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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해체시킬 수 있을까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6월01일 20시32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44분

작성자

  • 최정표
  • 건국대학교 교수, (전)경실련 대표

메타정보

  • 38

본문

재벌, 해체시킬 수 있을까

 

1. 일본의 재벌해체

   일본은 한때 재벌 천국이었다. 재벌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에서 만들어질 정도로 일본은 재벌의 나라였다. 일본은 재벌의 역사가 300여 년 전의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재벌이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후반 메이지유신 시대부터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정치권력과 결탁한 대상인이 출현하였고 이들이 재벌로 발전해 갔다. 처음에는 이들을 정치권력과 결탁된 상인이라고 해서 ‘정상(政商)’이라 불렀으나 나중에 그 규모가 거대해지면서 재벌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일본 재벌은 미쯔이, 미쯔비시, 야스다, 스미토모 등이다. 이들은 덩치를 키워 나가면서 일본경제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다.

     재벌은 일본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마치 우리나라 재벌이 고도성장을 견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연적으로 재벌의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일본은 대재벌이 아니면 경제를 꾸려 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다가 1930년대에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나아가면서 전쟁까지 일으키자 재벌은 군국주의의 강력한 뒷받침 세력이 되었다. 각종 군수물자를 생산하면서 재벌은 끝을 모르게 성장해 갔다. 그리고 군벌과 결탁했다. 재벌의 힘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런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1945년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패전국이 되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 사령부가 일본에 진주하여 일본을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맥아더 사령관은 강력한 개혁 조치를 추진하였는데 목표는 일본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재벌개혁, 토지개혁, 노동개혁 등이 불가피했다. 바로 일본의 경제민주화였다. 재벌개혁은 재벌의 해체였다.

 

 이 당시 자료에 의하면 4대재벌이 일본 기업자본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재벌로의 경제력집중은 심각한 상황이었다. 재벌개혁 없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미국의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이 사실을 잘 간파했다. 재벌을 해체하고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지 않고는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3년여의 준비 끝에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재벌의 구심체는 지주회사(holding company)였는데 맥아더는 이를 모두 해체시키고 앞으로 이런 회사는 만들 수 없도록 하였다. 재벌 오너의 주식은 국채와 바꾸어 모두 환수하고 이를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분산 매각했다. 그리고 계열기업은 모두 분할하고 재벌시대의 임원들은 더 이상 기업에 남아 있을 수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재취업도 불허했다.

    일본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저항했지만 일본의 재벌은 완전히 해체되고 말았다. 오너와 임원들이 모두 쫒겨 나고 회사가 쪼개져 버렸으니 재벌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전무후무한 해체정책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에 미국식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민주주의 신봉자인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경제는 비민주적이고 반시장적이었다. 일본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맥아더의 개혁조치는 성공하고 일본에서 재벌은 사라졌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 입장에서는 그들이 반대했던 재벌해체가 일본을 재건시킨 일등 공신이었다. 재벌해체 후 일본은 경제민주화를 시현해 고도성장을 이끌었고 일본을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재벌을 대체한 새로운 기업제도 덕이었다. 재벌을 대체한 새로운 기업제도는 ‘키교수단(企業集團)’과 ‘케이레츠(系列)’라고 불리는 독특한 기업조직이었다.  

       재벌처럼 기업을 그룹화 시키긴 했지만 이들은 모두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었고, 그룹에 속한 기업도 경영은 모두 독립적이었다. 그룹식 경영을 하지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개별기업은 모두 독립경영을 영위할 수 있었다. 계열기업이라도 경영이 독립적이기 때문에 친시장적이다. 부당 내부거래는 있을 수 없다. 일본식의 독특한 대기업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일본은 민주화된 새로운 기업제도로 나라를 다시 부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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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국의 재벌해체

  미국의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 ~ 1937]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자로 기록되는 재벌이다. 록펠러는 100여 년 전의 미국재벌인데 그 재산이 오늘날 화폐가치로 3,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가 전성기 때의 재산이 1,000억 달러였고, 한국의 최고 부자인 이건희가 100억 달러 정도라고 하니 록펠러가 얼마나 대단한 재벌이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록펠러는 우리나라의 최고 재벌이었던 정주영처럼 시골 빈농의 아들이었다. 물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어린 시절은 뉴욕(New York) 주의 시골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다가 17살에 오하이오(Ohio) 주의 클리블랜드(Cleveland) 시에서 조그만 농산물 위탁가계의 점원으로 첫 돈벌이를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한 록펠러가 인류역사상 최고의 부자가 되었으니 미국은 역시 기회의 나라임에 틀림없다.

   록펠러는 석유사업으로 그런 재벌이 되었다. 록펠러가 20대일 때 석유라는 것이 세상에 나왔고 록펠러는 그 석유에 몰빵 투자를 해서 상상하기 어려운 돈을 번 것이다. 당시 석유는 완전한 신소재로 오늘날의 컴퓨터와 같은 상품이었다. 세상은 석유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오늘날도 컴퓨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록펠러는 그런 석유시장을 모두 장악해 버렸다.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했던 것이다. 완벽한 석유 독점을 구축하였다. 물론 이렇게까지 오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온갖 권모술수와 협박이 동원되고 인정사정없이 경쟁업체를 인수해 나갔다. 사회적 비난도 비등했다. 어찌 됐건 록펠러는 스탠다드 오일트러스트(Standard Oil Trust)라는 회사로 미국에 완벽한 석유독점을 만들었다. 석유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록펠러에게는 강물처럼 돈이 흘러들어 왔다.

    이 당시 미국은 석유뿐만 아니라 설탕, 담배, 철강 등 많은 상품에서 트러스트라는 독점이 만들어졌고 소비자들은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국민들의 불만은 고조되었고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1890년에 독점금지법(Antitrust Law)이 라는 강력한 반 재벌법이 만들어졌다.

    가장 큰 독점기업이었고 가장 큰 재벌이었던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은 이법에 의해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1911년 이 회사는 무려 34개의 독립기업으로 분할되어 버렸다. 록펠러는 경영권을 놓지 않을 수 없었다. 분할된 개별 회사들은 각기 독립 경영을 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의 석유회사들은 이 당시 분리된 개별 회사에서 발전해 온 회사들이다.

    이것이 미국의 재벌해체였다. 재벌 회사를 많은 회사로 쪼개 버린 것이다. 재벌의 재산권은 인정되었지만 경영권은 유지하지 못했다. 회사를 분할하여 독점을 해체하고 경제력집중을 해소시켰다. 절묘한 재벌해체였다. 독점으로 파괴된 시장에 공정한 경쟁을 도입한 친시장적 정책이었다. 오늘날 미국이 최고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누리는 이유는 이런 경제적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력집중과 독점은 반시장이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경제발전이다. 이것은 이미 10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입증되었다. 경제력집중을 해소하고 독점을 방지하는 경제민주화는 경제발전의 필수적 요소이다. 미국은 독점 음모를 가장 엄하게 다스리는 나라이다. 그런 전통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미국경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록펠러는 재산은 유지했지만 경영권 해체로 옛날처럼 계속 부를 쌓아 가지는 못했다. 분할 상속, 상속세 납부 등으로 후손들의 지분 비율은 계속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회사들이 급속도로 성장해 나갔기 때문에 록펠러 후손들의 지분 비율은 더욱 줄어들었다. 소유지분은 광범위하게 분산되었다. 더 이상 소유를 통해서는 회사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영도 더욱 복잡해지고 전문화 되었다. 전문인이 아니면 회사를 경영할 수 없게 되었다. 록펠러 가문은 경영에서 손을 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유와 경영은 자연적으로 분리되었다. 재벌식 기업제도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었다. 미국의 재벌들은 이런 식으로 해체되어 나갔다. 오늘날 미국의 대기업은 대부분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다. 시장경제가 가장 잘 운영되고 있다는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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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의 재벌해체

   재벌은 장점과 긍정적인 면도 있고 공로도 많다. 그렇지만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국민들이 경제민주화에 공감하는 이유는 재벌의 폐해 때문이다. 재벌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 선진국에는 재벌이 없다. 재벌문제의 해결이 바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고 선진국 진입의 관건이다.

   그렇다면 우리 재벌도 해체해야 하는 것일까. 또 해체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명쾌한 답이 있을 수 없다. 해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부터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벌해체의 형태도 여러 가지 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실제로 재벌을 해체시킨 적이 있었고 미국에서도 해체에 준하는 기업 분할정책이 있었다. 재벌 기업을 여러 개의 소기업으로 쪼개버렸다는 의미에서는 두 나라 모두 재벌해체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결과는 전혀 다르다.

   재벌해체는 비상시에 동원되는 정책이지 평상시에는 사용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폭발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경제를 마비시킬 수도 있는 정책이다. 경제를 더 좋게 하려다가 아예 죽여 버릴 수도 있는 정책이다. 그런 만큼 매우 조심스러운 정책일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개별 재벌을 해체시킨 경우는 더러 있었다. 재벌이 너무 부실해졌을 때는 그 후유증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해체 쪽으로 이끌어 갈 수밖에 없었다. 국제그룹이나 대우그룹의 해체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강제해체라기보다 자체 도산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일본에서처럼 재벌을 모두 해체하고 재벌이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초강경 재벌해체정책은 비상시국이 아닌 한 시행하기 어렵다. 경제에 큰 충격 없이도 해체에 준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찾아야 한다. 미국에서 시행된 록펠러 재벌의 해체는 이런 해체라고 볼 수 있다. 

    이 재벌해체는 계열분리 또는 기업분할이라고 볼 수 있다. 과도한 경제력집중은 해소시키면서 그 후유증은 최소화 시킬 수 있는 정책이다. 미국에서 시행된 록펠러 재벌의 해체는 기업분할이었다. 기업분할을 재벌에 적용하면 재벌분할이 되고 좀 더 현실성 있는 표현을 쓰면 계열분리가 될 수 있다.

   재벌은 수많은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소유관계와 사업관계로 복잡하게 얽혀있으면서 모두 총수의 지배를 받는다. 재벌문제는 주로 계열기업 수와 계열기업 간의 특수 관계에서 초래된다. 그러므로 계열기업 간의 관계를 적절히 차단하고 조정하면 재벌식 기업제도에서 오는 폐해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런 정책이 계열분리정책이다.

 

  계열분리란 재벌폐해의 원천이 되는 계열기업을 그 재벌로부터 분리시키는 정책이다. 소유관계를 분리시킬 수 도 있고, 사업관계를 분리시킬 수도 있다. 소유관계를 분리시키면 아예 총수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사업관계를 분리시키면 독립적인 경영을 영위할 수 있다.

   재벌폐해의 원천이 되는 계열기업을 그 재벌로부터 분리시키면 해체와 같은 충격은 없으면서 해체에 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재벌폐해의 핵심은 내부출자와 내부거래인데 계열을 분리시키면 부당한 내부출자와 내부거래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열분리는 경제력집중을 완화시킬 뿐만 아니라 시장을 복원시키는 정책이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진짜 시장을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이다. 재벌체제에서 횡행하고 있는 위장된 시장, 가짜 시장을 진짜 시장으로 바꾸어 시장의 효과가 최대화 되도록 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이다. 계열분리는 이를 위한 가장 강력한 정책이다. 

    계열분리는 실제로 많이 이루어져 왔다. 자기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행해 왔다. 상속 과정에서 계열기업을 분리하기도 하였고, 사업구조 조정을 위해 계열기업을 분리하기도 했다. 이런 계열분리를 정부가 분명한 정책 목적을 가지고 시행하면 그것이 바로 계열분리정책이다. 재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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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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