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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과 지록위마(指鹿爲馬)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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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9월17일 15시4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4시28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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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디플레이션’과 지록위마(指鹿爲馬)

디플레이션(deflation)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책당국은 물론 전문가의 여론도 동조하는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중앙일보가 최근 전문가 30명에게 긴급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60%인 18명이 ‘디플레이션 공포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6명은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고 다른 12명은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어떤 교수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2개월이나 물가안정목표(2.5%-3.5%)를 벗어나 1%대를 지속하는 상황은 ‘사실상 디플레이션’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디플레이션 논란을 일으킨 최경환 기재부 장관 생각과 같았다. 최경환 부총리의 속내는 다 드러나 보인다. 돈을 풀고 금리를 내려 물가를 좀 끌어 올리고 경제도 살리자는 예기다.  

 

<디플레라면 원인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생각에 대해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은 이거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디플레이션이라면 원인이 뭐냐는 거다. 원인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처방을 예기할 수는 없다. 디플레이션은 ‘지속적으로 물가가 하락하는 상태’다. 물가상승 속도가 떨어지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과는 다르다. 디플레이션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소비나 투자가 위축될 때 ‘수요위축→가격하락’의 고리가 형성된다. 좀 더 발전되면 저성장으로 인해 임금이 하락하고 이것이 소득감소를 가져와 다시 수요가 감소하는 ‘수요축소→가격하락→임금축소→소득축소→수요축소→가격하락’의 소용돌이가 반복해서 발생할 수 있다. 소위 ‘디플레-저성장 소용돌이(deflationary spiral)’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경우다. 또 다른 원인은 통화 공급의 축소 또는 통화사재기(hoarding)다. 금본위제도하에서 급격한 경화의 국외유출(혹은 사재기)이 일어나는 경우 디플레가 초래된 역사적 경우는 많다. 이외에도 드물기는 하지만 1870-1900의 미국처럼 생산성이나 경제효율성 증대(상품공급증가)로 가격이 떨어지면서 디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전통적인 가전제품이나 스마트 폰 가격이 떨어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류의 ‘마이크로-디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디플레이션은 나쁠 것이 없다. 우리나라 ‘디플레이션’이 ‘수요 감소’에 의해 일어났을까? 아니라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다. 당장 ‘소비자물가’를 ‘생산자물가’나 ‘원재료’물가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2013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3%이지만 생산자물가는 –1.6%이고 원재료물가는 –7.3%였다. 결국 최근의 물가안정세는 ‘소비수요 침체’가 아니라 ‘원자재가격’의 하락이 주도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런 물가하락은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서 어쩔 수 없는 외부적인 요인인 것이다. 따라서 디플레의 원인도 아닌 ‘통화공급’을 통해서 물가상승을 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해서도 안 되는 잘못된 것이다. 마치 1970,80년대 인플레가 원유가격의 상승이 주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통화긴축으로 대응한 정책실패를 정확히 거꾸로 반대방향으로 반복하는 셈이다. 오히려 수입관세를 올려서 원자재 수입가격을 올리는 것이 물가상승에는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그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디플레이션은 반드시 경기침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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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던지는 질문은 디플레이션은 반드시 경기침체냐는 거다. 일본 디플레이션은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 20여년 이상 계속되고 있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은 소비자물가가 연속적으로 ‘마이너스’상승률을 보였다. 일본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1992년부터 2003년 까지 11년 동안 한 해(1997년 0.7%)를 빼고는 11년 연속 ‘마이너스’였다. 이런 충격적인 디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1992년 이후 2013년 까지 21년 중 일본은행의 공식적인 ‘경기침체기’는 다섯 번(1991-93,1998-99,2001-02,2008-09,2011)에 불과하다. 그 기간도 다 합해서 4년(19%)이 채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디플레이션=경기침체(혹은 위기)‘라는 자동적인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디플레 원인이 따로 있고 경기침체의 원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디플레는 디플레 원인을 보고 잡아야 하고 경기침체는 경기침체의 원인을 보고 잡아야 하는 거다. 우리나라 경기침체의 진정한 원인은 국민의 실질소득 하락인데 그걸 금리를 낮추거나 통화 공급을 늘려 살리겠다는 생각은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학문적, 이론적 근거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기준금리를 몇%로 해야 디플레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세 번째 던지는 질문은 정부 말대로 만약 현 상황이 디플레고 경기침체라면 정부는 인플레가 몇 % 정도 되어야 디플레가 아니며, 그를 달성하기 위한 기준금리는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라는 거다. 소비자 물가가 지금의 1.3%에서 한 3% 정도이면 디플레가 아닌가. 그렇게 되려면 식료품비용이나 주택비용이나 교육비나 의료보건비용이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올라야 되는데 그러면 서민생활은 어떻게 될 것인가? 설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소비자물가를 1.3%에서 3%로 올리기 위해서 기준금리는 어느 정도면 된다는 말인가. 기준금리가 낮아진다고 물가가 오른다는 보장이 있다는 말인가? 2008년 기준금리는 5%였지만 지금은 2.25%로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계속 하락했다. 2011년 3.25%에서 1%나 내렸지만 소비자물가는 4.0%->2.2%->1.3%로 내려오지 않았는가. 일본은 디플레이션과 동시적 경기침체를 살리기 위해 1998년 이후 총 100조 엔에 달하는 공공사업을 시행했지만 디플레도 못 잡고 경기도 못 살리면서 재정적자만 늘리는 실패했다. 또 초저금리 상태를 몇 년째 지속하고 있지만 디플레이션과 경제활성화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디플레와 경기침체가 통화나 금리의 문제라기보다는 더 뿌리 깊은 구조적인 문제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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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올코트 프레싱 전략?>

경제부총리는 ‘경제 전반에 퍼져 있는 축 처진 분위기’를 반전시킬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며 "금기시된 재정적자 확대, 부동산 시장 정책을 과감하게 하지 않고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적극적 경기부양책 필요」를 강조했다. 한국은행 총재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한국이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명백하다. 지난 1992년 이후 20여 년 중 절반이 넘는 13년 동안 일본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 혹은 마이너스’였지만 한국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였던 적이 한 해도 없었다. 최근 2-3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2%대로 떨어진 디스인플레이션을 ‘물가안정’으로 평가할 것이지 디플레이션의 전조로 두려워할 것은 아닌 것 같다. 한국경제가 어렵긴 하지만 일본 형 경기침체라고 보기도 어렵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치는 경우는 1992년 이후 2013년 까지 17번 있었지만 한국은 IMF와 서브프라임 위기(1997년과 2009년)을 제외하면 1992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작년 한국 경제성장률(2.8%)도 1992년 이후 일본이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는 ‘고성장’에 속한다. 물론 서브-프라임 직후인 2009년 –5.5% 성장에 대한 반동으로 2010년 4.7% 성장을 제외하고 말이다. 경제정책이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것은 옳고 또 좋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이 아닌 것을 디플레이션이라고 하고, 경기침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경기침체라고 우길 것은 아니다. 나아가 일본의 정책경험에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이 불확실하고 책임지지도 못할 재정적자나 국가부채를 증대시키거나 부동산 과열을 초래할 정책을 남발하는 것은 더욱 조심할 일이다. 독감을 암이라고 진단하여 항암제를 과잉 투여하는 것이나 진(秦)나라 조고(趙高)가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는 것(指鹿爲馬)과 다를 바 없다. 좀 더 긴 안목을 갖고 냉철하면서 신중한 정책을 주문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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