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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에 침투한 스파이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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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12월13일 21시0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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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에 침투한 스파이들

 

 

 미 중앙정보국 CIA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만든 보고서에 <간단한 방해공작 매뉴얼>이 있다. 적대국에 침투한 CIA스파이들이 적에게 적발되지 않으면서 적대국 조직을 효과적으로 망칠 수 있는 행동지침들을 담고 있다. 최근 비밀문서에서 해제되어 그 내용이 언론에 보도 되었는데, 그 내용이 스파이만이 할 수 있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도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라 오히려 의미심장하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이미 결정된 사항을 다시 끄집어내 의문을 제기한다. 좀 더 고민해보자며 일을 위원회로 넘기는데 가급적 많은 사람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논의를 길어지게 한다. 서류 양식을 채우라고 하면 글씨를 불명확하게 쓰거나 일부러 한두 항목을 빠뜨려 동료를 속 터지게 한다.  

 

주위 사람들의 원망을 좀 듣긴 하겠지만, 확실히 적발 가능성이 거의 없는 행동들이다. 물론 좀 더 교활한 것도 있다. ‘모든 규정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적용하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조직의 효율성을 크게 떨어뜨리면서 상관에게 아주 성실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내용이 보도된 기사(조선일보 2015.11.13.)를 읽으며 어떤 진실 하나를 깨달았다. 그래,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구나! 원인을 찾느라 이리저리 머리 굴릴 일이 아니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교육이 이 지경으로 망가진 것은 모두 교육계에 침투한 스파이들 때문이었다. 

 

스파이들은 우리 교육계의 모든 부분에 침투해있다. 학교와 교육청도 예외가 아니지만 특히 교육부에 많이 침투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교육이 살아나려면 이 스파이들을 색출해 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 교육계에 침투한 스파이들은 CAI스파이들보다 훨씬 더 교활하다. 그들은 단순히 적발 가능성이 적은 행동을 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교육을 망치는 정책을 교육을 살리는 정책인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한다. 

 

그들이 우리교육을 망가뜨리려는 목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정책은 적어도 수백 가지다. 그 하나하나를 따로따로 보면 사소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 법이다. 하나하나는 사소할 수 있지만 그 사소한 것들 수백 개가 동시에 작동하면 우리교육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하나하나를 모두 얘기해야 스파이의 존재를 온전히 증명할 수 있지만 사정상 하나의 예를 통해 스파이들이 어떻게 우리교육을 망치는지 살펴보겠다. 승진가산점 정책 중의 하나인 학교폭력 관련 승진가산점 정책을 예로 들어 볼까 한다. 학교폭력이 나의 담당업무라 그 실상을 깊이 들여다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파이들의 공작 행태를 잘 드러내는 사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스파이들이 추진하는 정책이지만 교육청의 스파이를 통해 학교에 내려 온 공문에 의하면 이 정책의 추진 목적은 ‘학교폭력 예방 및 해결 등을 위하여 노력한 교원에게 승진가산점을 부여하여 학교폭력 근절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원의 사기를 진작’하는 것이다. 

 

스파이들은 참으로 교활하다. 얼마나 그럴듯한 논리인가?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일에 공헌을 한 교사들에게 승진점수를 주면, 교사들이 승진점수를 받기 위해 경쟁하듯 학교폭력을 없애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 이로 인해 학교폭력이 현저히 줄게 될 것이다.” 독자들께서도 홀딱 속아 넘어갈 만한 논리 아닌가?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 이 논리는 완전히 엉터리다. 현실의 세계는 목욕탕과 다르다. 목욕탕의 물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로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지만 목욕탕 밖의 물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일곱 색깔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하늘의 무지개조차도 막상 색깔 별로 구분하려면 그 경계가 애매하다. 하물며 학교폭력에 대한 교사의 공헌도를 무슨 수로 분별해 낸단 말인가? 교장과 교사들이 정작 해야 할 중요한 일인 학생교육을 제쳐놓고 이 일에만 매달려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관념의 세계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그것은 학교교육을 망치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첫째, 학교에 행정적 업무를 늘려 교사의 에너지를 소모케 한다. 

예를 하나 들자면 ‘가산점 대상자 선정위원회’를 조직하여 운영하는 것부터가 상당한 업무다. 선정위원회는 학교운영위원, 학부모, 교사들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는데 규정대로 구성하여 운영하려면 이 자체가 상당한 에너지를 요한다. 규정대로 위원회를 만들고 성실하게 운영하려 하면 할수록 학교조직은 이로 인해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그것은 스파이들이 처 놓은 덫에 제대로 걸려드는 짓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에 침투한 스파이가 노린 것이 바로 그것이고 학교에 침투한 스파이가 노리는 것 또한 그것이다. 그리고 성실하게 운영했다고 해서 어떤 긍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생활하는 교사조차도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누가 승진가산점을 받아야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데 학교운영위원과 학부모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승진가산점을 받고자하는 사람이 제출한 ‘자기 실적자료 보고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히 살펴보아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일의 성격이 애초에 그렇기 때문이다. 공들여서 만들고 힘들게 운영해봤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없으니 일선 학교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성 자체를 느끼기 어렵다. 결국 학교에 존재하는 ‘가산점 대상자 선정위원회’는 사실상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위원회일 가능성이 크다. 많은 학교가 그러할 것이다. 물론 위원회를 제대로 만들어 성실하게 운영하는 학교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학교는 교장이 스파이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앞에서 언급한 CIA의 스파이 행동지침 중 하나가 무엇이었는가? 규정 하나하나를 엄격히 따져가면서 그대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학교는 교장과 생활지도부장이 스파이가 아니라서 이와 관련해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는 않았다. 이 글을 교육청과 교육부의 스파이가 읽고 우리학교에 감사를 파견할까 염려된다.) 

 

둘째, 교원의 승진과정을 저차원적으로 만든다. 

다른 대부분의 승진가산점 정책과 마찬가지로 이것 또한 교사의 실질적인 교육활동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다. 승진가산점을 받는 데에는 학교폭력문제의 해결에 실질적인 공헌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기 실적자료 보고서’ 하나만 그럴듯하게 만들면 충분하다. 어떤 학교에서는 객관적 기준을 만든다고 미리 형식화된 일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래봤자 화장실 순찰 등과 같은 단순한 일이다. 이런 승진게임에서는 교육에 대한 열정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로지 승진에 대한 욕망만이 중요할 뿐이다. 교육청과 교육부의 스파이들은 그 동안에도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사람보다는 승진 그 자체에 대한 욕망만이 큰 사람에게 현저히 유리한 승진제도를 운영해 왔는데 학교폭력 승진가산점 정책 또한 그 중의 하나인 것이다. 참으로 우리교육을 망치는 교활한 방법이다. 

 

셋째, 교사의 영혼을 속물화하고 교사문화를 타락시킨다. 

교사도 인간인 이상 눈앞의 이익에 무조건 초연할 수는 없다. 교사를 분발시키기 위해 필요한 경우엔 당근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로 인한 이익이 손해를 넘어서는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 이익(교사의 분발)에 비해 손해(영혼의 속물화와 문화의 타락)가 더 큰 경우에는 당근을 제시하면 안 된다. 학교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온 정성을 다했던 현장교사로서 하는 말인데, 학교폭력 승진가산점 정책은 학교폭력 문제의 해결에 눈곱만큼의 도움도 주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며 알아보니 승진가산점으로 인해 교사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학교가 적지 않았다. 교사의 영혼을 속물화시키고 교사문화를 타락시켜 교사들로 하여금 승진가산점을 둘러싸고 싸움을 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스파이들이 노린 궁극의 목적일 것이다.  

 

교육계에 침투한 스파이들은 교활하다. 그들은 교육을 위한 것처럼 보이는 위장된 정책들을 통해 교육을 망가뜨린다. 우리의 교육개혁은 이들 스파이들이 만든 정책들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내가 얘기한 승진가산점 정책 하나 없어진다고 해서 우리교육에 어떤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것 하나의 영향은 미미하다. 그러나 나는 스파이들이 만든 수백 개의 정책 중 단 하나만을 얘기했을 뿐이다. 만약 우리가 스파이들이 만든 수백 개의 정책을 전부 없애 버릴 수 있다면? 그땐 우리교육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스파이들이 만들어 놓은 수백 개의 정책을 전부 없애버리면 그들은 할 일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놀고먹으며 급여를 받게 되는데, 설령 그렇게 되어도 그것은 우리교육에 바람직한 일이다. 스파이 놈들이 놀고먹으면서 국민의 세금을 축낼 생각을 하면 누구나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교육을 위해 그 정도는 참아주자고 국민들께 간절하게 호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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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7시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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