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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티브 사회의 피로감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2월20일 21시47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3시51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학장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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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즘 우리 사회는 마치 부정적 감정을 에너지원 삼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장점을 증명하는 방식보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는 방식, 덫을 놓고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방식, 누군가 잘 하는 행동을 칭찬하기보다 못하는 행동에 온 관심을 쏟아 공격하는 방식 등이 팽배해 있다.

 

네거티브 방식은 에너지의 소진을 가져온다. 그만큼 감정의 소모가 크기 때문에 생산적인 일에 몰두할 여력을 남겨 놓지 않는다. 현재의 상태로는 우리 사회 여러 영역에 네거티브 방식이 만연해 있어, ‘하면 된다’는 긍정적 마인드보다 ‘해도 안된다’는 무력감이 사회 전체를 뒤덮고 있는 분위기다.

 

물론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영향이나 취업난 등의 요소가 부정적 정서를 증가시키는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외부의 조건들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어떻게 심리적으로 대응해야 긍정적인 정서가 충만한 사회로 갈 수 있을지 잠시 생각해 보려 한다.

 

부정적 정서가 만연한 사회, 이대로 좋은가

정서를 두 종류로만 나누면 긍정적 정서와 부정적 정서로 나눌 수 있지만, 이 각각을 각성(arousal) 수준이 높은 것과 낮은 것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긍정적 정서 중 각성 수준이 높은 것은 ‘신남, 흥미진진함’이며, 각성 수준이 낮은 것은 ‘평온함, 행복감’이다. 부정적 정서 중 각성 수준이 높은 것은 ‘화, 분노’이며, 각성 수준이 낮은 것은 ‘우울, 슬픔’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좌절할 때 분노를 느끼거나 우울해진다. 좌절은 원하던 목표를 이룰 수 없을 때 느낀다. 예를 들어, 대학 졸업자가 회사에 취업하고 싶었으나 실패했다면 좌절을 느낀다. 이 때 실패의 원인이 누군가 다른 대상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그 대상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정서가 유발한 공격성이 외부로 향하면 폭력행동으로 나타나고, 내부로 향하면 자살이나 자포자기로 나타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정서가 좌절로 인한 분노와 우울이라 생각된다. 모두가 얻고자 하는 좋은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것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은 많기 때문에, 상대적 우위를 달성하여 행복감을 얻으려 한다.

경쟁상대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배우려 하는 선행학습이 도를 넘어, 최근 기사에는 초등학교 6학년이 고등학교 2학년 과정까지를 다 배우고 경시대회를 준비한다는 사실까지 보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0.1% 극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부정적 정서를 습득한다. 해도 안된다는 좌절감을 지속적으로 맛보며 장기적으로는 무력감을 습득한다. 이것은 이후 이유 모를 분노로 확산되어 자기 또는 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이들이 군대에 가도 역시 그 좌절감과 무력감으로 인해 누적된 분노는 동료에 대한 폭력이나 자살 등으로 나타난다.

능력을 벗어나는 속도경쟁은 행복감을 가져올 수 없다. 자신의 단계에 맞게 하나하나 습득해 가며 얻는 작은 성취감들이 쌓일 때 긍정적 정서가 누적되어 삶의 활력소를 찾을 수 있다.

 

상대에게 주는 상처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정치 영역에서도 상대보다 내가, 상대 당보다 우리 당이 더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라는, 그래서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비교우위의 심리가 있다. 그런데 그 상대적 우위를 자신을 발전시키기보다 상대를 깎아내림으로써 달성하려 한다면, 바로 거기에서부터 부정적 정서들이 싹튼다. 

상호 설득할 때도 자기 논리의 강점을 설파하기보다 상대 논리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양쪽 모두 방어하기에 급급해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할 여력을 갖지 못한다. 상대 당에 약점을 잡히지 않을 수 있는 방안에만 골몰하게 되어, 생산적인 발언은 억제되는 경향이 있다.

선거에서도 어느 당이 더 좋은 일을 할까 비교하여 유권자들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당이 조금 덜 실망시킬까를 고려하여 차선을 선택하게 된다. 한 쪽이 내려가면 다른 한 쪽이 올라가게 되어 있는 여당과 야당의 지지율이 동반하락하는 기현상의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사회 도처에 이와 같은 네거티브 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상태에서는 부정적 정서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개인이든 단체든,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것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인간이기에 남보다 나으려고 하는 욕구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우월함을 얻는 방법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결국은 자신의 마음도 부정적 정서로 가득 차 모두가 부정적 경험 속에 갇히게 된다.

 

 부정적 정서를 부추기는 미디어

부정적 정서의 만연을 부추기는 데 미디어도 큰 몫을 차지한다. 흔히 부정적 정보가 더 큰 뉴스가치를 지닌다고 판단되어 더 많이 생산 및 유포된다. 이로 인해 현재 과잉 연결된 미디어의 구조는 피로사회를 더욱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미디어 과잉시대, 정보 과잉시대에는 알 필요가 없는 것까지 알게 됨으로써 정작 본인의 긍정적인 능력을 모아 창의적인 산출물을 만들어내야 할 곳에 쏟을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알려지고 싶은 욕구는 일종의 자기과시 욕구에 해당한다. 요즘 홍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개인이든 단체든 알려지지 않으면 그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자신을 알리려고 하며 여기에 미디어를 최대한 활용한다. 그러다 보면 혼자서 조용히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틈이 줄어든다.

다른 사람들의 사소한 일까지 모두 다 알게 되는 세상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사회의 투명성을 증가시키고 ‘알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면에서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남의 사소한 일에까지 관심을 갖느라 정작 자신의 더 중요한 생산적인 일에 쏟을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잃는 것이 많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더 많은 조명을 받다 보니, 부정적 정서의 전염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긍정적 정서가 움직이는 사회, 불가능하지는 않다

긍정적 정서의 힘은 막강하다. 긍정 정서가 있어야 창의적인 방향으로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긍정 에너지의 충전을 위해서는 자연을 돌아볼 기회, 문화를 향유할 기회, 다른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환경 등이 필요하다. 가정, 학교, 군대, 기업, 사회 등 모든 영역에 이런 기회와 환경이 필요하다.

상대를 제압하는 데 골몰하기보다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세상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실천할 때 본인도 행복해지고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 정서가 퍼져 나갈 수 있다. 웃을 일이 없어 웃지 못한다면 일단 먼저 웃어 보자. 그러면 마음도 약간은 더 밝아진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행복도 연습이 되나요?’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는 <행복의 공식>이라는 책은 우리가 먼저 행복을 느끼도록 노력할 때 뇌의 변화로 다른 일들도 잘 이룰 수 있어 진짜 행복을 느끼게 됨을 강조한다. 사람의 진가(眞價)는 힘들 때 나타난다. 힘든 상황을 긍정적 정서로 잘 떨쳐낼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이끄는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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