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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에 대한 이해: (1) 100년전의 양극화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08월20일 23시0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21분

작성자

  • 이경태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前 OECD 대사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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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양극화에 대한 이해: (1) 100년전의 양극화


< 80년대이후 절대빈곤의 감소와 양극화의 확대>
 198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전성기이었다. 대쳐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구현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경제관과 정책수단들이 장기간의 호황을 가져왔으며 광범위한 계층의 대중들에게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실제로 이 기간중에 약 10억명의 세계인구가 절대빈곤을 벗어났고 중국에서만 5억명이 절대궁핍에서 탈출한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그러나 장기호황의 그늘에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심화라는 부작용이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심화되어 왔다. 지니계수, 소득5분위비율, 중위소득, 상위 1% 또는 10%의 소득점유율등 분배불평등을 나타내는 모든 지수들이 악화되고 있는 현상이 추세적으로 정착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경제의 특징중의 하나이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양극화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IMF, 세계은행, OECD를 비롯한 국제경제기구에서도 양극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 원인분석과 해결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100년전에도 있었던 양극화>
오늘날의 양극화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고 100년전에도 있었다. 19세기말-20세기 초에 영국과 미국등 선발공업국가들에서 산업혁명의 경제성장과실이 소수 부유층에게 집중되었다.
  미국은 1862년 남북전쟁이후에 본격적인 공업화가 진행되어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하였다. 오늘날 중국을 세계의 공장이라고 일컫지만 당시 미국의 공업력은 훨씬 더 지배적이었으니 미국의 공장들은 세계생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철강업의 카네기, 석유업의 록펠러, 철도업의 밴드빌터, 금융업의 J.P.모건등 독과점적 대기업가가 탄생하고 막대한 부가 이들에게 집중되었다.
당시에는 노동자권리보호, 반독점법, 환경보호규제등이 빈약하였기 때문에 기업가들은 아무런 제약없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고삐풀린 자본은 정치권력과의 부패고리로 연결되어서 독점적시장지배력을 한층더 공고하게 구축하였다. 특히 19세기말 그랜트대통령때 정경유착이 극심하여 그랜티즘이란 용어까지 등장하였다.  
이 시대를 도금시대라고도 일컫는데 이는 마크트웨인의 동명소설에서 따온 것으로서 대부호들의 현란한 과시적 소비행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OECD 통계에 의하면 1928년 미국의 상위1%는 소득의 19.1%를 차지할 정도로 편중현상이 심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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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인즈는 저서인 “고용,이자율,화폐에 대한 일반이론(1935)”의 결론에서 당시의 양극화현상에 대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괄목할 만한 실패는 첫째, 완전고용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고 둘째, 부와 소득의 자의적이고 불공정한 분배이다.”

<100년전 양극화 해소를 위한 노력들>

o 소득세의 도입: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1894년 미국 연방의회는 소득세법을 제정하였는데 국민의 2%정도에게만 납세의무를 부과하는 부유세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1895년 대법원은 이를 위헌으로 판결하였기 때문에 1913 년에 가서야 수정헌법하에서 정식으로 실행되었다. 

 o1920년대 대기업들의 자발적 노력: 양극화의 심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 대기업들의 번영의 무대인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종업원의료보험도입, 연금도입, 구내식당과 의료시설설치등 자구 노력을 경주하였다.  

 o 시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1901-1909)의 소득불평등 완화정책

-이전에 제정되었으나 거의 사장되어있던 셔먼법을 강력히 시행하여 독과점적 트러스트의 해체를 시도하였다. 석유재벌 스탠다드오일의 해체를 위한 소송을 제기하여 그의 임기직후인 1911년에 해체판결이 내려졌다. 

-장시간노동금지, 아동 및 여성노동에 대한 규제강화, 산업재해보험도입등을 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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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미국 월가의 주가대폭락을 시발점으로 해서 발생한 대공황은 자본주의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으면서 대량실업사태를 야기하고 1939년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할 때 까지 완전히 회복되지 아니하였다.

-미국의 실업률은 25%에 도달하였고 국민소득이 절반으로 하락할 정도로 심각하였다

-프랭크린 루즈벨트대통령은                   

 * 글래스-스티걸법을 제정하여 은행의 투자업무를 금지하고

 * 노조결성과 단체협약 및 단체교섭권을 강화하고

 * 법인세기준세율을 24%에서 31%로 인상하고 초과이윤에 대해서는 최고 80%의 세율적용

 * 개인소득세의 누진세율을 강화하여 최고세율을 88%로 인상

 * 1944년 1월 연두교서에서 국민들에게 적절한 고용, 식량, 주거, 교육, 보건 등을 보장해 주고 부당한 독점경쟁없이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자유를 주기 위한 8개 항목의 국정의제를 발표. 정치적권리를 보장한 제1의 권리장전에 이어서 경제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제2의 권리장전으로 명명강화, 산업재해보험도입등을 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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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양극화가 주는 시사점>

o 100년전 양극화는 고삐풀린 자본주의의 자유경쟁의 결과 초래된 시장의 독과점화, 사회복지의 부재, 정경유착등이 그 원인이었다

 o 양극화를 시정해야 한다는 개혁주의자들은 양극화의 문제점으로서 다음을 지적

-사회통합과 연대를 약화시키고 갈등을 야기하며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훼손한다

-정경유착에 의한 민주주의의 훼손을 초래한다

-일반대중의 소비능력을 약화시켜서 경제불황을 초래한다  

 o 이에 대항해서 보수기득권층은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전개

-소득세등 정부개입은 개인의 정당한 노력에 의해서 획득한 부와 소득을 국가가 빼앗아 가는 것으로서 정당성이 없다

-국가의 비대화는 개인의 자율, 창의를 저해하고 자본축적을 약화시켜서 성장을 저해하여 결국 국민전체의 피해로 귀결된다

-정부개입은 사회주의로 가는 것이다

 o 영국과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선진국에서는 결국 개혁주의가 승리하여 20세기 초 이래 꾸준히 복지의 증대, 사회안전망의 강화, 누진소득세의 인상, 노동자권리보호강화등이 정치적투쟁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o 그 결과 서구에서는 사회민주주의이념아래 복지국가가 보편적으로 성립하였고 미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까지 복지가 확대되면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이루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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