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도 못할 뻔했던 스마트(SMART) 원자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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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 중소형 원자로 스마트(SMART) 2기를 수출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수출이 성사되면 2조 2천억의 수익을 올리게 된다. 물론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세계 소형 원자로 시장을 선점하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올리게 될 것이다. 미국을 포함한 원자력 선진국들 보다 훨씬 앞서 세계 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앞으로 우리 사회를 먹여 살리는 일에 크게 기여할 세계 1위의 훌륭한 성장 동력이 등장한 것이다. 요즘 투자 대비 효율이 너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과학기술 투자의 화려한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스마트에 대해 언론에 소개된 내용은 간단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1997년부터 3,700억 정도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해서 개발한 1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생산하는 중소형 원자로라는 것이다.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는 노심, 고압의 증기를 만들어내는 증기 발생장치와 가압기, 사용한 수증기를 재활용하도록 해주는 냉각장치를 하나의 압력용기에 넣은 일체형 원자로라는 정도가 고작이다. 언론과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더 이상의 정보는 찾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스마트를 원전에 ICT(정보방송통신기술)을 접목시켜 개발한 창조경제의 산물로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스마트’(smart)는 ICT의 대표적인 상징이고, 창조경제는 ICT와 과학기술의 융합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로 스마트(SMART)는 ICT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스마트는 ‘모듈화 시킨 기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한 다목적의 첨단 원자로’(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를 뜻한다. 대형 원자로의 장점이었던 규모의 경제를 포기하는 대신 기능‧부품의 모듈화를 통해 경제성을 제고시킨다. 자연 대류 방식을 도입해서 안전성을 강화함으로써 설계 수명을 60년으로 만들고, 해수 담수화 등의 다양한 목적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스마트에서는 전기출력을 기존의 대형 원자로의 140만 킬로와트에서 10만 킬로와트로 줄이는 대신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열(熱) 출력을 30만 킬로와트로 확대시켰다.
스마트의 장점은 그 뿐이 아니다. 더욱이 소형화‧모듈화 덕분에 건설비‧건설기간‧부지가
크게 줄어들고, 원자로의 입지 조건도 까다롭지 않다. 특히 냉각수 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안전성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내륙의 중소도시 인근에 건설할 수 있게 되어 송전선 건설비와 송전 손실도 크게 줄어든다. 중국이나 중동처럼 중소 도시가 산재(散在)되어 있는 국가의 입장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장점이다. 그런 스마트는 2012년 7월 4일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SDA) 인가를 받았다. 온전하게 우리 과학기술계의 힘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미래부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 스마트와 같은 중소형 원자로 180기를 건설할 예정이다.
그런데 스마트 개발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스마트의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실제 스마트 개발의 역사는 1994년 7월부터 3년 동안 당시 신재인 원자력연구소 소장을 중심으로 추진했던 ‘미래형 원전 개발’ 사업이었다. 당시 김시중 과학기술처 장관이 중소형 원자로의 가능성을 처음 인식했다. 과학기술 협력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던 중에 우리가 개발하고 있던 한국형 원자로가 중국에게 너무 규모가 큰 것이라는 지적을 흘려듣지 않았던 것이다.
스마트 개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과기처와 산업부 사이의 협업도 쉽지 않았다. 실제로 중소형 원자로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탓에 원자력연구소의 구조 조정을 핑계로 개발팀이 해체 위기에 처한 경우도 있었고, 한국수력원자력이 별도의 중소형 원자로 개발 사업을 추진했던 적도 있었다. 규모를 20퍼센트로 축소한 스마트-P 개발 계획은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던 탓에 참여할 민간 기업을 찾지 못해 철회되기도 했다. 더욱이 참여 정부 말기에는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실시한 예비타당성 검토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기도 했다. 자칫하면 부처간 갈등에 스마트 개발 사업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수 있었던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다. 스마트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수출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안타까운 사실도 있다. 사실 스마트는 20여 년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리의 노력으로 개발한 것이지만 실제로 우리 땅에서는 시험용 규모도 만들어보지 못했다. 기술 개발의 역사에서 파이로트 플랜트도 거치지 않고 표준설계 승인을 받은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부처간 갈등에 골몰했던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고, 민주화와 함께 터져 나온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기도 어려웠던 탓이다. 물론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결국 앞으로 스마트의 제3국 수출에서 얻게 될 수익의 일부를 사우디아라비아에 넘겨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온전하게 우리 과학자의 힘으로 개발을 했으면서도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스마트의 사례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을 찾아야 한다. 연구개발 사업의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을 모두 과학자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학기술 정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정책 전문가들의 역량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실제로 과학기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문과 출신’ 정책 전문가들이 우리의 과학기술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 과학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외국의 낯선 제도를 무분별하게 모방하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선진국들이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을 과학자의 자율에 맡겨두고 있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 과학자들도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폭넓은 정책적 안목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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