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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열정 사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3월08일 20시3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23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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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열정 사이

 

  “행복의 씨앗을 키워요! 나은영의 소통과 나눔”이라는 블로그 시리즈의 첫 내용으로 ‘편법과 융통성 사이’에 관한 글을 올렸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홉 번째 글로 이번에는 ‘분노와 열정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생각해 보려 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정서이면서도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분노와 열정, 그 두 가지를 파헤쳐보자.


분노와 열정은 모두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분노와 열정은 모두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마음속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쏟을 때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분노한 사람은 바로 앞의 자극만 눈에 강하게 들어와, 시야는 좁아지고 주변의 상황들이 생각의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치 술에 취한 사람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주의집중을 특정 대상에 몰아준다는 것은 그것이 부정적 방향으로 발산될 때 매우 위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특정 대상을 약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강하게 미워하면서, 그 대상으로 인해 자신의 분노가 발생했다고 생각되면 그 대상에 대한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의 부정적 에너지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게 된다는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면 미움의 대상보다 미워하는 주체의 마음이 더 괴롭기 때문이다.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열정의 대상이 되는 일 또는 사람만이 눈에 들어올 뿐 다른 것은 관심 밖이라는 점에서 분노와 유사한 점을 지닌다. 어떤 사업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사업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주변의 가족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사업의 실패 가능성도 낮아 보여, 오로지 앞으로 전진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열정은 그 상대가 일이든 사람이든 인류사회든 그 대상을 미워하고 파괴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건설적으로 이루어보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분노와 다르다. 에너지를 쏟은 후 얻게 되는 결과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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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열정은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한다

  분노와 열정은 이성보다 감성에 의해 움직인다. 분노가 이성적이지 않다는 데는 누구나 쉽게 동의하지만, 열정이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한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성공을 위해 열정이 필요하지만, 능력이나 합리적 판단, 이성 등이 없이 ‘열정’만으로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인기 만화 ‘딜버트’의 작가인 스코트 아담스는 “열정을 따라가면 성공한다”는 명제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이유를 보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목표 달성이 어려워 보이더라도 큰 부담을 감수하면서 추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결과 실패도 더 많이 하고 성공도 더 많이 한다. 그런데 열정으로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이 회자되지 않는 반면, 열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과도할 정도로 많이 알려진다는 것이다.

 

  사실 성공한 사람들은 열정만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과 올바른 판단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성공했을 확률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내 능력과 판단으로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면 겸손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열정으로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그는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성공 사례들을 많이 접한 사람들이 ‘열정이 있으면 저렇게 성공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담스는 ‘열정이 성공을 가져온다’는 명제보다 ‘성공이 열정을 가져온다’는 명제를 더 신뢰한다. 어떤 일을 시도해서 잘 되는 성공의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열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일을 시도해도 잘 되지 않는 실패의 경험이 누적되면 그나마 있던 열정도 식어버린다는 것이다. 참으로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분노는 파괴적인 반면, 열정은 건설적이다

  이처럼 분노와 열정은 모두 내부에 부글부글 끓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이성보다 감성에 의존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분노는 부정적 감정으로서 ‘파괴적’ 결과를 가져오는 반면, 열정은 긍정적 감정으로서 ‘건설적’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물론 열정을 기울여 실패하는 결과가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열정을 쏟는 과정만큼은 본인도 행복하고 건설적이며, 무엇보다 자신을 포함한 다른 대상에게 공격의 화살을 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인이든 사회든 어떤 방향이 ‘파괴적’이지 않고 ‘건설적’인가를 항상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바로 개인과 사회의 비전이요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우리가 일을 할 때, 토론을 할 때, 심지어 상대방과 논쟁을 할 때도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이 파괴적이지 않고 건설적인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기준을 두고 판단한다면,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고 열정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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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열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분노는 한번 발생하면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 분노를 발산시키지 않고 꾹 눌러 두면 소위 ‘화병’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하여 분노가 발생할 때마다 폭발시키면 분노는 사라지기보다 오히려 더 강해진다. 그 결과 다른 일들까지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분노를 발산시키되,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산시켜야 한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미움의 대상에게 지속적으로 주의집중을 쏟기보다 사랑의 대상으로 주의집중을 돌리는 것이 좋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일이든, 자기가 좋아하며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때 행복한 열정이 발산된다.

만약 바로 그렇게 좋아하며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만큼 쉽게 사그라지는 분노가 아니라면, 일단 그 중간 단계로서 스포츠나 문화예술 활동, 취미 등으로 그 분노의 에너지를 돌리는 것이 좋다. 물론 스포츠나 문화예술 활동이 본인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거기에 몰두하여 열정을 쏟는 것은 매우 건설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사회! 이런 사회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고, 따라서 분노하는 사람들의 수와 그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긍정 에너지의 확산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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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3월08일 20시33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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