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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은 단축하고 생산성은 높여야 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8월17일 18시1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0시36분

작성자

  • 이원덕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메타정보

  • 33

본문

근로시간은 단축하고 생산성은 높여야 한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박노해, ‘노동의 새벽’, 중에서)

 

 노동시인 박노해가 80년대 초에 쏟아낸 절규이다. 이 무렵 개발연대에는 노동자의 심신을 갉아먹는 장시간 철야노동이 일상화되었다. 노동가족의 삶 또한 피폐하였다. 그러나 지금 와서 지난날 노동하는 삶의 고단함을 돌아보면, ‘그 시절에는 어찌할 수 없었으리라’라고 평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았으면 오늘날 이만큼 한국경제가 성장하고 가계의 소득이 높아지지 않았으리라.

 

 1980년 이후 근로시간이 많이 단축된 것이 사실이다. 연평균 근로시간이 1980년의 2,689시간에서 2014년 2,057시간으로 크게 줄어든 것이다. 법정 기준 근로시간이 2004년부터 주당 40시간으로 단축된 것도 실근로시간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시간근로 국가이다. 아래 그림에서와 같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이다.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일 년에 약 400시간 더 오래 일한다. 2012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어느 정치인이 국민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겠다고 공약한 것이 큰 공감을 얻은 것도 이러한 장시간근로가 가정의 행복을 앗아간다고 느끼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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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시간근로 관행은 여성 경제활동 참가에 가장 큰 애로 요인이 되고, 결혼 기피와 출산률 저하의 원인이기도 하다. 또한 기업의 근로시간 관리를 느슨하게 하고 근로자의 능력개발을 위한 학습시간도 줄인다. 위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장시간근로 국가 중에 노동생산성이 높은 나라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 34개국 중 28위이고 OECD 평균의 65%에 불과하다. 

 

 따라서 ‘저녁이 있는 삶’을 근로자에게 돌려주려면, 그리고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선진국만큼 높이려면 근로시간을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 근로시간을 줄이되 시간 관리를 보다 효율화하고 능력개발을 위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이렇게 하면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및 출산율 제고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것이 노동시장개혁의 핵심과제의 하나가 바로 근로시간 단축인 이유이다. 노사정 대화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휴일근로(주당 최대 16시간)를 연장근로 한도(주당 12시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데도 의견이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현재의 68시간(법정기준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된다.

 

 이와 함께 일시에 법정 허용 근로시간을 대폭 단축할 경우 기업의 인력 및 인건비 부담이 클 것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여 기업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 일정기간 동안 주당 52시간을 초과하는 특별연장근로(주당 8시간)를 허용하는 방안, 연장근로에 대한 할증률 조정방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 논의의 진전과 공감대가 계속 이어져서 근로시간 단축이 하루빨리 실시되는 것이 노동자를 위해, 그리고 노동자가족을 위해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 시행 초기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예상되지만, 이를 노동생산성 제고를 위한 혁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언제까지나 낮은 생산성 · 장시간 노동 국가라는 후진국적 이미지를 안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근로시간 제도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근로시간을 단축한 선진국들은 근로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의 유연한 근무시간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제도들은 비단 기업의 입장에서 생산성을 제고해줄 뿐 아니라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한다. 그러나 아래 표에서와 같이 우리나라의 유연 근무제도 도입기업 비율은 선진국 기업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앞으로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유연 근무제도를 활성화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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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로시간과 관련하여 우리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근로시간을 단축하여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도록 하고, 동시에 노동생산성을 높여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경쟁력 약화가 초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시간 운용제도를 유연화하고 효율화해야 한다. 이 길이 바로 선진한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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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8월17일 18시19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0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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