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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선거, 그리고 표현의 자유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9월16일 18시2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20시12분

작성자

  •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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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민주주의와 선거, 그리고 표현의 자유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그래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고도 일컬어진다. 민주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주권자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과정이 바로 선거이기 때문에, 선거는 축제처럼 자유롭고 성스럽게 치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운동 기간 중에 선거 후보자들에 대한 국민의 생각과 의견은 최대한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인 국민들도 자유로운 표현행위를 통해 얻어진 후보자 개인에 대한 정보들을 취사선택하여 제대로 된 대표를 뽑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헌법재판소는 여러 결정들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로 강조해오고 있다. 

 

민주주의와 선거, 그리고 표현의 자유

나아가 헌재는 표현의 자유 보장과 관련해 ‘사전억제금지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왔다. 어떤 표현이 유포된 이후 표현행위에 문제가 있어 사후적으로 이를 규제하는 것은 합헌의 여지가 있지만, 표현의 유포 이전에 사전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은 강한 위헌의 추정을 받아 위헌이라는 것이다. 헌재가 표현행위에 대한 사전 검열이나 허가에 대해 일관되게 위헌결정을 내려온 것이 그 예이다. 헌재는 또한 지난 2012년 8월 23일 인터넷상의 본인확인제에 대한 위헌결정을 통해 표현의 자유 중 ‘익명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이정표적 결정을 내린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특히 이러한 인터넷 공간에서는 표현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표현행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익명표현의 자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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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상의 실명확인제가 합헌?

 필자는 지난 7월 30일에 내려진 헌재의 공직선거법상 실명확인제 합헌결정이 헌재 스스로가 세운 ‘사전억제금지원칙’의 일관된 보장과 인터넷상의 ‘익명표현의 자유’ 보장의 전통을 깨버린 결정이라는데 주목한다. 공직선거법 제82조의6은 선거운동기간 동안에 언론사 홈페이지에 후보자나 정당 관련 글을 올리려면 실명인증 절차를 거치게 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직선거법상의 실명확인제에 대해 다음 커뮤니케이션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13년 다음 커뮤니케이션이 18대 대선기간 중에 실명확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과태료 1천만원을 부과받자 이번 결정이 난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헌재에서 합헌 5대 위헌 4로 합헌결정이 내려졌다.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 것으로 봐서 재판관들도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위헌결정이 나려면 단순 과반인 5인이 아니라 가중된 다수인 6인의 위헌입장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위헌결정에 2표가 모자라 합헌결정이 나온 경우이다. 다른 사회적 현안들에 묻혀 언론에서 별로 크게 다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결정은 국회에 의한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앞으로 선거운동 현장에서 표현의 자유나 선거운동의 자유에 큰 영향을 미칠 결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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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합헌결정의 근거와 문제점들

 합헌입장은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주된 근거로 삼아 합헌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 중에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 등을 통해 흑색선전이나 허위사실 유포가 있을 경우 언론사를 통한 광범위하고 신속한 정보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규제가 공정한 선거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실명인증 기간을 선거운동 기간 중으로 한정했다든지, 인터넷 이용자가 실명확인을 받고 정보를 게시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든지, 실명확인 후에도 게시자의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고 다만 ‘실명인증’이라는 표시만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은 아니라고 보았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이기에 선거운동기간 동안은 오히려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필요성이 크다. 그러나 헌재는 이 결정을 통해 거꾸로 선거기간 동안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더 크게 규제하는 것을 용인했고, 가깝게는 10월 28일에 치러질 재보궐선거의 선거운동기간에도 선거와 관련해 인터넷 언론사의 게시판에 글을 쓰려면 실명확인을 거쳐야 하게 됐다. 반대의견에서도 지적되었듯이,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보아 사후적으로 게시물 표현자의 신원 확인이 가능하고 이들을 명예훼손죄나 공직선거법상의 후보자 비방죄로 사후에 처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전적 규제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린 것은 ‘사전억제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보아도 문제가 많다. 

 결정의 시점도 아쉽다. 공직선거법상의 실명확인 조항 폐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 조항의 삭제를 포함한 공직선거법 개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였다. 국회 스스로가 이 사안을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도록 헌재가 결정을 미루고 기다려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헌재의 반대의견이 우려했듯이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의 해외 사이트로의 도피가 줄을 이을 지도 모른다. 표현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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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9월16일 18시2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20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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