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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왜 이러십니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08월19일 23시1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25분

작성자

  • 김상조
  •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

메타정보

  • 28

본문

대법원, 왜 이러십니까?

 

  


경제 관련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 소장 직을 13년째 맡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시민단체 영역에서 최장수 CEO가 아닐까 싶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운동과 법제도 개선 운동을 꽤나 오래 하다 보니 명색이 경제학 전공인 내가 법조문을 읊조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가당찮게 여기신 어느 법대 선배 교수께서 “김 교수, 법조문을 안다고 법을 아는 건 아냐.”라고 따끔하게 충고하신 적이 있다. 소중한 충고로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한번 배웠다고 어찌 바로 실천할 수 있겠는가. 오늘은 그 선배의 충고를 무시하고 법의 영역에 도전해보고자 한다. 더구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대법원의 권위에 도전해볼 터이다. 역시 무식한 게 용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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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4일 대법원은 경제개혁연대가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쉽게 말해서, 경제개혁연대가 패소했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2010년 3월경 언론보도를 통해, 2006년부터 3년간에 걸쳐 ‘국책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워주기 위해 삼성생명이 삼성경제연구소에 80억원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그 해 4월에 열린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는 삼성경제연구소를 부당지원한 혐의로 삼성생명의 해당 임원에 ‘주의적 경고’ 조치가 내려졌다. 

 

  문제는, 금감원의 제재심의 의결서로는 누가 어떤 내용의 불법⋅부당행위를 했고 어떤 근거로 그런 수위의 제재조치를 취했는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금융회사의 신뢰와 그 임직원의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제재 관련 정보공시에 대한 규제완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장감독기구인 공정위의 의결서는 비교적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결과 피해자가 공정위 의결서를 근거로 손해배상 소송 등의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금감원 의결서로는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두 시장감독기구의 업무에 무슨 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의결서의 내용이 이렇게 달라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금융소비자의 권익보다 피감 금융회사의 기득권을 먼저 생각하는 금융감독기구의 자세가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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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경제개혁연대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에 의거하여 금감원에 해당 제재와 관련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고, 익히 예상할 수 있듯이 금감원의 비공개 처분 결정이 내려졌으며, 또한 당연하게도 경제개혁연대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1심에서 ‘각하’ 판결을 받았다. 각하란 본안 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소송요건의 흠결 내지 부적법을 이유로 청구를 배척하는 걸 말한다. 이유인즉슨, 삼성생명 및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보공개법의 적용대상인 공공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누가 민간기업에게 청구를 했나? 삼성생명에 대한 종합검사 과정에서 금감원이 작성⋅보관하고 있는 정보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기가 막혔다.

  당연히 항소했다. 그리고 2심 법원은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즉 경제개혁연대가 청구한 정보 중 일부에 대해 공개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일부승소라 아쉽기는 하지만, 뭔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단초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최근 3심에서 다시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파기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금감원이 검사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공개하게 되면, 향후 피감 금융회사가 자료 제출을 기피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금감원의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말로 납득할 수 없다. 이런 논리라면, 감독기구가 보유한 피감기관에 대한 정보는 모두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고, 결국 정보공개법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행 법령에는 자료 제출에 비협조적인 피감기관장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징계요구를 할 수 있는 수단이 감독기구에 부여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근본적으로, 감독기구의 권위를 높이는 방법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기구가 자신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되,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 올바른 길 아닌가. 피감기관의 기회주의적 행동이 우려된다고 해서 감독기구를 커튼 뒤에 숨기는 것이 문제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정말로 답답하다. 

 

  둘째, 경제개혁연대가 청구한 정보 중에는 “삼성생명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관한 내용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어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의 기밀은 보호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언제나 논란이 되는 문제는 기업의 기밀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상충하는 두 법익을 비교형량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정부의 ‘국책 연구용역’을 공짜 내지는 헐값에 수행했고 그 비용을 삼성생명이 대납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삼성과 정부의 유착’ 의혹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가 그렇게 작은 법익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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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경제개혁연대는 정부를 상대로 다수의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기업의 기밀 보호 주장에 막혀서 패소할 가능성이 있는 정보는 미리미리 청구대상에서 다 뺄 정도의 노하우는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삼성생명의 영업기밀 보호가 삼성과 정부의 유착 의혹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보다 더 우선한다고 대법원이 판단했으니 할 말이 없다. 참고로 한 가지만 더 부연하면, 이 소송에는 피고인 금감원 이외에도 삼성생명이 피고보조참가인으로 들어와 변론을 주도했고, 대법원은 삼성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셈이 되었다. 삼성 관련 사건이 아니었으면 과연 똑같은 판결이 나왔을까 라는 의문을 갖는 게 나의 삐뚤어진 심성 때문일까?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인해 향후 정부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 청구가 위축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대법원은 ‘국민의 사법 불신’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성찰하기를 촉구한다.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경제학자가 떠들어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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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8월19일 23시1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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