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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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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7월06일 21시2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16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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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과 반대로, ‘가는 말이 험해야 오는 말이 곱다’는 제목의 논문이 눈길을 끌었다. 평소 정치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좋은 논문을 많이 써 오신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의 논문이었다. 대립의 언어보다 화합의 언어를 써야 한다고 지금까지 주장해 왔던 나는 이 논문을 더욱 열심히 읽어보았다. 평소에 내가 해 왔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되짚어 보기 위해서였다.

    □ 예의바른 표현은 약해 보인다? 언어를 통한 권력의 표현
언어는 권력관계의 표현 중 하나다. 한국처럼 ‘너’와 ‘당신’을 구분하는 문화에서는 특히 권력에 따라 알맞은 언어표현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험한 말을 사용하는 것이 기선을 제압하는 데 효과가 있는 상황이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가 났을 때 일단 먼저 큰 소리로 남 탓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또 욕쟁이 할머니의 욕을 들으면 왠지 그 할머니가 해 주는 음식에는 권위가 배어 있어 더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상대가 험한 말을 내뱉는데도 이쪽에서 예의바른 표현으로 응대하면 이쪽이 무력해 보일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고운 말 사용 의지가 약화되기도 한다. 무력해 보이면 상대에게 쉽게 당한다는 인식도 여기서 나온다.
험한 말을 사용하는 전략은 유대성이 약하고 의사소통 역할이 모호한 조건에서 특히 많이 발생한다. 이 교수의 정리에 따르면, “①서로 잘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향후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 사이에서, ②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긴급하게 대처해야 하는 갈등 사안이 제기되고, ③그 사안을 다루는 데 적합한 의사소통 규범이 확인되지 않은 조건에서” 동원된다. 험한 말하기 전략은 “상대방에게 예절을 지킬 수 없거나, 지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예절을 지켜 말해봐야 ‘당한다’는 인식을 갖는 사람들”이 선택한다.
사회의 기본적인 보상 체계가 약자보다 강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을 때 특히 이런 험한 말하기 전략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약자의 입장에서는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에, 험한 말을 해서라도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 이런 전략을 사용하게 된다. 즉, 고운 말에 대한 긍정적 보상을 받지 못한 경험이 누적되어 험한 말하기 전략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험한 말하기는 강자를 추앙하는 성취지향 문화에서 특히 나타나기 쉽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는 생각, 험한 말을 하지 않으면 당하게 될 거라는 불신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다.
   
​□ 발전적 나선과 퇴보적 나선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원리 중 하나는 상호성이다. 거의 자동적으로 상대가 하는 방식대로 반응이 나온다. 상대가 속삭이면 나도 속삭이게 되고, 상대가 큰 소리를 내면 나도 큰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은 계속 이어지면서 이전의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는 나선형의 특성을 지닌다. 상대가 긍정적 표현을 하면 이쪽에서도 긍정적 표현을 조금 더 강하게 하고, 상대가 부정적 표현을 하면 이쪽에서도 부정적 표현을 조금 더 강하게 하며 지속된다. 그 과정에서 ‘발전적 나선’이나 ‘퇴보적 나선’ 중 하나를 따르게 된다. 관계가 점점 더 좋아지거나 악화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흔히 결혼을 앞둔 연인들은 각자의 친구들로부터 ‘평생 고생하지 않으려면 결혼 초반에 기선을 제압하라’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신혼부부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서로 상대방을 제압하려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십중팔구 퇴보적 나선을 따라 마음의 상처가 점점 더 커진 채 결국은 이혼하게 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반대로, ‘상대에게 조금만 더 잘 해 주기’ 전략을 택하면 어떻게 될까? 상대가 1만큼 잘 해 주니 나는 2만큼 더 잘 해 주게 되고, 그러니까 상대는 또 나에게 3만큼 더 잘 해 주게 되는 발전적 나선을 따라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다. 결국 처음에 고운 말을 쓰며 약간의 양보를 시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다시 보지 않을 사람처럼? 겉보기의 순종과 마음으로부터의 감동
다시 보지 않을 사람에게는 덜 너그러워진다. 일단 그 상황에서 자기 이익을 최대한 챙기려는 심리만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속적인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먼저 끊어주는 사람이 처음에는 약해 보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현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소통해야 할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험한 말로 얻은 권력은 일시적인 겉보기의 순종(compliance)은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나 마음으로부터 수긍하는 설득(persuasion)이 되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마음으로부터 존경하여 따르는 내재화된 감동은 더욱 어렵다.
만약 우리 사회가 험한 말을 해야만 고운 말이 돌아오는 사회라면, 이것은 우리 사회의 어딘가에 문제가 있으니 그 문제를 찾아 고쳐야 한다는 신호다. 문제가 있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계속 험한 말을 한다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험한 말을 하게 될 것이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지배’를 위한 권력보다는 ‘배려’를 위한 권력이 바람직하다. 권력 없는 사람보다 권력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기 때문에, 그 권력을 지배에 활용하기보다 배려에 활용할 때 함께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
 
□ 장기적 관계에서는 고운 말이 승리한다
험한 말과 고운 말, 이 차이가 정치커뮤니케이션과 인간커뮤니케이션의 차이일 수 있으나, 정치도 인간이 하는 것이고 인간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따라서 크게 보아 궁극적으로는 고운 말이 험한 말을 이길 것이라 생각된다. 험한 말도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힘은 한정된 상황에서 한정된 대상에게만 유효하며, 무엇보다 ‘마음’을 얻기 힘들다.
심지어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도 험한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최대한 애써야 한다. 상대에게 상처를 남기고 나면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울 때도 ‘상대의 벨트 아래 공격하지 않기’라는 커뮤니케이션 규칙이 있다.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은 공격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당장은 손해인 것 같지만 길게 보아 이익인 경우가 많다. 모두가 이익을 보려고, 모두가 권력을 더 가지려고, 모두가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아귀다툼을 하다 보면 모두가 멸하고 만다.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권력보다는 멀리 보는 안목과 전체를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을 추구할 때, 장기적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에 진정한 이익과 진정한 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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