽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무차별적인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도 없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소비자들에게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웰빙・천연・유기농・전통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식품첨가물을 사용한 가공식품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도 우리의 음식에 대한 관심을 왜곡시키고 있다. 자연에서 채취할 수 있는 천연 식품이 우리가 애써 재배하거나 사육해서 생산한 식품보다 반드시 뛰어나다는 보장은 없다.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채소의 문제도 충분히 알려져 있는 형편이다. 전통적으로 안전한 식품으로 알려진 달걀, 새우, 복숭아, 땅콩에 대해서도 심각한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소비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식품의 생산과 소비가 완전히 분리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가공식품에 대한 거부감은 합리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정부에서 최소한의 안전성을 검토한 식품첨가물을 무작정 적대시하는 자세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201411142227256145911uxd.png

음식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음식을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문화적 산물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음식의 생리적 기능이나 위해성에 대한 과도한 관심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음식의 재료. 조리 방법, 역사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이 더욱 강조되어야만 한다. 음식을 품격 있게 소비하는 식사 예절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음식이 우리 문화의 일부라는 사실이 더욱 강조되어야만 한다. ‘음식이 당신의 정체를 밝혀준다’는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샤바렝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18
  • 기사입력 2014년11월14일 22시2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04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