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장경제 바로 세우기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06월30일 23시1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18분

작성자

메타정보

  • 45

본문

시장경제 바로 세우기
이 블로그에 대하여
​​
경제민주화는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화두였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의 상징 인물인 김종인 박사를 앞세워 이 이슈를 선점하고 논의를 지배했다. 보수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후보의 원칙주의 이미지는 변화의 메시지에 힘을 실었다. 국민은 박근혜 후보를 선택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은 경제민주화를 강하게 반대했다. 전경련은 이를 재벌 때리기로 간주했고, 재벌이 후원하는 보수논객들은 결과적 평등을 내세운 정치적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다. 재벌 연구기관들과 소위 자유시장주의자들은 공약 사항을 반박하는 주장을 쏟아냈다. 이들은 ‘경제민주화 vs. 경제활성화’라는 대립 프레임을 만들고, 경제민주화가 투자와 경영을 위축시켜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고 위협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경제민주화는 좌초했다. 
 
나는 자유시장경제의 효능을 믿는 경제학자다. 나에게 경제민주화는 우리의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는 것이고, 이런 뜻에서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 개발에 참여했다. 이 경험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더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본 블로그를 통해 나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비판과 반론을 되짚어 보고, 시장경제 바로 세우기의 과제와 방안을 살펴보려 한다.

시장경제는 법·제도의 진공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capitalist market economy)를 하고 있다. 각자가 자신의 재량과 선택에 따라 거래하고 이 거래를 통해 자원이 배분·활용되는 것이 시장경제다.
우리 모두는 항상 부족한 정보를 갖고 거래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우리 대부분은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이다. 탐욕과 기회주의는 아담 스미스가 말한 이기심, 즉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사회의 부와 타인의 후생을 파괴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탐욕을 통제하는 법·제도가 없다면, 기만, 사기, 협박, 착취 등 온갖 파괴적 행위가 난무하며, 시장은 작동하지 못한다. 그런데 시장에서의 가격결정과 자원배분을 설명하고 그 효율성을 논증해주는 경제학 모형들은 이미 이런 법·제도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즉, 이 모형들은 탐욕과 기회주의가 없는 세계, 타인이 원하는 것을 줌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이기심의 세계, 모든 거래가 아무런 문제와 갈등 없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가상의 이상 세계를 다룬 것이다.
 
현실 세계가 이런 경제학 모형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무엇보다도 현실 세계에서는 우리 스스로가 거래를 뒷받침하고 행위를 규율할 법·제도를 갖춰야 한다. 현대 경제에서 이런 규칙과 규율은 정치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결국, 모든 경제활동은 이렇게 형성된 법·제도 위에서 이뤄진다. 당연히, 우리가 어떤 법·제도를 갖고 있고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따라 시장이 작동하는 양상과 효율성이 달라진다.
 
시장경제를 바로 세워 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더 공정하게,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
 
세계의 역사는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이 많은 부를 창출해 사람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을 확인해준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이란 규칙과 규율이 없는 시장, 자유방임의 시장이 결코 아니다. 규칙과 규율이 없으면 시장은 작동할 수 없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균등한 경제활동의 장’(level playing field)이다. 아제모글루(D. Acemoglu)와 로빈슨(J.A. Robinson)은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라는 저서에서 균등한 경제활동의 장을 제공하는 포용적 경제시스템이 번영의 관건임을 역설하고 있다.
 
시장은 스스로 경쟁적이 되지 않으며, 자연적으로 균등한 기회의 장이 되지도 않는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을 만드는 것, 균등한 경제활동의 장을 조성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이 일을 방치하면, 시장은 쉽게 독점화되며, 경제권력의 힘이 정치에 작용하면 정실 자본주의가 생겨난다.
 
불행히도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기울어진 운동장’(tilted playing ground)이 되어 있다. 사회 전반에 소위 갑을 관계가 퍼져 있고, 돈과 권력의 남용으로 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법·제도의 미비로 경제적 약자들의 기회와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도 많다. 삼백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법·제도가 탐욕의 통제에 얼마나 무력한지, 얼마나 심각한 기능부전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드러냈다. 기업도, 시장도, 정부도 기본적인 안전을 국민에게 제공해주지 못했다. 이보다 더한 비효율과 불공정이 있는가?
우리 경제사회의 법·제도와 관행에는 많은 결함이 있다. 이를 시정하고 시장경제를 바로 세운다면, 우리 경제를 더 효율적으로, 더 공정하게, 더 역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 출발점은 탐욕과 기회주의의 효과적 통제이다.
 
시장의 장점은 효율성이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를 비판하는 소위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이 실제로 이 장점을 실현하도록 법·제도적 기반과 여건을 조성하는 데는 무관심하다. 이들은 정부만 빠지면 시장은 스스로 효율적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친재벌을 친시장이라고 착각하고, 친재벌 정책을 친시장 정책인 양 주장한다. 이들은 거래관계가 공정해야 효율성도 달성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이들은 시장 내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견제와 균형이 있어야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문제와 결함에 대한 자기교정능력이 있는 사회만이 지속 성장을 할 수 있다. 저성장, 양극화, 성장 사다리 붕괴 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의 구조적 문제들을 외면하거나, 현상 유지 또는 자유방임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시장주의가 아니라 기득권의 지대추구행위일 뿐이다. ​
45
  • 기사입력 2014년06월30일 23시1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18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