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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중용을 지향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9월18일 18시3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59분

작성자

  • 이원덕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메타정보

  • 32

본문

 그래도 나는 중용을 지향한다

 

 나는 중용(中庸)을 지향한다. 이념에서도, 정책에서도. 중용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소리 내어 외치지 않는다. 그리고 진영을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중용을 추구하는 사람은 수적으로 많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진영 간의 다툼은 사회적 인프라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들은 중용의 지혜를 구하기보다 진영 간 경쟁과 논쟁을 더 흥미롭게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가 그리 단순할까? 하나의 원리에 기초하여 유지되고 발전한 사회가 세상에 어디 있었단 말인가? 한 시대가 이념이나 정책에서 지나치게 한쪽에 치우쳤다면, 그 시대의 뒤에는 반드시 이와 상반되는 이념과 정책이 사회를 지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 이념과 정책의 교대를 통해 사회는 중용을 복원해 왔다. 어느 사회든 경쟁적 이념과 정책 중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중용의 복원력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회마다 그 사회 구성원의 역량에 따라 복원력의 강약에 차이가 있고, 복원력이 축적되어 기존의 이념과 질서를 대체하는 기간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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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물지만 때로는 이념과 정책에서 한쪽으로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고 중용의 지혜를 실현시킨 시대도 있었다. 예를 들어 조선의 세종대왕과 청의 강희제 치세는 중용의 지혜가 빛을 발한 시대라 일컬어진다.

 가까이로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예로 들 수 있다. 클린턴의 국정철학은 본인의 회고록 ‘나의 생애(My Life)’에서 밝혔듯이  ‘양자택일’이 아니라 ‘둘 다 선택’이다. 그는 민주당 출신의 대통령이었지만 공화당의 가치와 정책도 미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미국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과감히 정책으로 채택하였다. 이러한 중용의 정책 지혜가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몇 년을 미국 역사상 국민의 삶이 가장 풍요로운 시기로 평가받게 하였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보수와 진보는 ‘성장이냐, 분배냐’ ‘시장이냐, 정부냐’ ‘보편 복지냐, 선별 복지냐’를 둘러싸고 양자택일 식으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싸웠다. 마치 하나만이 정답이고 나머지는 틀린 것처럼.

 이런 갈등 때문에 벌써부터 2017년 대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다음 대선에서 진영 간 대치가 지난 대선보다 더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보이기 때문에, 그리고 대선 후 패배한 진영의 불복심리도 어느 때보다도 강해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나라의 발전을 위한 국민 에너지의 결집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하므로.

 우리는 이 비관적 전망이 미래 현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우리 사회는 정치 진영 간 갈등이외에도 이념, 계층, 지역, 세대, 노사, 환경 갈등 등 다양한 갈등이 분출하고 있다. 압축 성장 시대가 지나고 바야흐로 압축갈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정도는 OECD 국가 중에서 종교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 다음으로 가장 심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압축갈등은 엄청난 비용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갈등의 경제적 손실은 매년 GDP의 7~21%로 82조~246조원에 이른다고 추계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공사라 일컬어지는 4대강 사업의 공사비가 20조원임을 감안하면 갈등으로 인한 비용부담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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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할까? 중용을 국정의 중심 가치로 확립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중용을 지향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보다 크게 울리게 해야 하지 않을까? 중용은 철학적으로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용은 단순히 대립되는 두 정책의 중간, 즉 중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중용은 중도를 택하기도 하지만, 국가발전과 국민의 삶 향상에 기여하는 정책이라면 때로는 진보정책을, 때로는 보수정책을 선택한다.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정책결합을 모색한다.

 중용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한다. 이념과 이론을 가벼이 여기지 않되 이를 교조화하지 않는다. 오늘날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屈起)의 원동력은 교조적 공산주의 이념을 과감히 버리고 실사구시적 정책을 택한 등소평의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등소평의 정책은 중용의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용은 시대흐름을 중시한다. 중용은 예로부터 시중(時中)이라 하였다. 시중은 시대흐름, 시대정신, 시대가치와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시대흐름과 동떨어져서는 중용적일 수 없다. 즉 중용에 바탕을 둔 정책은 시대 원리를 통찰하고 이 시대에 효과적인 정책이어야 한다.

 중용은 인본(人本)에 바탕을 둔다. 인본은 사람의 존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더 나아가 인본주의 전략은 사람의 꿈과 열정, 그리고 역량에서 국가·지역·기업 발전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을 찾는다. 따라서 중용주의자는 사람중심 발전전략을 추구한다.

 이제 우리도 중용의 지혜가 든든한 사회의 중심축이 되게 하면 어떨까? 좌와 우를 널뛰기하여 사후적으로 얻어지는 중도가 아니라, 중용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그런 시대를 열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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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9월18일 18시3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19시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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