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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보수도 모두 틀렸다 (1)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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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4년06월07일 09시4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6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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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보수도 모두 틀렸다." 양 진영이 보이는 한심한 모습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통쾌한 문구다. 이 말은 졸저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의 뒤표지에 있는 광고성 문구이다. 출판사 편집자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말이다.

(다음에 계속)

  이 책에서 나는 우리 교육의 핵심 문제를 ‘학교의 무능’이라 규정하고 이 문제의 해결에 필요한 11개의 정책을 제시했었다. 그리고 이들 정책에 대해 설명할 때 어떤 정책은 보수 세력이 반대하고, 다른 어떤 정책은 진보 진영이 반대할 것이란 얘기를 했었다.

 

  이러한 내용 등으로부터 편집자는 "진보도 보수도 모두 틀렸다"는 문구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 문구만을 보면 보수와 진보는 모두 교육발전의 걸림돌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책의 내용으로부터 “보수도 진보도 모두 옳다”라는 문구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보수와 진보는 모두 교육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세력이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안에 따라 적절하게 협력한다면 우리 교육은 크게 좋아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 진영은 협력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도 협력하지 않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과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싸고 벌어진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화 된 2012년 즈음, 이명박 정부와 교육부(당시의 교육과학기술부)는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을 엄하게 하는 방향으로 학교폭력 방지방안을 내놓았다. 이때 진보 진영은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을 했다.

 

  예컨대 진보적 성향의 언론은 이명박 정부의 대응책에 대해 비판적 글을 적지 않게 실었다. 학교폭력의 근본 원인이 입시경쟁교육 등에 있으므로 학교폭력을 없애려면 그러한 문제들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담은 글들이 주류였다. 진보의 판단에 의하면 입시경쟁교육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학교폭력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문제였다. 진보적 성향의 사람이라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들의 상당수는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대책을 미봉책에 불과하거나 잘못된 정책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주장이 틀린 것만은 아니겠지만 당시 학생과 학부모가 절실히 요구한 것은 지금당장 필요한 실천적 방안이었다. 입시경쟁교육을 없애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방안이라면 도대체 그 입시경쟁교육이란 것은 어떻게 없앨 것인가?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입시경쟁교육 문제는 보수건 진보건 그 어떤 세력이 집권을 해도 그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진보적 사람들은 보수정권이 일부러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심지어는 일부러 입시경쟁교육을 조장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입시교육문제는 진보정권이라 얘기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아니 해결의 조짐마저도 보이지 못한 문제였다.

 

  입시경쟁교육 등을 학교폭력의 근본원인으로 제시하고 그 문제가 해결돼야 학교폭력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상 학교폭력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주장에 불과했다.   학교폭력에 대한 엄중하게 대처하고 가해학생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책은 전체적으로는 타당한 정책이었다.

 

  왜 그런가? 논거를 제시하려면 이제까지의 우리나라 학교규율체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 학생들의 일탈 행위를 아래 3개 사항으로 단순화하여 살펴보자.

(가) 머리 (머리카락을 학교규정보다 길게 기르는 행위)

(나) 흡연 (담배를 피우는 행위)

(다)  폭력 (폭행, 갈취, 왕따 등의 학교폭력 행위)

 

어느 행위가 더 큰 잘못인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가)는 사소한 것이고, (나)는 중간 정도 잘못된 것이고, (다)는 크게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할 것이다.

 

  (가) ‘머리’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뿐더러, 학생 자신에게도 손해가 전혀 되지 않는 행위이다. 머리가 긴 것(사실은 아주 짧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은 그야말로 남에게 눈곱만큼의 피해도 주지 않는다. 학생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아가는 순간 아무런 문제될 게 없는 행위다.

  (나) ‘흡연’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학생 자신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행위이다. 흡연은 담배 연기만 조심하면 남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다. 물론 학생 자신의 건강에는 나쁜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담배 피는 행위 또한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순간 별 문제될 게 없는 행위다.

  (다) ‘폭력’은 남에게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주는 행위이다. 이것은 사실상 학교에서 일어나는  범죄행위이다. 이런 일을 학생이 사회에서 저지르면 구속이 되어 교도소에 갈 수도 있는 행위이다.

 

(가)와 (나)에 비해 (다)가 매우 나쁜 행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얼마나 더 나쁜 행위일까? 단순히 조금 더 나쁜 행위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다. (가)와 (나)에 비해 (다)는 수십 수백 배, 어쩌면 수천 배는 더 나쁜 행위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변화되고 있긴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학생의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 학교(그리고 교육청, 교육부 등)는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학교폭력이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 (나) (다)의 행위는 학교 사회에서 특별히 다른 행위로 인식되지 않아왔다. 때때로 (가) (나)에 비해 (다)를 더 큰 일탈 행위로 인식했다할지라도 그 정도가 크지는 않았다. 선진국의 학교와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그 정도가 터무니없이 미약했다.

 

  그런데다 학교규율 부분에 투여되는 학교(교사)의 에너지 중 대부분이 (가)와 (나) 같은 일에, 특히  (가)와 같은 성질의 일에 투여됐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얘기하는 학교규율과 관련된 내용은 주로 머리카락을 규정대로 자르고, 복장을 규정대로 갖추라는 종류의 것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말을 수십 수백 번 들어 지긋지긋해질 동안 학교폭력이 얼마나 잘못된 행위인가에 대한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학교와 지역에 따라 그 편차가 있었겠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학교의 대략적인 모습이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학교규율체계는 한마디로 엉터리였다. 

 

  나는 오랜 동안 지속된 이 엉터리 학교규율체계가 학생들에게 어떤 ‘잘못된 신호’를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학생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것이 대단히 큰 잘못이 아니라는, 기껏해야 머리카락을 길게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 정도의 사소한 잘못에 불과하다는 ‘왜곡된 신호’를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수십 가지가 넘을 것이다. 하지만 엉터리 학교규율체계로 인해 학생들에게 전달된 ‘잘못된 신호’ 또한 아주 중요한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이 잘못된 신호를 바로잡으려면 엉터리 학교규율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가)머리 (나)흡연의 행위에 비해 (다)폭력의 행위에 더 큰 벌을 내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보수 진영이 주도하여 내놓은 학교폭력 대응책은 타당한 것이다. 세부적 차원에서 보면 여러 잘못이 있었겠지만 그 기본 방향의 타당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아무튼 그것은 왜곡된 학교규율체계를, 아주 조금에 불과하지만, 어느 정도는 바로잡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학교폭력에 대해 보수 세력에겐 큰 잘못이나 책임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수십 년 간 계속된 엉터리 학교규율체계를 만들고 유지해온 주된 책임은 보수에게 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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