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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막장드라마, 이제 그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09월11일 18시0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4시35분

작성자

  • 김상조
  •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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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KB 막장드라마, 이제 그만

 이런 막장드라마가 따로 없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다. KB사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신문지면에 자세한 기사가 나기도 했지만,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지난 줄거리를 요약하겠다.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라 바람 잘 날 없었던 KB금융그룹에 작년 7월 낙하산 CEO 두 명이 내려왔다.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 행장이다. 조폭의 대명사인 ‘마피아’ 앞에 출신 집단을 표시하는 접두사를 붙이는 요즘 신조어 기법에 따르면, 원조 격인 금융관료 출신의 ‘모피아’와 현 정부 들어 급부상한 연구원 출신의 ‘연피아’로 이루어진 환상의 복식조였다. 물론 세간의 관심은, 두 사람의 팀워크가 아니라, 연원이 다른 두 낙하산 중 어느 쪽이 더 센가를 겨루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올 4월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교체 건과 관련하여 갈등이 폭발하였다. 세간의 관심은 두 낙하산 뒤의 실세들 중 어느 쪽이 더 센가로 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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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각본 없는 드라마가 전개되었다. 이건호 행장이 금감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함으로써 이례적인 내부고발자가 되었고, 검사결과 발표 직전에 감사원이 감독당국의 관련 법령해석에 제동을 거는 이상한 일이 발생했고, 그럼에도 금감원은 두 CEO에 대한 중징계를 포함하여 사상최다 인원의 임직원들에게 제재조치를 사전 통보하였고, 두 달간 수차례의 회의 끝에 제재심의위원회는 두 CEO에 대한 제재수위를 경징계로 낮추어 금감원을 곤혹스럽게 했는데, 이건호 행장의 템플스테이 행사 이탈과 지주사 임원 형사고발이라는 막간 해프닝을 거쳐, 금감원장은 제재심의위원회 결정 번복이라는 전례 없는 용단을 내려 중징계를 결정하였고, 이건호 행장은 즉각 사임을 발표한 반면 임영록 회장은 명예회복을 외치며 사임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의 무협지 수준이다.

 

  그러나 현실은 심심풀이 땅콩 무협지가 아니다. 두 낙하산 CEO 간의 갈등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간을 죽일 수는 없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 최대 금융그룹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곤두박질 쳤다. 조속히 수습책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낙하산 CEO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KB금융만의 문제도 아닌 만큼, 유사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먼저, 이번 KB사태의 수습 방향과 관련해서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할 기본전제가 있다. 그것은 KB금융과 국민은행은 민간 영리기업이며, 따라서 당사자들 간의 시시비비 및 책임추궁과는 별개로, 회사와 주주의 관점에서 수습책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은 이미 CEO로서의 정당성을 잃었다. 금융위의 최종 제재수위가 어떻게 결정되든,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주주와 예금자와 임직원 등의 이해관계자들은 이들이 금융회사의 가치와 평판을 훼손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 좁디좁은 한국사회에서 임영록 회장 및 이건호 행장의 인품과 속사정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양 당사자들은 할 말도 많을 것이고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시시비비는 가려야 하고 응분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렇지만,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제재 절차와 사법 절차의 결과를 기다리라며 마냥 버티는 것은 금융회사 CEO로서 책임 있는 모습이 아니다. 주식회사의 내부통제장치와 의사결정구조가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 이르렀다면, 이미 CEO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금융회사의 신뢰는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KB금융과 국민은행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설사 양 당사자 중 어느 한 쪽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적인 판단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흐트러진 조직의 기강을 바로잡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날의 시시비비는 가리되, KB금융과 국민은행을 재건하는 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한다. 더구나 이건호 행장이 이미 사퇴한 마당에 임영록 회장 혼자 버틸 수는 없다. 조속히 사퇴해야 한다.

 

  한편, 설사 임영록 회장이 자진 사퇴한다고 하더라도, KB금융 사태가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태는, 경제적 동일체(economically one entity)라 할 수 있는 100% 완전 모자회사에 별개의 의사결정기구를 두는 우리나라 금융지주회사 제도의 근원적 결함에 더하여, 각기 연원이 다른 낙하산 CEO가 임명됨으로써 갈등을 폭발시킨 데 따른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인 없는 금융그룹’에 낙하산 인사가 되풀이된다면, 이러한 갈등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개선책은 금융지주사와 자은행의 이사회가 투명한 절차를 통해 낙하산 의혹이 없는 CEO를 선임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금감원의 제재 결정문을 보면,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 대한 문책경고(중징계)만이 아니라, ‘자체 감사결과를 이사회 안건으로 상정하지도 않고, 보고청취도 거부한’ 국민은행 이사들에 대한 주의 조치(경징계)도 포함되어 있고, 비록 명시적 제재조치가 따르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내부통제 임무를 방기한 KB금융 이사들에 대한 지적도 많이 나온다. 이사회는 문제해결 주체가 아니라 책임추궁 대상이다.

 

  이처럼 무능하고 무책임한 이사회로는 낙하산을 방지할 수 없다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낙하산 인사의 소지를 제거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CEO로서의 적극적 자격요건, 특히 ‘금융회사 경영에 필요한 전문적 능력과 경험’을 최소한의 자격요건으로 법령에 명시해야 한다. 현행 법령에는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소극적 자격요건(예컨대, 금치산자, 유죄판결을 받은 자 등)은 비교적 상세하게 열거되어 있으나, 금융회사 경영에 필요한 전문적 능력과 경험을 검증하는 적극적 자격요건에 대한 규정은 매우 허술하다. 이것이 관료⋅정치인⋅교수 나부랭이의 낙하산 CEO를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한다. 임직원 2만 명이 넘는 거대조직의 CEO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한, 이사회가 CEO 승계프로그램을 구축하여 사전에 CEO 후보군을 발굴⋅훈련⋅홍보하는 것도 낙하산 인사에 대한 견제장치가 될 수 있다. 현행 법령 내지 금융회사 내규에 따르면, 현 CEO의 임기 만료에 임박해서 또는 CEO가 갑작스레 유고된 이후에나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여 차기 CEO를 물색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것이 후보의 적극적 자격요건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낙하산을 불러오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CEO 승계프로그램의 구축⋅실행을 이사회의 상시적 업무로 법령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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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한편, 이번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은 제재심의위원회의 판단을 번복한 최초의 사례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에는 입법⋅행정⋅사법의 3권을 모두 부여하는 것이 모든 나라의 통례다. 물론 그 권한이 오남용될 소지를 줄이기 위한 통제장치를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자문기구로서 제재심의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도 그러한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KB사태와 관련하여 금감원이 많은 혼란을 자초하였고, 특히 금감원장이 제재심의위원회의 판단마저 번복함으로써 금감원의 제재 절차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감독당국의 제재권을 분리하여 별도의 (가칭)금융제재위원회를 신설하는 안도 제기되었으나, 이는 선진국의 관련 사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바람직한 개선 방안은,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제재권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재대상자의 항변권과 이의제기권을 충실히 보장하면서 금융감독당국의 판단 근거를 상세히 공개함으로써, 제재 절차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금융감독당국의 제재 의결서는 너무 허술하다. 이번 KB금융 사태와 같이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에서조차 위법행위의 구체적인 내용, 제재대상자의 항변 내용 및 이에 대한 감독당국의 판단 근거, 제재수위의 결정 기준 등을 확인하기 어려운데, 다른 일반적인 사건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에 (준)사법 기능인 제재권을 부여했다면 제재 절차도 그에 준해야 한다. 제재심의위원회의 회의록, 금감원의 제재 결정문, 금융위의 회의록 등을 법원 판결문에 준하는 수준으로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이에 대한 외부의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하고, 나아가 제재대상자의 행정소송이나 관련 피해자의 민사소송 절차에서 증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카이사르의 말이 나온다. “남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자는 언행에서 더 많은 자유를 제한 당한다.” 카이사르도 그러했거늘, 하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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