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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해결(Resolution)과 동양의 관리(Management)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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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3월08일 20시40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22분

작성자

  • 최영진
  • 연세대 특임교수, 前주미대사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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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서양의 해결(Resolution)과 동양의 관리(Management)

 

  지난 1.22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유 튜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붕괴하게 될 것이라는 언급을 하였다. 미국 내 많은 전문가들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우리는 이에 대하여 문제점을 발견하거나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화의 차이가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서양문명은 문제가 발생하면 계획을 세워 이를 어떻게든지 해결하는 것을 선호하는 문명이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의 북한 붕괴 언급 뒤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이 이미 작성되어 있거나, 이를 계획할 것으로 습관적으로 상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의 언급은 서양에서 부적절한 것으로 해석 되는 것이다. 서양의 “문제발생-계획수립-해결” 방식은 부시 대통령 때 이라크 침공을 염두에 두고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이 그 예이다. (북한도 악의 축에 포함되었으나, 이때 북한은 초점을 흐리게 하기 위하여 악의 축 리스트에 들러리로 추가된 것이지 당초 북한을 이라크처럼 침공할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오바마의 북한 붕괴론은, 언론 인터뷰 전후 문맥을 보면, 미국이 북한 붕괴를 추진하기 위한 복안을 가지고 한 발언이 아니다. 그보다는 동양식으로 상황의 추이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래서, 해결 보다는 관리와 예측에 익숙한 우리는 오바마의 예측에서 서양식의 관점에서 볼 때 생기는 문제점을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동양문명은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이를 방지하는데 무게를 두고, 문제가 생겨도 직접적인 행동에 의한 해결 보다는 상황의 관리를 통한 시간에 의한 궁극적 문제의 해결을 선호하고 있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에서 적의 괴멸을 최대의 승리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손자병법이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최선의 전략으로 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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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병법이나 유교, 도교에 깔려있는 철학에 의하면, 동양에서는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상황의 관리에 실패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전에 일찌감치 상황을 파악하여 위기의 단초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간 행위의 중요성은 서양문명보다 동양문명에서 더 부각되고 있다. 역경(易經)에서 보듯이 인간사는 천, 지 와 함께 인간이 중요한 행위자로 관여하여 이루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서양문명에서는 인간사도 신(神)이 결국 총괄하게 되어있으므로, 위기는 인간의 죄에 의하여 신이 내리는 것이고, 위기의 시기에 신의 뜻을 받들어 이를 해결하는 자가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고대부터 영웅 숭배사상이 부각되었고, 반면 동양에서는 진정한 리더십으로 영웅이 아니라 상황관리에 필요한 예지를 가진 군자(유교)나 성인(도교)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인구에 회자되는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도 과거(임진왜란)의 어려움을 거울삼아 미래의 환란을 예비한 다는 동양식 “관리” 사상에 입각하고 있다. 실제로 징비(懲毖)의 어원인 서경(書經)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 사상은 과거의 사례를 살펴서, 현재의 상황을 관리함으로써, 미래의 어려움을 사전에 방지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가급적 일찍 위기가 생길 것 같은 징후를 상황 속에서 포착하고 이를 관리하여 위기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적인 시로 시경이 채워진 것이다. 위기의 징후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일단 위기가 되어버리면 관리가 아닌 해결의 차원으로 돌입하고, 해결에서는 실패의 위험성이 항상 내재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결은 관리보다 한 수 아래의 전략으로 치부 되는 것이다. 손자병법이 이제 서양에서도 각광을 받는 것은 바로 이 동양의 “관리전략” 때문이다. 손자병법이 최선의 전략은 상대의 전략을 와해시키고, 다음은 상대의 동맹체제를 와해시키는 것이고, 그 다음이 전장에서 상대의 군대를 파괴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략의 와해와 동맹체제의 와해는 곧 “전쟁 없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도덕경에서 최선의 병법으로 꼽는 “무기 아닌 무기를 동원” 하는 관리 전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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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15-20세기를 지배해온 서양식의 제국주의 확장 정책이 함께 종료되었다. 군사력에 의한 당장의 “해결” 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관리”로 국제관계의 초점이 옮게 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대로 읽지 못할 경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불란서와 미국이 월남전에서 겪은 고통, 그리고 최근 통제 불능 상태로 접어드는 이라크와 리비아 상황이 그 예다. 군사력 개입에 의한 “해결”을 목적으로 불란서나 미국이 겪은 제 1, 2 차 인도지나 전쟁과는 달리 중국은 제 3차 인도지나 전쟁으로 불리는 1981년 중월 전쟁에서 “해결”이 아니라 “관리”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낭패를 피할 수 있었다. 전쟁 전에 등샤오핑은 수 차례에 걸쳐 중국의 베트남 공격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된 것임을 공개 표명하면서 관리에 중점을 두었다.  이라크와 리비아 사태도 마찬가지다. 서양은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한다는 “해결”에 있어서는 전략이 훌륭하게 성공하였지만, 이라크 상황을 “관리”하는 대는 실패하여 힘의 공백이 생기고 오늘날 ISIS가 그 지역에서 준동하게 된 것이다. 리비아에서도 독재자 제거라는 서양의 목적은 훌륭하게 “해결” 되었지만, 리비아와 사하라 지역 의 상황의 “관리”에는 실패하여 오늘날 ISIS가 리비아까지 침투하고 말리 사태가 야기된 것처럼 사하라 벨트 지역의 불안이 증가되어 버린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였다면 이라크와 리비아에서의 서양식 “해결”이 훌륭히 성공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힘의 공백을 서양이 스스로 메우고 모든 이익을 독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영토의 직접 점령 없이도 무역에 의하여 모든 이익을 확보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영토확장을 더 이상 꾀하지 않는다. (크림 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는 서둘러 봉합한 냉전처리의 후유증으로 보는 것이, 현 러시아가 과거 제정 러시아 식 영토확장을 꾀하는 것으로 보는 것 보다 사실에 가깝다). 새로운 패러다임아래서는 결국 힘의 공백을 창출하는 “해결” 방식은, 눈앞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궁극적인 목적을 희생하는 “관리의 실패” 로 귀결 되어버리는 것이다.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문제도 마찬가지다. 당장의 “해결” 보다는, 상황의 “관리”에 중점을 두면서, 시간을 가지고 무리 없이 “저절로” 처리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소위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나 외과적 공격(surgical strike) 정책 등으로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하는 것은 해결 보다는 새로운 위기를 추가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우리로서는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을 기반으로 만반의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북한 내부의 사정으로 문제가 “스스로” 풀리도록 상황을 “관리” 해 나가는 것이 득책이다. 이제는 국제관계에서 서양식 “해결” 보다는 동양식 “관리” 가 더 적실성을 갖는 시대에 돌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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