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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간은 항상 손봐야 한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7월14일 19시0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1시49분

작성자

  • 이달곤
  • 前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前행정안전부 장관

메타정보

  • 34

본문

외양간은 항상 손봐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亡牛補牢)’는 풍자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사회 외양간은 잃기 이전이면 더 좋지만 잃은 이후에도 고치지 않을 수 없다.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얼마나 제대로 고치는가에 달렸다.

  메르스 방역의 문제점이 여러 방면에서 이미 지적되었고 외양간 고치는 방책도 적지 않게 제시되었다. 이글에서는 정부제도와 조직배열(setup)에 대해서 몇가지 추가하려고 한다.

 

    3안사회(三安社會)의 정부대응

우리사회를 안전, 안심, 안정(三安)시키는 데는 모든 영역에서 낡은 외양간을 고쳐나가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3안사회(三安社會)를 가로막는 대규모 급박한 위협은, (1)북한으로부터의 위기, (2) 공간상(해상. 공중. 지상. 지하 등 장소에 국한된 것)의 위난, (3) 전염병과 같은 보건위기, (4) 원자력 안전, (5) 사이버 위기 등이 될 것이다. 북한으로부터의 위기는 그간 국방부를 중심으로 제도적 개선과 조직적 재배열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원자력 안전도 개선 여지는 많지만 상당한 진적을 보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 위기는  공간성을 가지지 않고, 인체에 대한 직접적 위협과는 성격이 달라서 별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첨단기술적 특성을 가지고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대응체계를 달리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는 공간성 위기와 보건위기에 대응하는 제도적 과제에 국한하려고 한다. 위기의 공간성이라는 것은 특정 지점이나 지역에서 위기가 발생하고 그것에 대한 구조와 구난이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특성을 지칭한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지만, 초기 방문대상이 된 몇 병원이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공간성을 갖는 것이다. 반면, 사이버 공격은 지역이나 공간이 의미가 없고 네트워크상 공격의 대상이 순간적으로 바뀔 수 있으며 그 대응이 특정 지역에서 특정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질 수도 없다.

 

  세월호 참사와 외양간 수선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제도의 변화가 있었다. 조직배열에서 본다면 해상과 육상의 사고에 전적으로 대응하는 국민안전처를 만들었고, 행자부의 위치가 변하였고, 총리가 최종적인 지휘를 하는 다단계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국민안전처는 위기가 확산되어 보건복지부 이상의 개입이 필요하였다고 상정하더라도 별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에는 공중보건 전문인력이 전무하고, 국가 기구나 지방자치단체의 보건 및 방역 기관을 제대로 운용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초기 공포를 자아내는 전염병의 경우 국가나 지자체의 어떤 조직을 어떻게 가동하면 된다는 경험이 없어 현장에서 위기에 대응하는 조직이나 인력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것이다. 또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관계를 평소에 만든 제도적 기반도 없었다. 게다가 민간의료기관과 협업을 해나간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노우하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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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중시의 조직원리가 협업을 어렵게 하고 있어

   전문가들이 기대하는 콘트롤 타워의 즉시 가동이나 전국적인 관련 기관들의 원활한 협업이 어려운  제도적 이유는 우리나라 정부구성의 인사원리가 계급제(rank-in person)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서 계급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유교적인 문화와 권위주의적 전통이 배경이 되고 있는데, 군대, 경찰, 검찰 등과 같은 명령계통이 중요한 조직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다른 일반 행정조직에서도 직위와 계급을 의사결정과 행정력의 동원에 근간이 된다. 전문가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행정력을 갖지 못하고 연구나 자문 기능에 머물게 된다. 

   업무 전문성에 기반한 사람이 최고위직에 근무하도 어렵다. 그래서 미국식으로 의무감(사령관)(surgeon general) 같은 자리를 만들어서 전염병 대처에 필요한 광범위한 집행권한을 부여하자는 논의도 채택되기 어렵다. 그것은 미국의 직무지향적 공직체계(job- oriented career system)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게다가 현재 전국병상의 90%가 민간 소속이고 보건소와 지방의료원이 지방자치단체에 속한 현실과 시민의 행동을 통제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제도정비 문제를 보아야 한다.

 

   일반 행정가 중심의 조직을 개혁하여야 한다

   전염병 예방과 대응 같은 전문성이 대단히 중요한 분야에서는 우수한 보건의료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조직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일반직 우위 제도에 기반하여 일반행정직이 통제하고 전문직은 보좌하는 구조가 되어 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통하여 전문직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방안을 도입하였지만, 고시제도가 있는 한 획기적인 전환은 어렵다. 대학 수준의 전공을 보아서 기술고시를 뽑아 보아야 그 전문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가의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도의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인재는 경력의 중간에 계약을 통해서 공직에 들어 올 수밖에 없는데 이들이 조직의 근간을 형성하기란 쉽지 않다.  

   하위의 집행단계 조직에서도 꼭 같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항시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조직이 경우 행정직이 돌아가면서 조직전체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예를 들면, 공항의 검역소에나 일선병원과 접촉하는 행정조직에 보건의료 전문가보다는 일반 행정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질병관리본부의 조직구성도 마찬가지다. 상당수의 인력이 계약직이고 행정직의 지원과 통제를 받고 있다. 

 

      그럼 어떻게?

   정부에서 일해 보면 정말 어떤 분야를 전문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공무원을 찾기 어렵다. 물론 대학이나 연구소에는 이론 전문가가 있다. 하지만 현장은 다르다. 국가의 운영은 현장이고 현장형 인간(現場型 人間)이 필요하다. 필기시험에 기준하여 선별한 행정인력은 현장문제 해결에 밝은 전문가가 아니고 연구소의 연구인력과 같은 사유형 인간(思惟型 人間) 대부분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은 대부분 책상머리의 사유형이다. 전문성을 주입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계급으로 업무를 처리하려는 태도는 공무원 이전 어릴 때부터 길러져 있는 것 같다.

   또 소위 현장을 아는 전문가의 경우, 한직처럼 보이고, 직급상승 경로가 협소하고, 임금도 낮은 공직에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직급이 낮은 것도 맘에 걸린다. 공직 이후의 보장도 어렵다. 대학이 낫고 연구소가 낫다. 책임도 유별나지 않고.... 계약직으로 진입하는 경우 조직의 생리를 파악하고 리더십을 행사하는 데까지 계약기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전문성이 특히 필요한 보건의료 분야에서는 이 부분에 철저한 개혁이 있어야 한다. 기관별로 직업의 안정성과 계속성을 높이고, 직급을 상향조정하면서, 훌륭한 전문인력이 전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연구여건과 재정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 이제 때가 되었다. 현장 전문가를 자체조직에서 육성하고 재훈련시킬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책무를 다하면서 명예를 쌓아서 정치, 행정, 기업의 최고위직과 같은 위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민간병원의 의사에게는 쩔쩔 매면서 공직에 근무하는 의사를 제대로 대접 못하는 문화는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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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최고 보건관직을 만들어 내어야

   각종 질병과 전염병의 예방과 대응의 중요한 역할이 국가에 있다면, 그 일에 전념할 국가의 최고위직을 만들어야 한다. 소위 국가 최고 보건관(national chief health officer)의 역할과 위치 문제이다. 이 문제는 보건복지부에서 보건 및 의료분야를 독립시켜서 장관급의 기관을 만들고, 그 장관에 최고보건관의 역할을 두면 미시적 완전성이 갖추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건.의료를 나머지 인구.복지 분야와 분리시키는 것은 행정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건강보험이나 연금 등의 업무가 분리되는 등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 또 정부 부처가 너무 많아진다는 일반적 우려는 물론이고, 업무영역이 특정된 보건업무 장관이 관련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다른 기관과의 관계가 필수적인데 현재의 보건복지부 장관보다는 위상이 낮아져서 위기시에 유효한 대응을 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차관급으로 질병관리본부를 격상시켜서 독립부서로 만드는 방안과 현재의 보건복지부 조직의 미시적 변화를 시도하면서 보건담당 차관직을 신설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복지와 보건이라는 양대 분야를 위상이 높은 장관이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책 및 위기관리 측면에서 필요한 지원을 획득하는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 위기가 오기 전에도 좀은 무거운 책무가 주어지고, 위기 대응에는 대책본부장인 장관을 전문성과 행정역량으로 보완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진다. 

 

   너무 황급하게 접근하지는 말아야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의 조직개편이 위기대응만을 고려한 제도개선으로 치달은 면이 없지 않다. 안정행정부를 행정자치부로 줄이고 해경과 소방의 상부조직을 결합시켜 국민안전처를 만들었다. 공간적 위기대처에는 일응 효과를 발휘할지 모르지만, 군은 물론이고 지방과 민간조직까지 동원하는 전국적인 대응에는 한계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시민의 집합적 협동을 얻는 것은 오랜 행정경험을 요한다. 치안이라는 관점에서, 대통령에 대한 보좌에서도 경찰청 업무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는 면이 있다.

   흔히 초동대응이 실패하고 나면, 효율성이 높은 ‘군대식 조직’을 만든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이번에도 그러한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전염병의 원인, 병원균의 특성, 전파경로, 그리고 일반인의 대응방법 등과 같은 사항에서 의학적 전문지식이 핵심이 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공직자의 전문성과 식견이 민간분야 최고의 식견에 비견될 수 있는 경력자를 구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전문적인 사안을 정책결정자가 필요한 조치를 하는데 쓸 수 있을 정도로 용이하게 이해시키고 이를 행정적인 조치로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 인력이 필요하다. 원전안전문제나 사이버 공격의 경우에도 꼭 같이 적용되는 사항인데,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책결정자는 과학기술적 전문가들의 설명을 알아듣기 어렵다. 게다가 불확실성이 개입하는 경우 정책결정에 엄청난 난맥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일반인의 용어로 국민이나 공직자가 정확하고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는 소통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언론과의 관계에서 전문적인 내용과 불확실성을 적확한 용어와 비유로 쉽게 알릴 수 있는 능력이 절실하다. 언론과의 관계에서 이음매 없이(seamless) 전문성을 전달하는 능력은 최근 절실한 수준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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