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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과 협치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9월06일 20시1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20시45분

작성자

  • 김낙회
  • 서강대 초빙교수, 前제일기획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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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과 협치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영국은 독일 잠수함 U보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이었다. 전함 수백 척이 U보트가 쏜 어뢰에 침몰하면서 대서양 보급로가 완전히 끊긴 것이다. 그런데 감쪽같이 전세가 역전됐다. 영국이 비밀리에 세운 특수조직 ‘블레츨리 파크’가 독일군 암호 대부분을 해독하는 데 성공한 덕분이었다. 이것을 해독해낸 것은 블레츨리 파크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연산 컴퓨터 ‘콜로서스’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암호 해독을 위해 블레츨리에 모인 사람들 수가 무려 1000여 명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직업과 학문적 배경은 그야말로 다양했다. 과학자, 기술자는 물론이고 체스 챔피언, 낱말 맞추기 전문가, 대기업이나 백화점 간부까지 참여했다. 전공도 수학, 이집트학, 고전, 역사, 현대 언어학 등으로 천차만별이었다. 

블레츨리 파크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집단지성의 힘이었다. 만약 블레츨리 파크가 배경이 엇비슷한 암호 해독의 천재들로만 구성됐다면 이와 같은 성과가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양한 배경과 지식을 가진 이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본 덕분에 서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위대한 지식보다 힘 모은 여러 지식이 각광받는 시대다. 그것이 통섭이다. 

 

 

R&D를 넘어 C&D의 시대로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무수히 많은 데이터가 넘쳐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통찰력을 뽑아내기는 버거운 빅 데이터 시대가 도래 했다. 고도로 분업화된 시스템 때문에 더 이상 혼자서는 무언가를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상기후, 환경오염, 식량문제 등 전 세계적 공동 이슈가 발생하면서 이제 경쟁을 넘어 협업이 더 중요한 시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한 명의 천재보다 집단지성이 중요해졌다. 다수의 개인지성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을 통해 얻게 된 지적 능력의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 즉 집단지성은 단순한 개인지성의 합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능력이다.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콜라보레이션(colaboration)도 결국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이 협업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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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회사들이 R&D(Research and Development) 즉 ‘연구개발’에 집중하던 것에서 지금은 C&D(Connect and Development) 즉 외부와 결합해서 더욱 뛰어난 제품을 개발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C&D를 재발명이라고까지 했다. 이제는 가능한 많은 뇌의 결합이 보다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시대인 것이다. 

할리데이비슨 면도기를 아시는가? 면도기로 유명한 질레트가 오토바이로 유명한 할리데이비슨의 디자인을 적용해 만든 면도기다.‘질레트 퓨전 바이크 팬텀’ 이라는 이 제품은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엔진 진동 느낌을 가질수 있는 미세진동 시스템이라고 한다. 면도기와 오토바이가 남자들의 필연과 로망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하나의 스토리로 만나 것이다.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인 GM은 GPS와 이동통신이 결합된 플랫폼 ‘온스타(OnStar)’를 제공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기아자동차와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개발 및 보급을 위한 포괄적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빌 포드 회장은 자동차 기술 연구소를 다른 곳이 아닌 IT 업계의 심장 실리콘밸리에 새로 열면서 이렇게 토로했다. “지난 100년간 포드는 스스로 혁신을 창출했지만, 앞으로는 포드 자체만의 독자적 혁신 창출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통섭이다. 

 

모든 만남 앞에서 주저하지 마라

과거에는 자기 제품에 들어가는 하나부터 열까지를 기업 자체 기술로 만들어내는 것이 진보의 상징이고 자랑이었다. 하지만 소비자의 기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지고 기술의 발전 속도가 무한대로 빨라지면서 더 이상 한 기업의 내부 역량만으로는 시장을 주도하기 버거운 세상이 되면서 기업 간의 합주(合奏)는 시장 지배력의 조건을 넘어 기업 생존의 조건이 되어 가는 듯하다. 

이러한 ‘이종 간의 합주’는 사실 요즘 기업만의 화두는 아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세상은 서로 다른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고, 결합하고,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로 만들어낸 사람들이 주도해왔다. 그런 태도와 역량을 가진 문화는 흥했고, 그렇지 않은 문화는 쇠퇴했다. 다만 지금 시대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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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물질적인 것 뿐이랴.  정치도 마찬가지다. 요즘 경기도를 중심으로 지방 자치 단체에서 불고 있는 거버넌스 바람이 신선하다.  민과 관 그리고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해 관계 주체 들이 참여하고 협력하여 함께 다스리는 정치 모델을 협치(協治)라고 한다. 승자 독식을 깨고 행정과 의정에서 여야가 파트너 쉽을 가지고 권력을 나눠 갖는 실험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오직 내가 가진 원칙만이 절대선이라고 하는 독선이 오늘날 정치를 혼탁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 통섭이고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 때 연정이든 협치든 용어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느 한두 영웅이 나서 또는 양대 진영이 단일 깃발을 쳐들고 나를 따르라고 외치던 시대는 벗어나고 있다. 협치로 갈 수밖에 없다”고 김대중 칼럼에서 쓰고 있다. 사회적 욕구가 다양하고 불만과 불평이 세분되는 시대에는 조정과 타협, 공정과 공존의 정신이 요구  된다는 것이다. 소통과 협치는 이제 시대정신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 일이든 사람이든 정치든, 모든 만남을 앞두고 주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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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9월06일 20시1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6일 20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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