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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이 된 재벌 지주회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6월29일 18시2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09분

작성자

  • 최정표
  • 건국대학교 교수, (전)경실련 대표

메타정보

  • 37

본문

양날의 칼이 된 재벌 지주회사

 

1. 지주회사의 허용

    재벌은 회사제도를 적절히 이용하고 남의 돈을 잘 활용하여 많은 회사를 지배한다. 이런 현상을 더욱 부채질 하는 새 제도가 지주회사라는 기업제도이다. 지주회사는 여러 가지 부작용 때문에 법으로 금지해 오다가 재벌들의 끈질긴 요구로 외환위기 이후부터 합법화되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한때 지주회사가 재벌의 헤드쿼터 역할을 했다. 100여 년 전 미국의 재벌도 지주회사가 중심이었고, 2차 대전까지의 일본재벌도  지주회사가 그 중심에 있었다.

    지주회사(holding company)는 회사이긴 하지만 매우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는 회사이다. 회사는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한다. 그러나 지주회사는 이런 기능은 하지 않고 다른 회사를 소유하고 관리하는 일만 한다. 다른 회사의 주식을 대량 소유하면서 그 회사를 직접 관리하는 것이 지주회사의 일이다.

      이런 업무만 전적으로 수행하는 회사를 순수지주회사(pure holding company)라 하고, 이런 업무도 수행하면서 동시에 상품 생산업무도 수행하면 이런 회사를 사업지주회사(operating holding company)라고 한다. 큰 회사는 대부분 사업지주회사이기도 하다. 이제는 순수지주회사도 많이 생겼다. 홀딩스라는 단어가 붙는 회사는 대부분 순수지주회사이다.

    1987년부터 공정거래법은 순수지주회사의 설립을 금지해 왔다. 지주회사는 적은 돈으로도 재벌을 만들 수 있는 주요 수단이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에 재벌정책을 도입하면서 지주회사의 설립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그러다가 재벌들의 끈질긴 요구에 못 이겨 1999년부터 지주회사를 허용하였다. 명분은 외환위기 이후 재벌의 구조조정에 이 제도를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허용 이후 실제로는 구조조정보다 재벌체제를 더 공고히 하는데 악용하고 있다.

 

2. 지주회사의 본질

     지주회사는 피라미드처럼 자회사 손자회사 등을 거느리는 모회사이다. 지주회사를 만들어서 이 회사를 총수가족이 소유한 후 지주회사가 회사 돈으로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자회사는 또 회사 돈으로 수많은 손자회사를 거느린다. 그 다음은 다시 증손회사를. 이렇게 하면 지주회사는 피라미드 모양을 갖추면서 수많은 회사를 거느리게 되는데, 총수는 지주회사만 소유하면 그 이하의 모든 회사는 자기의 회사가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거대 재벌이다.

    이처럼 지주회사는 개인이 적은 돈으로 최대한 많은 회사를 거느릴 수 있도록 하는 회사제도이다. 100여 년 전에는 미국에도 많은 재벌이 있었는데 이제도를 이용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록펠러 재벌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재벌이었는데,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Standard Oil Trust)라는 지주회사로 미국의 석유시장을 완벽하게 독점화 시켰다. 이 회사는 미국의 모든 석유회사들을 자기 밑으로 묶어 석유시장을 독점화시키고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폐해가 너무 컸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1890년 반독점법(antitrust law)을 만들어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를 해체해버렸다. 1911년의 일이다. 수십 개의 기업으로 쪼개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독점금지법이었고, 재벌해체였다.   

    일본 재벌도 지주회사로 만들어진 재벌이었다. 예컨대 미쯔이 가문이 ‘미쯔이 본사’라는 지주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가 그 산하에 수많은 자회사, 손자회사 등을 거느리면서 대형 재벌을 만들었다. 2차 대전에서 패하고 미국 점령군에 의해 재벌이 모두 해체될 때까지 일본 경제는 이런 재벌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맥아더 사령관은 전쟁 협조세력인 재벌을 해체하면서 지주회사를 제일 먼저 해체했을 뿐만 아니라 지주회사를 만드는 것조차 아예 금지해버렸다. 그 이후로 일본에서는 재벌이 사라지고 모든 대기업이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키는 새로운 회사체제로 탈바꿈하였다. 

    이처럼 지주회사는 재벌조직의 중심에 있는 회사제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주회사의 설립이 허용된 이후부터는 지주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대재벌로는 LG, GS, SK 등이 지주회사로 전환하여 새로운 재벌체제를 구축하였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은 아직 지주회사체제를 갖추지 않았으나 조만간 그렇게 갈 가능성이 많다. 지주회사는 개인이 적은 돈으로 많은 회사를 거느릴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주회사는 경제력을 재벌에게 집중시키는 핵심적 장치이기 때문에 경제민주화 와는 양립할 수 없다. 지주회사의 허용과 이 제도의 악용이 재벌정책을 퇴보시켰다는 것은 입증되었다. 지주회사 때문에 경제력 집중이 더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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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주회사의 이중성

        지주회사는 양날의 칼이다. 어느 쪽 날을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지주회사는 계열사를 분리시키는 데도 유용하고 계열사를 만드는데도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계열사를 분리시키는데 사용하면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매우 편리하고, 반대로 계열회사를 많이 거느리려는데 활용하면 경제력집중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정부가 지주회사를 허용한 이유는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기 위해서였다.

   재벌은 수익성이 낮은 계열사를 분리해서 매각하려고 할 때 지주회사체제를 갖추고 있으면 그 계열사를 분리시키기가 매우 용이하다. 지주회사가 소유한 그 회사의 주식만 매각해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이때 지주회사체제가 아니고 복잡한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형태로 계열사들이 묶여 있으면 지분정리에 많은 회사들이 관여해야 한다. 한 회사를 분리해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는 공정거래법에서 설립을 금지해 왔던 지주회사제도를 허용했던 것이다. 계열분리를 용이하게 해서 재벌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많은 재벌이 부실해지고 재벌들의 구조조정이 절실해졌다. 재벌들은 지주회사제도가 허용되면 구조조정이 쉬워진다고 정부를 꼬드겼다. 여기에 관료들도 영합했다.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바꾸어 그동안 금지됐던 지주회사를 허용해 버렸다.

     지주회사의 설립이 허용되자 재벌들은 약속과는 달리 다른 쪽의 칼날에만 관심을 가졌다. 지주회사를 만들어 기존의 계열사를 모두 그 휘하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회사까지 끌어 들였다. 지주회사제도를 활용하면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계열회사를 소유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계열회사는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 현상은 다시 심화되어 나갔다.

 

4. 국가에는 독이 된 지주회사

    지주회사제도는 재벌이 계열회사를 떼어내는데 쓰라고 도입되었다. 그런데 재벌은 붙이는 데 이용하고 있다. 재벌에게는 좋지만 국가에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제도는 국가와 재벌에게 정 반대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된다. 또는 한 쪽에 약이 되면 다른 쪽에는 독이 될 수 있다. 지주회사는 국가에 약으로 쓰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 그런데 재벌에게만 약이 되고 국가에는 독이 되고 있다. 지주회사제도는 경제력집중을 심화시키고 있다.

    지금은 많은 재벌들이 지주회사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계열사를 늘려나가고 있다. 경제력집중은 심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므로 지주회사제도는 다시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이 제도를 처음 허용할 때는 정부의 의지가 강했다. 국가에 약이 되는 칼날만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재벌들의 저항과 로비로 정부의 초기 입장은 무너져 내렸다. 대부분의 재벌정책이 용두사미가 되었듯이 지주회사 규제도 마찬가지이다. 관료들의 무지와 무책임이 한 몫 한 결과이다. 

   처음에는 기업 구조조정에만 활용하고 계열사 확장에는 이용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제를 두었다. 말하자면 조건부 허용이었던 것이다. 지주회사로부터 계열회사를 분리하는 데는 아무런 규제를 두지 않았지만 새 계열사를 늘리는 데는 강한 규제를 걸어 두었던 것이다.

     예컨대 지주회사가 돈을 빌려서 과도하게 계열사를 늘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에 상한선을 정했다. 부채비율을 100% 이상 넘기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므로 지주회사는 돈을 빌려서 자회사를 늘려가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재벌들은 이 규제를 완화시켜달라고 아우성쳤다. 정부는 항복하고 말았다. 부채비율 상한선은 200%로 완화 되었다. 지금은 아예 이 규제 자체를 없애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빌려서라도 마음대로 계열회사를 늘려나가겠다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요구대로 이 규제를 아예 없애버리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꼭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자회사는 10% 정도의 지분만 확보해도 실질적으로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다. 10%까지 소유하는 다른 대주주가 없기 때문이다. 10%면 제1대주주가 되면서 그 회사를 실제로 지배할 수 있다. 그런데 30% 이상을 소유하도록 의무화시켰다.

     만약 30%지분 규제가 없다면 10%로 낮추면서 남는 돈으로 다른 회사를 더 소유하고 더 많은 계열회사를 거느릴 수 있다. 말하자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계열사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벌들은 이 규제도 완화시켜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완화되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지주회사들은 100% 지분을 소유하면서 자회사를 거느린다. 이것이 원칙이다. 이렇게 하면 지주회사는 경제력집중의 요인이 될 수 없다. 그리고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으면 자회사는 지주회사의 한 부서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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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지주회사는 경제력집중과 직결되어 있는 회사제도이다. 만약 지주회사 규제가 모두 없어지면 재벌들은 지주회사제도를 활용하여 적은 자금으로 계열사를 무한정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력집중은 심각해질 것이다. 이런 현상을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은 경제민주화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주회사가 경제력집중의 유용한 수단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것은 경제민주화의 전제조건이다.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는 다시 강화시켜야 한다. 지주회사 제도 자체를 금지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규제라도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지주회사제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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