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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방선거, 한국정치의 선 자리와 갈 길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4년06월08일 09시3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24분

작성자

  • 김호기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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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6대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선거 이후 1년 7개월 만에 치러진 전국 단위의 선거였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제5대 지방선거 투표율(54.5%)보다 2.3% 높은 56.8%를 기록했다. 제18대 대선 투표율 75.8%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2012년에 치러진 제19대 총선 투표율 54.2%보다는 높았다. 사전투표제를 실시하고, 세월호 참사로 선거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선거 결과에 대해 여권의 입장에선 안도의 한숨을, 야권의 입장에선 안타까운 탄식을 내쉬었을 것이다.

선거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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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과정을 돌아보면, 6·4지방선거에는 두 분기점이 존재했다. 첫째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에 대한 국민 다수의 불신을 강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유리한 정치적 국면을 조성했다. 둘째는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다. 대통령의 눈물은 보수적 유권자의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표를 결집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법을 쓴다면 새정치연합의 성적표는 초라했을 것이다. 선거 결과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룬 것은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정부를 심판해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참사로 인해 조용한 선거를 치룰 수밖에 없었다 하더라도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심판의 의지를 행동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책 의제를 제시했어야 했다. 지난 2012년 대선의 최종 득표율에서 나타난 3.6%의 차이를 넘어서기 위해선 2010년 지방선거의 무상 급식처럼 능동적 의제 선점이 요구됐음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은 이 과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더없이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인천을 탈환하고 경기와 부산을 지켰다고 해서 새누리당이 잘 한 것도 없었다. 선거 막바지에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메시지에 보수적 유권자들이 결집한 게 유효했던 것이지 정책대안의 적극적 제시로 성과를 일궈낸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지켜주십시오’라는 선거 구호는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을지 몰라도 과반수 의석을 가진 집권 여당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슬로건이었다. 새정치연합과 10% 이상의 격차를 유지해온 정당 지지율을 고려하면, 새누리당은 유권자들로부터 엄중한 경고장을 받은 셈이다. 부산·경기·인천의 선거 결과는 우리 사회 보수 세력의 지반이 그렇게 견고하지만은 않다는 반증 사례로 볼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교육감 선거 결과다. 전국 17곳 중 13곳에서 진보적 교육감이 당선된 것은 세월호 참사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선 보수 후보의 난립과 진보 후보의 단일화가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가만히 있으라’는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교육, 입시경쟁과 스펙 쌓기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생명·안전·인간적 가치를 중시하는 교육으로 나아가겠다는 유권자들의 의지가 진보적 교육감을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진보정치의 몰락도 또 하나의 주목할 결과다. 1999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한 이래 진보정치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빈번한 이합집산, 이석기의원 사태 등 최근 진보정치가 보여준 모습을 돌아보면, 시민적 시각에서 진보정치를 지지해야 할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다. 근본적인 자기 성찰과 혁신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진보정치는 앞으로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6·4지방선거 결과는 지난 대선 결과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세월호 참사가 위기의 야권을 어느 정도 소생시켜주긴 했지만, 대전·충청·강원의 중부권을 제외하고 전체 구도에는 사실 큰 변화가 없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경유하면서 우리 정치지형이 상당히 구조화돼 있다는 것을 이번 지방선거는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지역 투표와 세대 투표가 결합하고, 이 두 경향을 견고히 하는 이념 투표가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한국적 정치 균열(political cleavage)이 이번 선거에도 그대로 반복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사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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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갖는 의미는 정부와 정당으로 이뤄진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민심을 반영한다는 데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은 정부와 여당에 준엄한 경고를, 야당에 엄중한 질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결코 작지 않았던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새정치연합이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신뢰를 안겨줬다고 보기도 어렵다. 바로 이점에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번 선거 결과를 ‘절묘한 황금 분할’ 또는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등 현상적 차원에서만 해석하고 위안을 구해선 안된다. 

 

6·4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 치러진 첫 번째 정치적 시험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적지 않은 국민들은 4월 16일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1997년의 ‘경제발전 위기’에 비견할 수 있는 ‘사회통합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정치에 부여한 과제는 정치의 중심에 권력이 아니라 국민이 놓여 있음을 자각하고, 안전·생명·인간적 가치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경제·사회발전 패러다임을 재편하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새롭게 일궈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의 본질은 대립과 통합에 있다. 어느 나라이건 이익과 가치를 둘러싼 사회갈등은 정치적 대립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정치사회는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생산적으로 조정하여 국민 다수가 승인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통합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제 7월 말 재보궐 선거가 기다리고 있지만, 2016년 총선까지 당분간 전국 단위의 선거는 없다. 6·4지방선거 이후 새롭게 펼쳐질 정치적 경쟁에서 누가 더 설득력 높은 경제·사회발전 패러다임과 이에 상응하는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이게 바로 국민 다수가 염원하는 ‘새정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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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6월08일 09시3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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