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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에서 나와야 산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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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6월29일 18시36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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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에서 나와야 산다.
2014년 5월 현재 전국 인구는 약5천1백여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그 인구가지금 여러 개의 공화국에 나누어 따로따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지난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87년헌법 개정 이후 최초로 과반수를 넘어 51.6%을 얻어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취임 1년간 한때 국정지지율이 크게 치솟아 역대 전직들의 기록을압도하는 듯하였고,윤창중 추문으로 한때 주춤하던 지지도가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었다.
4월 16일 세월호는 수학여행길에 오른 다수 학생들과 함께 국민의 대정부 지지감정을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시켰다. 사건 사고 없는 시절 있었던가? 추후 원인 규명 결과로 사고 발생 인과관계의 긴 꼬리가 역대 정부치하의 적폐와 연결되어 있다고 판명된다 해도, 그래서 집권 1년 남직한 현 정부가 다소 억울한 느낌이 있다 해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예전 봉건시대에도 강수량과 같은 자연현상 변화로 결정되는 농사의 풍흉을 제왕들에게 책임을 돌리던 전통이 있었다. 행운의 여신의 미소나 찌푸림이 정부 치적의 중요결정요인이라는 사실은 현대 일류선진국에서도 유효하다. 2005년 8월 태풍 카트리나는 당시 미국대통령 조지W부쉬의 인기를 급락시켰고, 2014년 5월 쓰나미는 일본 집권세력의 회전문 돌이를 가속시켰다.
문제의 침몰사고가 당장 정치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세월가면 적당한 원근법에 따라 다시 자리잡을 것이다. 여객선 사고 이외에 따로 정권차원에 문제는 없는가? 현 정부의 문제를 요약하면 수사학은 가시적이나 전략이 비가시적이라는 점이다.
전략이란 무엇인가? 정부가 해야 할 국정과제들 하나 하나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A과제가 B, C, D 등 다른 과제보다 중요하다고 선택한다면, 그러한 선택의 득실 논리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얻어내는 것이 국정운영의 기본이다.
이런 관점에 서면 현 정부가 소홀히 하거나 미숙한 구석들이 엿보인다. 우선, 자원(시간•인간•물질 등)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이 느슨하다.  무한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천상낙원은 없다. 우선순위는 곧 가용자원이 제약되었다는 것, 좁게 말해서 예산제약(budget constraints)을 말한다. 박정부가 표방하는 기본덕목은 약속 지키기 공약실현이다. 가상한 일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다. 주어진 5년 임기 내 그 방대한 공약사항들을 어찌 다 해낼 수 있는가? 최근에 박정부의 예산제약 의식이 강화되어간다는 조짐들이 보여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공약사항 중에서 버릴 것, 차기 정부로 미루고 넘길 것을 철저히 챙겨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의 수사학(rhetoric)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지옥행군 같았던 선거운동기간 중 ‘경제 민주화’란 구호가 먹혀들었다. 어리숙한 국민에게 솔깃한 이 구호는 상대후보의 입 속 말을 먼저 뱉어내게 만든 공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개념을 곱씹어보면 애매모호하기도 하고 시장경제원리와 모순되기도 한다. 굳이 이해하자면 자유경쟁시장의 정글 속 같은 다툼에 패퇴하는 경쟁패자들도 승자와 더불어 승부의 공정성에 승복하게끔 경기의 공정성을 지키고 소외계층을 포용해줌으로써 사회결속력을 지탱하고 국가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각종 배려를 제도화하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체모그루(D.Acemoglu) 등이 말하는 ‘포용적’(inclusive) 정치경제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조경제’라는 말도 정부가 유행시킨 말이다. 국민의 창의성을 과학기술에 접목해서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경제운영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취지는 나무랄 수 없다. 그냥 ‘경제 활성화 계획’이라 해도 될 것을 굳이 ‘新경제계획’이라 고집하던 YS정부가 생각나게 만든다. 그 정부의 사후평가는 어찌되었나? ‘창조’를 하려면 경제주체가 주체적으로 거듭된 실수(trial and error)를 통해서라도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잘라 말하면 사람이 유연하게 생각 할 수 있어야 창의성이 발휘된다.
그러나 요즘 정부기관들의 회의진행양식을 보면 ‘창의’의 그림자를 보기 어렵다. 주재자가 준비자료를 낭독하고 참가자들이 일제히 필기하기 바쁘다. BBC, CNN 어느 방송을 보아도 일류민주주의국가치고 이런 나라는 없다. 딱 한 후진독재국가가 있다. 구태어 언급할 가치도 없는 나라말이다. 서로 토론하고 그 장면을 조명•홍보하라!
셋째, 다수의 상이한 이해집단들이 서로 어울려 경쟁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상호견제를 통해 균형을 찾아 나아가는 공동체를 국가라 한다. 광복 이후 분단된 반도 남쪽에서는 정치사회적으로 동서 양 지역이 대결 국면을 연출해오고 있지만, 최근 영국의 스코틀랜드나, 스페인의 까딸루니아처럼 분리독립운동이 없어 다행이다. 종교적으로는 국민 각자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각종 교계를 이루고 있다. 경제이익집단들도 각각 경총, 노총을 결성해 결사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이후 종교왕국의 실체가 들어나고 있다. 국가의 법 질서를 우롱하고 있다는 점은 전교조, 강성노조도 동일하다.
최근 KBS 노조는, 새로운 왕국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국민의 눈에는 정부 권력기관들은 물론 국회도 철옹성의 왕국들인 셈이다. 전관예우수혜집단도 예외가 아니다. 특정한 단체집단 속에서 끼리끼리 당연시되는 행태일지라도 국민의 공정성 의식에 위배되고 공동체 질서를 교란하면 비판, 시정되어야 한다. 박정부 출범 이후 일층 가시화된 이 문제에 어떠한 해결복안이 있는가? 여당 내부에서도 대통령의 영이 서지 않고 있지 아니한가?  
넷째, 역사의식의 결핍은 역대 정권의 공통된 질환이었고 박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박정부의 장점은 국가안보, 외교 등 일정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임기 5년은 곧 지나간다. 역사의 흐름에서 박정부가 현재 왜 집권하고 있어야 하는지, 당위성을 자문해 본 적이 있는가? 지정학적으로 주변국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외교 안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백 번 잘하는 일이다. 그러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경제의 장기전망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출산율 저하, 고령화로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설비투자부진도 장기화되고 새로운 성장동력 발견도 부진해 성장잠재력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구매력 평가기준으로 이미 1인당 GDP 3만 달러가 넘어섰지만 4만 달러 이상 수준으로 지속 상승하리라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아마도 박정부 시대가 지나고 경제 성장의 고원(高原)지대를 잠시 지나고 나면 경제규모가 하산 경사를 타고 미끄러질 전망이다. 정부의 3년 계획 발표 이후 이미 시간이 흘렀다. 잘 실행되고 있는가? 미래준비가 소홀히 되고 있지 아니한가?
다섯째, 지난 6.4선거 때 세종시에서 여권이 패배했다. 관피아를 다스리려다 그들의 불신임을 받은 것이다. 관료가 주인, 집권자가 과객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복지부동하고 시간을 때우고 있다. 개혁 대상의 손을 빌어야 개혁작업이 진행된다는 어려움이 있다. 미우나 고우나 정책은 그들 손으로 집행된다. 그들을 구슬러야 한다.
마지막으로 심리적 벙커(bunker)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많고 많은 SNS 유언비어는 무시하더라도, 대중매체들이 남발하는 보도들이 심한 공해(公害) 수준이다. 공정을 기하려면 좌파는 물론 과도한 우파 보도도 경계해야 한다. 미확인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 주변 비선조직의 문제가 자주 거론되더니 최근에는 아주 까놓고 세사람 이름글자 삼음절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필자는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비선조직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한다고 본다. 비선은 어느 시대 어느 정부나 존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비선이 문제라면 누가 뭐라해도 존재감 있는 비서실장이 필요할 듯싶다.
문제의 핵심은 비선을 필요로 하는 심리, 즉 벙커심리에 있다. 주위가 적이거나 비우호세력으로 포위되어 있다는 상황인식, 그래서 신뢰할 수 있고 만만한 소수만이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 거세 보이는 낯선 사람들은 멀리하고 싶은 생각이 자신을 벙커 속으로 몰아넣는다. 벙커에서 뛰쳐나와야 본인도 살고 나라도 산다. 아버지 박대통령은 야당의 거물 박순천 여사와도 대화하고, 학계의 거두 박종홍 교수도 설득•포섭했다. 대통령은 카리스마가 있고, 특히 레이저 광선이 주변 사람을 압도 한다는 게 중평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 얻는 게 많다. 사람들 특히 반대편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그 특유의 레이저 광선, 친절 어린 미소의 광선으로 상대의 마음을 녹여 자기편으로 이끌어 들여야 한다. 벙커심리는 아측도 적으로 내몬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벙커는 좁아지고 탈출이 어려워진다. 예컨대 B급 배우출신 레이건 대통령은 유머감각이 뛰어났고, 설득의 귀재여서 성공할 수 있었다. 밖으로 뛰쳐나와 대화의 정치를 펼쳐 국민을 안도시켜라. 이리저리 나뉘어진 국가공동체의 부분부분을 봉합수술하기에 나서는 큰 정치를 국민이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용기 있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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