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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 이 시대에 왜 연극이 필요한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1월13일 20시2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40분

작성자

  • 박명성
  • 신시컴퍼니 대표,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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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 이 시대에 왜 연극이 필요한가?

사람들에게 ‘뮤지컬’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느냐고 물어보면 우선은 화려함을 떠올린다. 그렇다. 뮤지컬은 화려하다. 노래와 역동적인 춤, 오케스트라, 무대 메커니즘 등이 어우러지니 화려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대형 뮤지컬만은 못하지만 소극장 뮤지컬 역시 ‘아기자기한 화려함’이 있다. 

그런데 연극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사람들마다 표현하는 단어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 단어들의 공통분모는 ‘배고픔’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의 공통분모가 배고픔이라면 연극인의 공통분모는 가난한 생활이다. 그렇다고 연극인의 인생이 가난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다. 가난하고 미래가 불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극에 인생을 걸고 있는 연극인들이 많다. 때로는 탤런트나 영화배우로 성공한 사람들이 ‘고향 같은 곳’이라며 연극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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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을 연극에 머물게 하고 무엇이 그들을 연극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일까. 연극의 그 무엇이 힘든 생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용기와 도전정신을 솟구치게 만드는 것일까. 이런 것들이 연극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극인들마다 대답이 다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을 만드는 일 자체는 모험으로 가득 찬 재밌는 작업의 세계다. 늘 분주하고 정신이 없지만, 작업을 거듭할수록 우리의 부족함을 발견하지만 연극에는 즐거움이 넘쳐난다.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고, 좋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즐거움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만든 연극을 보여주는 ‘베푸는’ 즐거움이 있다. 

 

새로운 작품을 통해 배우와 스태프들 간에 새로운 인연이 생기는 즐거움도 있고 그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는 더 큰 인연의 즐거움도 있다. 더불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다. 이런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이 힘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즐거운 도전과 모험 정신으로 연극과의 행복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극을 하는 사람들만의 즐거움 만으로는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없다. 여기에는 관객의 즐거움도 있다. 어떤 시대이건 간에 부조리와 아픔이 있었고,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의 고통, 상처, 좌절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인생 자체는 고난이 아니지만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고난들이 우리 인생을 후려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좌절한 사람들, 상처 받은 사람들,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극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들의 정신을 보듬어 주고 마음을 다독여주는 정신적인 벗이 되어 왔다. 때로는 무대 공간이라는 포장을 통해 잘못된 사회, 권력의 모순을 강력하게 고발하기도 하고 통렬하게 풍자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 때문에 아픈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고 억울한 마음을 해소해주는 신문고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연극은 수많은 대중들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시대의 대변자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연극인들에게 연극의 매력이 ‘즐거움’이라면 관객에게는 감동을 통해 정신을 맑게 흔들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의 윤활유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은 마치 연극인들에게 영혼이라도 되는 것처럼 단 한 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정신적인 버팀목이자 그것을 향유하는 수많은 대중들의 마음의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 왔다. 

 

그래서 연극은 향유하는 모든 이에게 정신의 풍요로움, 즉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세금 없는 자산’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 자산이 값진 것이 되기 위해서는 잘 만들어진 연극, 감동이 있는 연극, 살아남는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그 자산이 진짜가 되는 것이다.

훌륭한 연극을 만드는 데는 정도가 없다. 문제의식 또한 한정될 필요가 없고 해답 또한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서 모든 연극이 똑같은 형식을 취할 필요 역시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선택과 집중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자유로운 연극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주제와 목적이 뚜렷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작품이 많이 나왔을 때 우리 연극은 비로소 영혼으로 가는 열쇠를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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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두에서 굳이 연극과 뮤지컬의 이미지를 대비시킨 것은 연극의 ‘날카로운 정신’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뮤지컬에는 연극에 있는 정신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뮤지컬도 연극의 한 장르이니만큼 그 정신이 존재한다. 다만 뮤지컬의 화려함에 눈에 팔려 그 화려함을 가능하게 하는, 그 밑바탕에 있는 정신이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화려함에 현혹된 사람, 날카로운 정신이 없는 사람은 훌륭한 연극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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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11월13일 20시24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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