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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총수일가의 “재산증식 마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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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4월19일 20시1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1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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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총수일가의 “재산증식 마술”?

 

 한겨레신문(2015.2.16.)에 “이재용 65배·정의선 102배 재산증식 마술”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신문은 재벌 3·4세들이 산 “계열사 주식가치는 수십배, 수백배로 불어나, 많게는 수조원의 재산으로 쌓였다”면서, “재산증식 솜씨가 ‘마술’보다 화려하다”고 비꼬았다.  그 ‘마술’이란 기존 비상장 계열사 주식을 저가 취득하거나 개인 회사를 설립한 뒤, 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회사를 키우는 것이다.

 

 허나 이 방법들은 ‘마술’이랄 것이 없다.  지배주주 경영자는, 기업 내・외의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내부거래를 통해 쉽게 회사의 부를 빼돌릴 수 있다.  총수일가의 ‘마술’ 뒤에는 허울뿐인 기업지배구조와 부적절한 법・제도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발생과 대규모 기업도산을 계기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부당 내부거래 차단 등을 위한 법적・정책적 조치들이 도입되었지만, 달라진 바는 별로 없다.

 

부당 내부거래의 두 유형

기업이 필요 자원을 시장(외부업체)에서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없으면, 내부거래를 하는 것이 낫다.  예컨대, 시장이 독점이면, 내부거래를 해서 독점가격을 피할 수 있다.  한편, 내부거래는 취약 계열사를 지원해서(propping) 경쟁상 유리하게 만들거나 퇴출을 막는 방법이 될 수 있고, 지배주주가 회사의 부나 사업기회를 빼돌리는(tunneling)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부당 내부거래는 시장의 작동과 발전을 막고 기업의 효율성을 파괴한다.

 

내부거래를 통한 프로핑(propping)과 터널링(tunneling)은, 외형상 둘 다 계열사 간 지원행위로 보이지만, 행위의 본질, 동기, 효과 등이 다르다.  따라서 규제의 대상과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프로핑은 지배주주가 아니라 취약 계열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공정경쟁 저해, 기업구조조정 저해 등의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정경쟁을 확보하고 구조조정을 촉진하려면 지원회사를 처벌해 부당 행위를 억제해야 한다.  한편,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터널링은, 프로핑처럼 공정경쟁을 저해하지만, 그 본질은 지원회사들의 부나 사업기회를 총수일가 소유회사(피지원회사)로 빼돌려 사익을 편취하는 것이다.  지원회사(주주, 근로자 등)는 피해자다.  따라서 법이 피지원회사와 그 지배주주를 겨냥해야 하며, 부당 이익 환수와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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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발생과 ‘부당 지원행위’ 규제

예나 지금이나 재벌들은 내부거래를 광범위하게 행한다.  기업지배구조가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내부거래에 대한 규율은 공정거래법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 금지)에 의존해왔다.  이 조항에 의거해 1993년부터 상품・용역거래에서 계열사를 지원해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비계열사에 대한 거래거절·차별취급·거래강제, 계열사 간 상호지원 등)가 규제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6.12. 법 개정에서 제23조에 ‘부당 지원행위’ - 부당하게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하여 자금・자산・인력 등을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 금지규정이 신설되었다.  이후 이 규정에 상품・용역이 포함되었고, 지원회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한도가 매출액의 2%에서 5%로 높아졌다.

 

19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와 다수 재벌의 몰락은 부당 지원행위의 폐해를 여실히 드러냈다.  재벌들은 계열사 간 채무보증 등 내부거래를 기반으로 방만 경영을 했다.  계열사 간 지원행위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저해했고, 계열사 간 복잡한 자본・재무상 연계는 집단 전체의 실패를 초래했다.  이를 계기로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더불어 부당 내부거래 근절이 재벌개혁의 핵심 과제가 되었고, 자산·자금 지원행위에 대한 법집행이 강화되었다.

 

프로핑 금지조항에 의거한 터널링 규제

공정거래법 제23조의 ‘부당 지원행위’ 금지규정은 공정경쟁을 해치거나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프로핑을 막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이 규정은 터널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2000년대에 들어와 재벌 총수일가의 대리인 문제가 심화되면서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터널링이 더 큰 문제가 되었다.  터널링에 대해서는 응당 피지원회사에 과징금을 부과해 부당 이득을 환수하고, 장래의 사익편취를 봉쇄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터널링 방지에 필요한 규제장치는 마련되지 않았고, 기존의 부당 지원행위 금지규정이 그대로 터널링 행위에 적용되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 공정위 의결 2011-88 : 2005.9. 태광산업 그룹의 총수일가는 동림관광개발(자본금 7억8천9백만원, 총수 지분율 51%, 친족3인 지분율 49%)을 설립해 골프장 사업을 추진한다.  회사는 회원모집 전인 2008년에 흥국생명 등 9개 계열사로부터 예치금(792억원)을 받은 뒤, 전액을 회원권 72구좌로 전환해준다.  2011년 공정위는 이를 공정거래법 제23조의 부당 지원행위로 판단, 지원 9개사에 대해 “무이자로 회원권 분양대금을 선납하는 방법으로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동림관광개발 주식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를 다시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시정명령, 약 45억원의 과징금 부과, 3개사 검찰 고발을 의결하였다.

 

- 공정위 의결 2007-504 : 2001년 현대자동차 그룹 총수와 그의 장남은 각기 10억원(지분율 40%)과 15억원(지분율 60%)을 출자해 글로비스를 설립한다.  계열사들은 개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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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오던 물류업무를 이 회사로 넘겨주며, 회사는 고속 성장해 2005.12. 주식시장에 상장된다.  2007년 공정위는 현대자동차 등 4개사의 일감 몰아주기가 부당 지원이라고 판단, 지원 4개사에 대해 “운송물량을 대부분 몰아주고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방법으로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글로비스 주식회사를 부당하게 지원하는 행위를 다시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시정명령과 더불어 과징금 631억원을 부과했다.

 

 

- 공정위 의결 2012-228 : 롯데피에스넷(지분율: 롯데닷컴 27.6%, 롯데정보통신 27.6%, 케이아이비넷 28.6%, 기타 16.2%)은 네오아이씨피에서 ATM기를 직구매해왔으나, 롯데그룹 경영진의 지시에 따라 09.9∼12.5.에 총 3,543대를 롯데알미늄(지분율: 친족과 계열사 42%, 비계열 58%)을 거쳐서 구매한다.  롯데알미늄은 약 42억원의 매출이익을 얻는다.  공정위는 롯데피에스넷에 대해 계열사를 통해 구매하는 방법으로 롯데알미늄을 “부당하는 지원하는 행위를 다시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시정명령과 더불어 과징금 약 6억5천만원을 부과했다.  롯데피에스넷의 비계열 소수주주인 케이아이비넷은 롯데측의 터널링으로 피해를 본 뒤 다시 과징금 부과의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터널링의 피해자인 지원회사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이 부과되고 피지원회사(총수일가)의 부당 이득은 방치되는, 매우 부적절한 법집행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총수일가의 “재산증식 마술”이 가능했던 것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사익편취 근절이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제시됨으로써 2013.8.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사익편취 금지조항이 신설되었다.  하지만 이 조항도 사익편취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한 사익편취에 대한 규제는 헛돌고 있다.  이 문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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