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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투기 자본의 공격, 어떻게 볼 것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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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6월15일 20시1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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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투기 자본의 공격, 어떻게 볼 것인가?

 

 미국계 헷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엘리엇)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지난 9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엘리엇은 페루와 콩고, 아르헨티나 정부를 상대로, 또 코닝 델파이 등 세계 굴지의 기업에 시비를 걸어 막대한 투자 수익을 올린 경력이 있는 펀드이다. 이 펀드가 한국의 간판기업 삼성그룹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해외 자본의 공격적인 국내 기업 인수와 투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과거 소버린이 SK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를 들고 나왔었고, 칼 아이칸은 KT&G의 배당정책에 대해 시비를 벌인 바 있다. 작년 현대기아차그룹이 삼성동 한전 부지를 시가의 3배에 사들이겠다고 하자 투자자들은 거의 투매에 가깝게 주식을 팔아 치웠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자본시장은 개방되어 있기에 이런 행동주의 펀드뿐 아니라 돈 되는 각종 투자 테마와 기법을 동원하는 해외 자금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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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M&A 시장에 주역으로 자리잡아가는 해외 자본 

블룸버그(Bloomberg)통신에 따르면 국내 M&A 시장의 경우 지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개년 평균 해외자본의 국내기업 인수건수는 57건이었고, 거래규모는 50억달러에서 118억달러로 2배 이상 증가한 추세이다.

실례로 일본자본의 경우 지난 2011년 우리가 겪은 저축은행 사태 이후 시장에 나온 알짜 저축은행들을 대거 인수하며 한국의 대부업과 저축은행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였으며, 일본계 금융그룹 오릭스는 현대증권의 대주주 적격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중국자본의 경우 은행과 보험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안방보험그룹은 2014년 우리은행 경영권 예비입찰 당시 유일하게 제안서를 제출하였으며, 2015년에는 동양생명을 1.1조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등 중국자본이 우리나라 보험업계에 첫 발을 들여놓게 될 전망이다.

 

벤처나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월 미국계 베인캐피털이 자동차 공유 서비스 업체인 쏘카에 180억 원을 투자했고, 11월엔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배달앱 서비스 업체 ‘우아한 형제들’에 400억 원을 투자했다. 중국 IT 업체인 텐센트는 라인과 손잡고 게임 개발사인 네시삼십삼분에 1,000억 원을 투자했으며, 모바일 서비스 업체 옐로모바일도 1,100억 원대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아직은 연 1,000억원 이상 적자를 내고 있는 쿠팡에 무려 1조원을 투자해서 시장 참가자들을 아연실색(啞然失色)하게 했다. 

 

한국 경제 위상과 해외 자본 대비 규모나 역할이 턱없이 부족한 국내 자본 

해외자본의 국내기업에 대한 관심 및 투자는 지속되는 반면, 재벌 등 대기업들은 M&A에 매우 미온적인 상황이다. 이들은 외형적으로는 정무적 이유로 투자 확대를 천명하지만 내심 향후 경제 전망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고, 경제력 집중을 우려하는 여론과 정부의 부정적 시각 또한 부담스러워 적극적으로 M&A에 나서지 않고 있다.

 

자본시장 내의 모험자본 또한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 대표적인 연기금인 국민연금공단의 경우 국내에서 모험자본 공급자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2014년 국내대체투자 부분은 21.4조원으로 총 자산운용 규모 대비 4.4%에 불과한 상황이다. 그나마 대부분이 부동산과 인프라 등 실물자산과 고정 수익 위주의 구조화 투자나 중순위 투자가 대부분이다. 이는 연기금의 특성상 리스크 테이킹에 따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외자본의 국내 상륙을 대체할 수 있는 국내 자본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그리고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연기금 등 국내 자본은 사실상 기업의 경영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정서이고 현실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배당 확대를 언급했다가 전경련과 일부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한국의 자본시장은 해외 자본들에게 다양한 투자 테마와 기회를 주고 있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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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자본은 어떻게 정의하는가? '해악'인가 '필요악'인가?

무엇이 투기자본인가? 우리는 단기간에 커다란 이익이나 시세 차익을 만들어 내는 자본을 그냥 투기자본이라 부르는 것 같다. 투기(投機)라 함은 지나친 위험을 진다는 의미에서 투자(投資)와 구별되는 것이며, 사실 그 위험은   투자자가 감당하는 것이지 제3자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물론 불법이나 편법을 동원하면 이는 용납될 수 없고 법으로 다스려야 할 일이다. 세금을 안 낸다면 세금을 제대로 걷으면 될 일이고, 법이나 세법에 문제가 있으면 법 개정을 해서 건전한 투자가 이루어지게 해야 할 일이다. 행여 우리가 가지지 못한 투자기법을 구사하거나 우리는 감당하기 싫은 리스크를 안아가면서 수익을 올린 자본을 그저 배가 아파 투기자본이라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이들은 정말 우리 경제에 해악만 끼치는가? 소버린이라는 사모펀드가 SK를 압박할 당시 주주총회에 등장해 발언을 하던 일은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매우 낯선 광경이었다. 최태원 회장보다 훨씬 더 많은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그들을 우리는 이단아 취급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SK뿐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들의 전반적인 주주총회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기업지배구조도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 KT&G를 겨냥했던 칼 아이칸 연합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자체보다는 주주가치 확대에 매진했다. 초기부터 배당금 증액과 유휴자산의 매각을 대표적인 요구조건으로 내걸었다. 아이칸 연합의 전방위 위협과 관련해 KT&G는 결국 기업가치 개선 마스터플랜 공개를 통해 2.8조원 규모의 주주환원을 발표했다. 

 

엘리엇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와 콩고 등 국가를 상대로 공격에 성공했다면 그럴만한  여지를 그 정부와 위정자들이 주었던 것은 아닐까? 콩고 정부는 기아 대책으로 공급되는 원조 자금을 각종 부정부패에 악용하였다. 엘리엇은 이를 빌미로 돈을 벌어갔지만 그 일 때문에 원조 자금이 보다 투명하게 쓰였고, 부정부패의 개선이 이루어졌다면 이 일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20대에 헐값 수준으로 제일모직의 전신인 에버랜드의 주식을 사서 지배주주가 됨은 물론 수조 원에 달하는 상장 차익도 얻었다. 그룹의 중심기업 삼성전자의 지분 4%를 가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려는 것은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대한 직접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작업의 일환이 아닌가라고 시비를 걸어오면 그 대답이 궁하지 않을까? 

 

투기자본에 대한 방어 대책은 무엇인가? 

정부와 기업 모두 서둘러 국제 투기자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국내 기업들이 국제 투기자본의 위협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포이즌 필'(적대적 M&A 시도 시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매수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이나 '황금주'(보유한 주식의 수량이나 비율에 관계없이 기업의 주요한 경영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식)와 같은 기업경영권 보호수단을 도입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할 여지가 많은 우리 상황에 이런 제도의 도입은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장치가 만일 적은 지분만 갖고도 1대주주가 전횡을 하고 경영 능력을 충분히 검증 받지 않은 2세나 3세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데 악용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성장과 제조업 국제 경쟁력 약화 그리고 저배당으로 투자 매력도가 가뜩이나 떨어진 한국 증시에 확실한 또 하나의 비호감 정책이 될 것이다.

 

우리는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수출 상품을 상대 교역국들이 무역 장벽을 쳐서 막으려 하자 불공정한 처사라고 볼멘 소리를 냈었다. 우리가 가장 경쟁력 있는 제조업을 내세워 세계 시장에 나가 돈을 벌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비교 우위에 있는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 즉 정보통신기술이나 금융자본을 내세워 타국에서 돈을 벌고자 한다. 우리도 이제는 돈이 일하게 해야 한다고 자본 수출을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은가? 오래 전 자본주의를 우리 경제의 프레임으로 받아들였고 세계 10대 무역국으로서 이미 시장을 개방해 글로벌 경제 시스템 속에 들어가 있기에 일방적으로 우리가 유리한 장사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도 부지런히 진정한 모험자본을 경제 규모에 걸맞게 키워내야 한다. 벤처에 투자하는 것만 모험 자본이 아니다. 부실기업의 구조조정도 해야 하고 대주주가 비주력 사업을 팔거나 신사업을 하고 싶을 때 새 주인이 되어주거나 지원해 줄 수 있는 자금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본도 일반 주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대주주의 독단적 경영판단이나 주주 이해에 반하는 대주주의 전횡 관행에 대해 목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법 테두리 내에서 행동에도 옮겨야 한다. 

 

물론 시세 차익을 바라는 일반 주주들의 의견대로만 기업 경영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영을 책임지는 대주주나 경영진은 일반 주주들이 가지지 못한 시각과 시야가 있어야 하고, 객관적이지 않은 경영 판단도 해야 한다. 다만 이제는 그러한 경영 판단에 대해 그 결정이 다른 주주의 이해에도 부합하는지 훨씬 더 적극적으로 그들과 대화하고 때론 열심히 설득해서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경영능력을 성과에 따라 평가 받아야 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책임도 져야 한다. 이 방법 만이 공격적인 해외자본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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