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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역체제의 위기와 과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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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8월17일 23시3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5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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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무역체제의 위기와 과제

  가뜩이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표류하고 있던 WTO 도하라운드협상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 해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9차 통상장관회의에서 어렵게 도출해낸 작은 패키지 조차 이행이 어렵게 된 것이다. 발리 패키지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무역원활화협정에 대한 법적문서(Protocol) 채택이 최종합의 시간인 7월 31일 자정을 넘겨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인도가 자국이 주장해서 패키지에 포함시킨 농업안보를 위한 농산물 정부수매의 내용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무역원활화협정 법적문서 채택에 반대를 한 것이다. WTO에서는 소위 회원국 ‘합의(Consensus)’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한 나라라도 끝까지 반대하면 합의를 이루지 못하게 되어있다. ​

pakmx0c780.jpg   2001년에 출범해서 2004년에 타결하겠다던 도하라운드가 최종시한을 10년 가까이 넘겨가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가까스로 합의를 도출해 낸 발리 패키지마저 무산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번 무역원활화협정의 최종합의 실패가 도하라운드는 물론이고, WTO, 나아가 글로벌 무역체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종합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시기상 다소 이른 측면이 있지만 아마도 이번 합의실패의 파급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WTO에서 선진국과 신흥 거대개도국간의 마찰을 해결할 수 없다면 다자무역체제의 기본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현재 다자무역체제는 물론이고 글로벌 무역체제가 매우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향후 다자무역체가 최상은 아니더라도 현재 보다 더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리 잡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가 안정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역원활화협정에 대한 법적문서 채택이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도와 미국 등 주요국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무역원활화협정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경제효과를 감안해 조기에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시켜야 할 것이다. 

두 번째 과제는 남아 있는 도하라운드 이슈들에 대한 work program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미 무역원활화협정관련 법적문서 채택이 실패하면서 work program 작업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남아 있는 도하라운드 이슈들이 결코 적지 않음을 고려할 때 WTO 회원국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솔직하게 현실적인 출구전략을 구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도하라운드의 향방에 대해 근본적인 논의를 더 이상 늦출 수가 없다. 이를 위해 WTO 주요국들(30국내외)로 구성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필요하다면 특별위원회 참여국 통상장관 회의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파스칼 라미 사무총장이 개최한 비공식 소규모 통상장관회의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소규모 통상장관회의에서 도하라운드 출구전략에 대한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추후 정식 통상장관회의를 통해 회원국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2015년 말에 개최되는 제10차 WTO 통상장관회담에서는 도하라운드에 대해 어떤 식으로도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 무역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지역주의 움직임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움직임이 WTO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어 가속화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WTO가 이러한 지역주의 움직임을 중지시킬 수도 없다. 이제 지역주의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들 두 체제는 앞으로도 공존할 수밖에 없으며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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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다수 국가들이 함께 참여하는 소위 거대지역무역협정(Mega RTAs)이 여러 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이들 중에서는 TPP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주요 참여국인 미국과 일본간 협상이 난항 겪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어쨌든 글로벌 무역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TPP가 높은 수준의 자유화에 합의하고 새로운 통상이슈에 대한 규범을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글로벌 가치사슬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무역-투자-서비스-지재권을 함께 다루는 높은 수준의 개방과 모범적인 규범이 만들어진다면 더 바람직할 것이다. TPP가 다자체제와 보완적인 역할을 하려면 출범 후  회원국을 개방해서 다른 국가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성장잠재력이 큰 동아시아 국가들이 TPP에 추가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RCEP은 지난 2012년 11월 출범했으나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RCEP 참가국 중 경제적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중일 3국간 FTA협상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RCEP은 2015년 말을 목표로 협상을 하고 있으나 시한 내 협상이 마무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RCEP은 장기적으로 아태지역의 통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RCEP이 수준 높은 RTA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RCEP참여국들이 추진하는 양자간 또는 복수 국가간 FTA도 가능한 한 수준 높고 포괄적인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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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EU가 협상하고 있는 TTIP는 최종 타결될 경우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큰 RTA가 될 것이다. 미국과 EU의 무역자유화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TTIP은 무역장벽 제거보다는 규범수렴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러한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의미가 클 뿐 아니라 추후에 다자체제가 배울 수 있는 측면도 있어 합의 결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EU와 같이 거대선진국간에 얼마만큼 규범수렵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위에서 살펴본 모든 Mega-RTA들도 아직까지 성공적으로 타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글로벌 무역체제는 당분간 불확실성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다자체제와 지역주의체제는 공존하면서 각자의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Mega- RTA들이 궁극적으로 다자체제를 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WTO와 Mega-RTA추진 주요국간의 정보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WTO의 ‘RTA위원회’의 역할이 강화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아마도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다자무역체제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고 그로 인해 글로벌 무역환경이 매우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에 대해 정치지도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 하겠다. 협상대표나 통상장관들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결정을 이끌어낼 수 없다. 무역이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정치지도자들이 무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개최되는 G20 정상회담과 APEC정상회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상들이 글로벌 무역체제의 강화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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