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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이 가야 할 길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7월19일 20시1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24분

작성자

  • 김상조
  • 한성대 교수, 경제개혁연대 소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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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재용 부회장이 가야 할 길

 

  지난 17일(금) 삼성물산 주주총회에 갔었다. 비록 1주뿐이지만, 나도 엄연한 주주다. 다만, 이번 주총에서는 발언 한마디 하지 않고 관전만 했다. 20년 가까운 소액주주운동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당사자 간에 분쟁이 진행 중인 사안에서 어느 한 쪽을 편들거나 또는 어쭙잖게 중재에 나서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켜보는 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주도하는 주총이었다면 저렇게 끝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만큼 4시간 반에 걸친 주총은 뜨뜻미지근했다. 어쨌거나, 전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된, 아니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번 주총의 관전 소감을 정리하고,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이 가야 할 길을 제안해본다.

 

  먼저, 주총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 주총의 안건은 모두 3개였다. 삼성물산 경영진 측이 제안한 1호 안건은 제일모직과의 합병 건이다. 나머지 2개의 안건은 엘리엇 측이 주주제안을 통해 상정한 정관변경 안건으로서, 현물배당 및 중간배당과 관련된 것이다. 3개의 안건 모두 주주총회의 특별결의, 즉 참석 주식 수의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사안이다.

  개표하는 데만 1시간 반 이상이 걸린 1호 안건의 경우 69.53%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특별결의 요건인 2/3(66.67%)를 겨우 2.86%p 넘어선 박빙의 승부였다. 2호 및 3호 안건은 각각 45.93%, 45.82% 찬성에 그쳐 부결되었다.

  이 표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부 언론에서는 삼성의 일방적 승리라고 보도했다. 정말 그런가? 천만의 말씀이다. 반대로, 삼성에게는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고 보아야 한다. 엘리엇 측을 기준으로 하면, 엘리엇은 1호 안건에서 30.47%의 표를 얻었고, 2⋅3호 안건에서는 그보다 15%p 이상의 표를 더 얻었다. 이 15%의 차이가 의미하는 바를 잘 봐야 한다.

  제일모직과의 합병 여부를 다룬 1호 안건은, 주주의 경제적 이익과는 별개의 요소, 즉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의 미래, 또는 주주이익 대 국익 논란 등이 얽힌 복잡한 사안이었다. 반면, 현물배당 및 중간배당을 위한 정관변경 여부를 다룬 2⋅3호 안건은 보다 순수하게 주주의 경제적 이익에 국한된 사안이다. 삼성이 임직원과 언론을 총동원하여 국내 소액주주 및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애국심 마케팅을 펼친 결과가 1호 안건에서 15%의 지지율을 끌어올린 것이고, 그래봐야 특별결의 요건을 고작 2.86%p 넘어선 것에 불과했다. 더구나 애국심 마케팅이 크게 영향을 미칠 여지가 없는 2⋅3호 안건에서는 엘리엇이 과반에 근접하는 45%대의 지지를 받았고, 이는 1호 안건에서 삼성을 지지한 주주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2⋅3호 안건에서는 엘리엇을 지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주총에서 삼성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때마다 광란의 애국심 마케팅을 펼칠 것인가? 삼성전자처럼 외국인 지분율이 50%를 넘는 회사에서 표 대결이 벌어진다면, 애국심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포이즌필 등의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하여 헤지펀드의 공격으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해달라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이번 삼성물산 주총의 2⋅3호 안건에서 엘리엇이 45%대의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 국내 소액주주들조차도 순수한 경제 사안에서는 냉정하게 판단한다는 사실이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삼성은 정확하게 읽어야 할 것이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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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주총에서 합병 건이 통과됨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터무니없는 오보다. 그 반대다. 이번 주총 결과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기존 시나리오는 대폭 지연 내지 수정, 나아가 일부 폐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 승계의 핵심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법적⋅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이 점에서는 별로 진전된 것이 없다. 모든 신문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의 삼성그룹 소유구조 그림이 실렸으니,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란다. 이재용 부회장에서 삼성전자에 이르는 출자고리가 짧아지고 간명해졌다는 점에서 개선의 측면은 있지만,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 지배력은 단 0.01%도 증가하지 않았다. 더구나 합병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4.06%에 불과하고, 삼성생명이 7.21%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변함이 없다. 즉 삼성그룹의 출자구조와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구도에서 최대 취약점 중 하나인 금산분리 규제 문제는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고, 여전히 법적 불안정성과 사회적 비난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에 버금가는 대형 주총 이벤트를 다수 경과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총은 게임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한데, 삼성은 그 첫 전투에서 너무 무리수를 두었고, 이재용 부회장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2013년 7월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강연을 한 이후로 필자는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솔직히, 삼성이 변화를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필자는 삼성이 이번 합병 결의를 자진 철회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었다. 1 대 0.35라는 합병비율이 비록 위법은 아닐지라도, 엘리엇이 문제제기했듯이, 삼성물산 주주의 입장에서 그리고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결코 공정하다고 볼 수만은 없는 요소들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진 철회하고 6개월 내지 1년 후에 조정된 합병비율로 다시 추진하는 것이, 엘리엇의 공격에 굴복하는 모습이 아니라, 시장과 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궁극적으로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과 한국경제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금도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삼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삼성은 엘리엇을 먹튀자본으로 공격하고 국부유출론을 확산시키는 애국심 마케팅을 펼침으로써 ‘글로벌 기업 삼성’의 평판을 스스로 훼손하였고, 삼성의 경제력을 무기로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회유함으로써 한국 자본시장의 후진성을 만천하에 폭로하였고 그 결과 글로벌 투자자들의 비웃음을 샀으며, 8000명 삼성물산 임직원들을 총동원하여 소액주주들을 가가호호 방문하게 함으로써 수박과 빵을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삼성이 이것밖에 안되냐’라는 자괴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삼성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해서 이재용 부회장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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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은 자신의 놀라운 성공을 ‘황금의 삼각 축’으로 설명해 왔다. 즉 ‘총수의 리더십, 미래전략실의 기획력, 계열사 경영진의 전문성’ 등이 어우러져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이제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니다. 이젠 시장의 맨 앞에 서 있다(first mover). 그런데 삼성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구조는 여전히 구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열사 경영진은 시장의 흐름을 선도할 창의성을 갖추지 못했고, 미래전략실은 밀실에 갇혀 세상의 변화를 외면했으며, 3세 총수는 검증되지 않은 황태자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는 황금의 삼각 축이 성공의 요인이었지 모르나, 이제는 실패의 씨앗이 되고 있음을 이번 주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엘리엇 사태는 삼성이 자초한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 주총의 2⋅3호 안건에서 엘리엇이 45%대의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이 주는 교훈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젠 미래전략실 임원이 보고하는 왜곡된 정보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열린 공간으로 나와서 직접 시장과 사회의 목소를 들어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길을 찾지 않고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야말로 이재용 부회장은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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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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