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식의 포획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0월30일 18시3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29분

작성자

메타정보

  • 29

본문

인식의 포획

 사람의 인식과 믿음이 세상을 지배한다.

 

각 개인의 인식과 믿음은 행동을 좌우한다.  정치인은 표만 찾고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들의 인식과 믿음은 정책 수립과 집행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회 전체로 보면, 국민들, 특히 여론주도층의 인식과 믿음은 주요 정책들의 방향과 내용을 형성한다.

 

일찍이 Keynes(1936)가 통찰한대로, 정책 형성에 있어 사람의 인식과 사상은 매우 중요하다: “경제학자들과 정치사상가들의 아이디어들은, 아이디어가 옳든 그르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크다.  그야말로 세상은 아이디어들에 의해 지배된다.  자신은 어떤 지적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실용적인 사람들도 대개 어떤 사라진 경제학자의 노예인 것이다.”

 

 우리의 인식과 믿음은 타인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주류 경제학은 각 개인이 자신만의 고유한 일정 선호, 합리적 기대와 인식을 갖고 있다고 상정한다.  그러나 현실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심리학, 행동경제학 등의 연구가 보여주듯, 우리의 선호, 인식과 믿음은 ‘가변적’(malleable)이며, 인위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교육은 사람의 인식과 믿음,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제학 교육의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보면,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더 이기적이며, 덜 협력적이다.  공정성(fairness)의 인식도 일반인과 큰 격차가 있다.  Richard Thaler의 연구에 따르면, 폭설 뒤 눈삽(snow shovel) 가격을 올려 폭리를 얻는 것에 대해 일반인들은 82%가 불공정하다고 보지만, MBA 학생들은 24%만이 그렇게 생각한다.

 

경제학은 결코 사익만 추구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사익추구 원리로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을 설명할 뿐이다.  그런데도 사익추구 모형의 교육이 뜻하지 않게 경제학도들의 인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접하는 정보도 인식과 믿음을 형성시킨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 온갖 광고가 쏟아지고 있고, 북한정권이 대북전단 살포에 무력대응까지 하는 것이다. 

 

20141030183717y47w244014.png
 

왜 규제가 공익 보호와 증진에 실패하는가?

 

정부는 시장실패를 교정해 공공복리를 높인다는 목적으로 각종 규제정책을 도입・시행한다.  그러나 규제의 실제 성과에 대한 연구들은 흔히 규제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피규제자들의 이익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그리 되나?  규제가 이익집단의 이익과 인식에 “포획”(capture)되기 때문이다.  힘 있는 이익집단은 정치인들을 후원하여 규제정책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형성되게 한다.  이익집단의 이익과 시각을 반영한 규제가 공익 명분을 쓴 채 도입된다.  규제의 시행도 회전문(규제자가 피규제자들을 봐주고 퇴임 후 보상받는 관계)과 전관예우 관행 등으로 무뎌진다.

  

이 “규제의 포획”(regulatory capture)은 규제자가 피규제자들의 인식과 시각에 동화되는 이른바 “인식의 포획”(cognitive capture)에 의해서도 초래된다.  피규제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리, 분석, 자료, 정보 등을 끊임없이 생산해 규제자를 설득하며, 이를 통해 회전문과 무관한 규제자조차 피규제자들과 동일한 인식의 틀을 갖게 된다. 

 

201410301837399378244014.png
 

공익의 보호・증진을 위해서 정책적 지식・아이디어의 경쟁이 긴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익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이 맞게 정책이 형성되게 하고 정부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국민들, 특히 정치인, 언론인, 지식인, 법조인 등이 자신들과 같은 인식과 시각을 갖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이 일을 매우 성공적으로 해왔다.

 

재벌들은 전경련 등 관련기관과 소위 자유시장주의자들을 통해 시장경제 교육과 홍보를 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시장주의를 표방하지만 기실은 친재벌 인식과 사고를 확산시킨다.  이들은 정책 이슈들에 대해 재벌의 시각에 따른 각종 논리, 자료, 아이디어, 정보를 생산해 정책결정자들과 여론주도층에 공급한다.  특히 낙수효과 모델의 유효성, 재벌 소유지배구조의 효율성, 경제력집중 규제의 부당성 등을 부각한다.  재벌의 경제력은 언론보도와 논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이런 노력을 통해 결국 경제의 주축인 재벌들이 잘 나가게 하는 것이 국민들에게도 좋다는 인식을 형성・확산시켜왔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친재벌 인식과 사고에 대한 반론과 지적 경쟁은 미미하다.  이 불균형은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의 포획을 초래한다.  그래서 주요 경제정책을 둘러싼 논쟁과 대립에서 재벌들이 지는 경우는 드물다.  정치인, 관료, 언론인, 지식인들이 재벌들의 시각과 인식에 포획되어 이들이 원하는 바를 대변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장관들이 사법부 판단을 거친 재벌총수들의 사면 얘기를 하는 것이 그런 예가 아닌가?  

 

아담 스미스의 말대로, 경쟁은 우리의 후생과 자유를 증진해주는 힘이다.  지식・아이디어 시장에서 경쟁이 활발해야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잘 작동할 수 있다.  경제사회의 주요 문제와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인식, 연구, 논의 및 비판은 사회발전에 꼭 필요한 것이다.  다양한 지식과 정보, 견해와 사고가 제시될 때, 인식의 포획을 피할 수 있고, 공익에 부합하는 올바른 정책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재벌들이 지배하는 지식・아이디어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인식의 포획을 피할 수 있는지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29
  • 기사입력 2014년10월30일 18시3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29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