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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한 비전과 합의 가능한 항해도를 마련할 때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10월05일 23시2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53분

작성자

  • 이달곤
  • 前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前행정안전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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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원대한 비전과 합의 가능한 항해도를 마련할 때다.

한국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 관찰

 

 우리 사회의 현 상황에 대해서 극단적인 관찰이 공존한다. 한편에서는, 광복, 산업화, 민주화라는 단계를 밟아서 선진국 클럽에 들었다. 또 5,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국가군에서 20,000 달러 대 이상의 소득을 누리고 민주적 제도를 갖추고 있는 나라로는 세계 7 번째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권고도 덧붙인다.

반면에 경제 양극화, 승자독식의 구조, 설익은 민주화, 파편화된 사회, 복지기반의 취약 등등 앞날이 막연한 단면이 동시에 지적되고 있다. 전자가 거시적이라면, 후자는 좀 미시적이다. 그리고 전자는 북한에 대해서 내심 ‘흡수’라는 접근을 선호하고, 후자는 교류와 협력 그리고 평화주의라는 호의적인 접근을 주장한다.

이러한 진단은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보다 정교하게 더욱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나름 일리가 있는 면도 있다.

문제는 상당기간 두 견해가 수렴되어 입체적으로 온전한 그림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발전의 방향감이 퇴색되고, 복합 다층적 이익 다툼이 한국사회를 정체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더구나 정치적 파당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극단 대립적 진단 사이에서 적지 않은 사회성원이 길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극단적 대립 주장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보통 시민들은, 이기적인 원자(原子)로서 단기적 관점에서 가족의 안전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익추구와 집단이익주의는 더욱 성행하고, 의식 있는 시민들조차 구심력에 보탬을 주지 못하고, 대립하고 비관적이고 비판적이 된다. 21세기에 들어서 우리사회에 시민적 미덕(civic virtue)이 강화되고 있는 징조는 별로 없다. SNS와 미디어가 시민적 미덕을 조밀하게 직조하는데 기여하기 보다는 비방하고 희화화하여 조악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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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도 리더십도 실종된 우리 사회

이러한 상황에서 큰 길을 제시하는 리더도 보이지 않는다. 소위 리더라고 하는 분들도 CCTV에 나타난 불분명한 동작에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고 과장되게 전달되는 화면에 매달려 세월을 보내고 있지 않는가? 리더들의 세계에도 조그마한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자세가 팽배하여 있다. 그래서 큰 문제에는 접근도 못하고 핑계에 핑계를 덧붙이다보니 리더십은 누더기 상태이다. 특히 정치가 그렇다. 경제리더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빠짝 자태를 낮추어야 할 이유가 많은 정황이 있는가 보다.

최근 국가개조의 화두가 많은 사람의 가슴에 와 닿은 이유는 이 단계에서 한국사회가 갈 길을 제대로 만들어 보자는 기대가 국민 모두의 가슴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큰 그림과 공유하는 항해도가 필요하다. 보수와 진보를 아울러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복지와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선진화’라는 보자기를 들고 다니는 데는 어느 정도 합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선진화의 방향과 내용이다.

통일한국의 비전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어 왔지만, 이 단계에서는 좀 더 원대한 비전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통일에 대한 동북아의 여건이 상당히 긴밀하게 조성되고 있다는 점과 정치사회나 경제부문의 역량이 1990년대에 비하여 제법 견고하게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90년대 한국 사회의 비전을 탐색할 때에는 이탈리아가 저 앞에 있었다. 이제는 모자이크식의 좋은 본보기를 다양한 나라에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도 바로 앞에 있다고 결기를 부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분야는 완전히 우리의 손으로 창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비전이 전략과 동떨어져서는 실현성이 없다. 우리사회에서 항해도는 더 이상 불필요하고 의미 없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선진국에서 무슨 슬로건을 내걸고 기획을 하는 식의 접근을 하고 있느냐고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잘사는 사회에서는 정부 중심의 한 가지 기획이 다른 분야의 논의를 지배하지 않을 뿐, 다양한 사회 집단과 조직에서 경쟁적인 사회적 항해도를 작성하고 또 부단히 새로 업데이트(update)하곤 한다.

우리도 이제는 역전의 용사라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식민지의 질곡도 극복하고, 북침도 막아내고, 배고픔에서도 승리하고, 교육열에 데고, 민주화 제단(祭壇)에 피를 흘렸고, 지역마다 자치를 내세우고, 위성도 날리고, 환경과 녹색성장의 깃발을 높이고,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이제는 돕는 나라를 만들고, 꿈에도 북한 주민의 변화와 통일을 염원한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이해 조정을 소통하고, 전문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제도의 분화도 상당히 진척시켰다.

 

꼬고 틀고 찌르는 소통으론 비전과 전략 공유 못해

 

이러한 바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시민의 사회에 대한 공유된 충성심(shared civic allegiances)이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족주의적 민감성은 SNS 의 발달로 날이 섰지만 말이다. 진정한 사회적 성숙과 융화가 없이는 원대한 목표에 대한 성과 지향의 전략기획(strategic planning for results)이 어려워진다. 기업도 사회단체도, 대학도 언론도 야무진 소리를 하기 보다는 까뭉개는 매몰찬 소리만 하고 만다. 꼬고 틀고 찌르는 소통으로는 비전과 전략을 공유할 수 없고 에너지를 모을 수 없다. 그러면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의 이익을 공익에 앞세우려다 모두가 패망하는 공유재산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 우리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비극을 멈추려면 우선 지도층의 수범이 긴요하다. 지도층에 탈세가 있고, 혼외자식이 있고, 무 (無)국회 상황이 지속되고, 국가적 문제를 요리조리 피하고 있다면, 보통 시민의 행동은 물을 필요도 없다. 이제 지도층이 비전과 전략에 대한 숙의(deliberation)의 전범(典範)을 국민들 앞에 보여주어야 한다.

사회는 시민 인식의 변화와 경제기술의 혁신으로 전진한다.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위로부터의 의식과 분위기의 변화이다. 물론 본질적으로 변화는 시민사회 모두가 공감하여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입만을 바라보고, 정부의 구호를 복창하던 80년대식의 접근을 이제 통하지도 않고, 그 유효성이 떨어졌다. 민주화로 개인적 자유주의가 신장되어왔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물질주의적인 양상이 심화되면서 공공정신(public spirits)은 뒤로 밀려난 것이 분명하다. 젊을수록 이러한 추세를 더 강하다. 한 때 약해진 젊은이에게 ‘상처받는 인생을 치유하는 목사님의 힐링(healing)’을 흉내 낸 사람들이 인기인이 된 적도 있다. 이런 식의 나약함으로서는 원대한 원정을 떠날 수 없다. ‘반드시 밀물은 올 것이고 그 때 나는 내 배를 대양으로 띄울 것’이라는 의지의 한국인이 필요한 것이다. 고도(孤島)에서 창조적 연마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이 무더기로 어우러져 형상을 만드는 안개꽃의 설렘으로 사회가 부풀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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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충정의 습성’(habits of heart) 입증해야

위로부터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공공의 일에 임하는 충정의 습성(habits of heart)을 입증하여야 한다. 최근 몇몇 공공인사에서는 소위 지도층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충성할 심장의 습성을 기를 기본을 가지고 있었는가에 대한 실망을 범 사회화하였다. 한자리 나왔다고 너도 나도 달려드는 현상은 오늘날 한국의 선거민주주의 민낯을 들어 낸 것이다. 선거 잘하는 기술자나 언론 테크닉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공공가치와 정신(public value and mind)을 서로 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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